"8·4대책 이후 나름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9월8일 제6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 중)
"2개월이면 임대차3법의 효력이 나타나지 않을까 했는데…."(10월8일 국회 기재위 기재부 국정감사 중)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달 만에 부동산 시장에 대한 평가를 뒤집었다. 8·4 수도권 주택 공급대책 발표 후 시장이 '반짝' 안정되는듯 했으나 같은 날 국회 문턱을 넘은 임대차3법으로 인해 '불씨'가 임대 시장으로 번진 탓이다.
추가 대책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였지만 이미 쓸 수 있는 카드는 거의 다 쓴 상황이어서 '묘책'이 나올 수 있을지 미지수다.
◇ 경제수장도 못피한 '전세 파동'
홍남기 부총리는 이달 8일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아직 전세시장이 안정화되지 못해 안타깝다"며 "추가 대책(24번째 대책)을 강구해보겠다"고 밝혔다.
전세난의 심각성을 인정한 셈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08% 올라 주간 변동률 기준으로 67주, 수도권은 0.14% 올라 61주째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전셋값이 오르자 전세대출도 크게 늘었다.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KEB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올해 9월 말 전세대출 잔액은 99조1623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6911억원(2.8%) 늘었다.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16년 이후 역대 최대인 지난 2월(2조7034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임대차 시장 성수기는 3월 개학 전으로 9월에 전세대출이 급등한 점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임대차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 시행, 전월세신고제는 내년 6월 시행) 통과로 임대보증금 인상에 제동이 걸린 집주인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거나 기존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이용하면서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른 탓이다. 양도세 비과세 및 장기보유특별공제 등의 혜택 축소, 재건축 실거주 자격 요건 강화, 계약갱신청구권 거절 등으로 집주인이 거주를 해야 하는 이유도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9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건수는 5055건으로 전년 동기(9312건) 대비 45.7% 감소했다. 반토막 수준이다.
'전세 파동' 수준으로 전세가 귀해지면서 정책을 발표한 홍남기 부총리까지 '전세 난민'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1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 전용 84㎡ 마포자이3차 아파트 전세를 계약했는데, 내년 1월 만기를 앞두고 집주인이 거주 의사를 밝히면서 갱신거절이 돼 새로운 전셋집을 알아봐야 할 처지가 됐다. 홍 부총리가 계약할 당시 이 아파트 전셋값은 6억3000만원이었으나 현재는 8억3000만원 이상에 호가하고 있으며 그마저도 매물이 없는 상태다.
그렇다고 '매수'로 선회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8·4대책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서울 집값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서 홍 부총리는 8·4대책의 효과로 한 달만에 상당수 아파트들의 실거래가가 떨어졌다면 부동산 시장 안정에 대한 기대감을 보인 바 있다. 당시 그는 ▲서초구 반포자이(84.94㎡)가 7월 28억5000만원에서 8월 24억4000만원 ▲송파구 리센츠(27.68㎡)가 같은 기간 11억5000만원에서 8억9500만원 ▲마포래미안푸르지오3단지(59.92㎡)가 14억원에서 11억원 ▲노원구 불암현대(84.9㎡)가 6억8000만원에서 5억9000만원으로 하락한 실거래 인하 사례를 발표했다.
하지만 지난달 같은 평형에 거래가 없는 리센츠를 제외한 나머지 3개 단지들은 한 달만에 모두 7월 가격 수준으로 몸값이 다시 올랐다. 9월에 ▲반포자이(84.94㎡)는 28억2000만원 ▲마포래미안푸르지오 3단지(59.92㎡)는 14억4200만원 ▲불암현대는 6억9000만원에 팔렸다.
◇ "추가대책? 뾰족한 수 없다"
홍 부총리가 추가 대책을 시사했고, 현실화할 경우 이번 정부 24번째 대책이 된다. 추가 대책 역시 앞서 '임대인 규제 및 임차인 보호 강화'의 연장선상에서 나올 전망이다.
시장에선 전월세전환율 규제 강화, 전세대출 규제 강화, 표준임대료 제도 도입, 임대료 세액공제 혜택 확대, 임대주택 공급 활성화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임대차3법까지 도입된 상황인 만큼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임대시장에선 추가로 나올만한 묘책이 희박해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임대인을 더 규제하거나 임차인에 대한 금융지원을 해주는 방식이 예상된다"며 "표준 임대료제도를 도입하거나 새 임차인을 구해도 기존 임대료 상한제를 적용하는 방식 등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도 "어떤 규제가 나와도 임대인들이 대응책을 계속 마련하게 돼 있어 대책 효과가 크지 않고 만약 너무 강한 규제가 나올 경우엔 임대인들이 임대를 포기하면서 전세가 소멸할 부작용이 있다"고 우려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도 "임대인 규제는 계속 갈테고 오피스 용적률 인상 등으로 물량을 늘리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규제를 더할수록 재산권 침해 반발, 전세매물 품귀, 월세 전환 등이 나타날 수 있어 강한 규제를 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표준임대료제도, 임차보증금 동결, 영구 계약갱신청구권 등을 예상했다.
서 회장은 "임차보증금 동결이나 영구 계약갱신청구권은 강한 규제라 임대인들의 반발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고 그나마 실현 가능해 보이는 게 표준임대료 제도"라며 "정부도 이미 법안이 발의돼 있는 표준임대료 카드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개별 부동산의 특성을 단기에 가격에 반영하기 어렵고 이를 위해 상당한 예산과 인력이 든다"며 "투입 비용에 비해 행정 편익이 낮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전세 시장과 관련한 대책은 공급 확대, 임대료 보조, 임대료 규제 등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추가로 나올 게 많지 않다"며 "당장 전셋값을 안정시킬 만한 묘책을 찾긴 어려워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공급 확대에 따른 효과는 입주 시 나타나기 때문에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렵고 임대료 보조는 특정 상황 및 소득계층에 대해 저리대출이나 바우처 제공 방법이 있지만 결국 임대료를 올려주는 것이어서 효율적인 대책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대료 규제도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에서 어느 정도 하고 있고 표준임대료 제도는 우리나라 임대실거래가 2011년부터 시작돼 데이터가 쌓인지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 도입하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