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과거와 달리 숨기지 않겠습니다. 현안이 있으면 사장인 제가 직접 이해와 협조를 구하겠습니다."
취임 열흘을 맞은 이한준 LH 신임사장의 어깨가 무겁다. 쌓인 과제는 역대급인데 이걸 해낼 인력도, 돈도 없다. 가뜩이나 직원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한 달 안에 인원 감축 등을 포함한 조직 개편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그럼에도 주택공급 역할을 강조했다. 집값이 하락하고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LH마저 주택공급을 하지 않으면 경기 상승의 마중물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공기업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만 늘어난 '국민 왕따'
이한준 LH 사장은 23일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LH 사장이 직접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건 3년 만이다. 지난 14일 취임한 이한준 사장은 "취임 10일 만에 서둘러 인사를 드린 건 LH가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께 알려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현재 LH에 대해 "작년 일부 직원의 일탈 행위로 국민에게 왕따 받는 조직이 됐다"고 진단했다. 또 "LH는 그간 자기만을 위한 생활에 익숙했던 것 같다"며 '국민을 섬기는 겸손한 조직'으로 거듭나 국민을 위한 주택을 짓겠다고 설명했다.
이같이 호소한 이유는 LH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여전해서다. 작년 3월 임직원의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불거진 뒤 '환골탈태'를 약속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다. 이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1일 '자체 혁신방안'을 새로 마련하라고 언급했다.
자체 혁신과제와 함께 LH는 앞으로 역대급 업무량을 소화해야 할 전망이다. 정부는 5년간 공공분양 5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수도권 5만2000가구 등 총 7만6000가구를 인허가할 예정인데, LH가 올해 진행했던 물량의 약 2배에 이른다.
일할 인력은 더 줄어든다. 애초 전체 인력(약 1만명)의 20% 이상을 줄일 예정이었는데, 작년에 10% 수준인 1064명을 감원했다. 현재 진행 중인 혁신방안 용역이 연내 마무리되면 추가 인원 감축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한준 사장 역시 "윤석열 정부 주택공급 계획에 따라 LH 부담이 2배 정도 늘었는데, 정부 요구에 따라 조직을 축소하고 인력을 줄이다 보니 내부적으로 어렵다"며 "무엇보다 직원들 사기가 바닥에 깔린 게 문제"라고 토로했다.
민간이 구원투수?…안 팔리면 어쩌나
LH를 둘러싼 대외상황도 좋지 않다. 정부가 계획한 공급량에 발맞추고 싶어도 아파트를 지을 돈이 없다. LH는 지난 6월 기획재정부로부터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됐다. 2026년까지 자산매각, 경영효율화 등을 통해 총 9조원의 부채를 줄여야 한다.
이한준 사장은 일단 민간의 도움을 받아 건축비를 감축할 계획이다. 공공분양은 지주 공동사업, 임대주택은 10년 거주 후 분양 전환하는 방식으로 민간 참여를 독려한다.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토지 보상의 경우 대토보상을 통해 현금 지출을 줄일 전망이다.
건설 원가를 낮춰 수익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이한준 사장은 "과거 LH가 건설한 신도시에 가보면 상업·업무시설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주거로 돌리고 용적률을 올리면 민간에 매각할 수 있는 주택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예를 들어 3기 신도시는 가처분 면적이 45%정도인데 이걸 최대한 추가 확보하면 부지 조성원가를 낮출 수 있다"며 "원가 상승이 분양가로 전이되는 걸 막아 LH 본연의 역할인 주택공급가격 안정화도 가능할 것" 내다봤다.
문제는 이렇게 지은 주택이 모두 팔린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주택매수 수요가 급감한 상황이다. 공공주택이 분양되지 않으면 LH가 고스란히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LH가 고급화를 시도한 브랜드 '안단테'마저 시장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인천 검단, 경기 고양, 세종 등 안단테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은 최근 '전국안단테연합회'를 결성하고 단지명에 안단테 대신 시공사의 브랜드를 넣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LH가 만든 아파트가 품질이 좋다면 국민이 거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LH의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입주예정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했다.
이한준 사장은 LH의 역할이 '주택공급'인 데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집값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공급과잉이 우려된다는 질문에 "경기가 하향곡선을 그리면 민간이 먼저 위축될텐데 그 속에서 LH마저 손을 놓으면 경기 상승의 마중물이 없어진다"며 "경기가 호전됐을 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민간 건설사의 역할을 공기업이 대신 맡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