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말소 위기를 맞은 HDC현대산업개발(이하 현산)에 대한 주주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회사가 존폐위기에 놓여 있는데 경영진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가 없다는 비판이 거셌다.
현산은 이같은 주주들의 발언에 "죄송하고 고개를 못 들겠다"고 거듭 사과했다. 아울러 각고의 노력으로 국내 건설업계 최고 안전·품질 명가로 거듭나겠다고 강조했다.
'환골탈태' 약속에도…"신뢰 못한다"
HDC현대산업개발은 29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플라자에서 제4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한 주총은 오후 1시까지 이어지면서 3시간 가량 진행됐다.
권순호 대표는 "최근 광주에서 일어났던 두 번의 사고로 인해 너무나 큰 실망을 끼쳐드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환골탈태하는 각고의 노력으로 소비자와 주주 여러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주들은 광주에서 연이어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날선 질문들을 쏟아냈다. 특히 국토교통부가 지난 28일 서울시에 '가장 엄중한 처분'을 요구, 등록말소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 대해 이사회를 비롯한 경영진들의 책임을 물었다. ▷관련기사: HDC현산, 예상대로 엄중처벌 '영업정지 혹은 등록말소'(3월28일)
주주 A씨는 "올해 1월 발생한 광주 화정 사고로 인해 손실액이 1754억원으로 추정됐는데 적정한 수치인가"라며 "지난 5년 현산과 관련한 사망사고만 5건인데 재발방지대책은 무엇인지 충실히 말해달라" 물었다.
김홍일 경영본부장은 "화정사고로 인한 손실은 붕괴동 철거, 붕괴동이 속한 단지 철거, 모든 단지 철거 등의 경우를 단순 평균을 내서 반영했다"며 "향후 안전정밀진단을 통해 손실이 확정되면 재공시하겠다"고 답했다.
주주 B씨는 "어제 국토부가 등록말소, 또는 1년 이상의 영업정지를 권고하는 조치가 있었다"며 "회사의 존폐 위기가 온 상황인데 책임 있는 경영자에 대한 조치가 전혀 없는 것이 맞나"고 질문했다.
권순호 대표는 "지금도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섣불리 징계하면 이같은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법무법인의 권고를 따르고 있다"고 부연했다.
이같은 답변에 B씨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직원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것은 비겁하다"며 "내부 감사가 없는 상황에선 주주들도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몽규 회장 배당금만 150억원"
이날 주주총회에서는 정몽규 회장의 배당·퇴직금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몽규 HDC회장은 지난 1월17일 화정 붕괴사고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며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직을 내려놓고, 대주주 역할만 수행하고 있다. ▷관련기사: 정몽규 HDC현산 회장 "책임 통감, 회장직 사퇴"(1월17일)
이재승 현산 노조위원장은 "올해 배당금 390억원 중 정몽규 회장에게 150억원이 배당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퇴직금 또한 68억원이 책정됐다고 하는데, 이 금액을 모두 반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순호 대표는 "정몽규 회장의 개인적인 문제로, 본인이 결심할 사항"이라고 일축했다.
사외이사를 CSO로 선임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이익을 내야 하는 경영인의 입장을 고려하면 비용을 절감하고자 안전에 소홀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CSO는 정익희 대표가 맡고 있다.
권순호 대표는 "안전보건 관련 조직을 만들고 CEO와 완전히 분리한 것은 10대 건설사 중 현산이 처음"이라며 "본업이 있는 사외이사 대신 현장에 상주하는 사내이사를 선임하는 게 적절하다는 게 이사회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질문이 반복되자 "주주 다수가 그 말씀을 하시니 다음 이사회에서 다시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이사 선임안에 대해서는 일부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후보 3명 모두 선임됐다. 현장에서 투표를 진행한 결과 유병규 사내이사(대표)는 찬성 90.6%, 권인소 사외이사(카이스트 교수)는 찬성 74.3%로 통과됐다. 정익희 사내이사(CSO)에 대해서는 투표 없이 선임안이 가결됐다.
이날 상정된 안건 중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관한 권고적 주주제안권 신설은 반대가 69.4%로 부결됐다. ESG 관련 주주가 이사회에 안건을 제안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의결권 남용 우려가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