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라고 다 같은 집값이 아닙니다. '실거래가'가 집을 사고 팔 때의 값이라면 '공시가격'은 보유 가치를 나타내는 가격인데요.
최근 실거래가보다 공시가격이 더 높은 '역전 현상'이 속출하자 정부가 제도 손질에 나서면서 유주택자들이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하마터면 '배보다 커질 뻔한 배꼽'을 겨우 제자리로 돌려놓으면서 각종 부담을 덜게 됐거든요. 공시가격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이렇게 관심을 쏟는 걸까요?
팔리면 '실거래가' 보유하면 '공시가격'
공시가격은 정부가 조사·산정해 공시하는 '공식 집값'을 말합니다. 국토교통부가 토지, 단독주택, 공동주택 등 3가지의 부동산 공시가격을 매년 공시하고 있는데요.
이중 주택가격 공시제도는 지난 2005년 생겼고요. 현재 주택법 제2조3호에 따라 공동주택에 해당하는 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등이 해당됩니다.
국내 모든 주택의 공시가격은 한국부동산원이 조사·산정하고 있는데요. 공동주택의 경우 전수조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표본조사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올해 1월1일 기준 아파트는 1177만 가구(4만4000개 단지), 연립주택은 53만 가구(2만4000개 단지)를 조사·산정해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서 공개 중인데요.
공시가격을 확인해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공식 집값'인데 실제 거래가와는 차이가 크거든요.
같은 집값이어도 용도가 다르기 때문인데요. 실거래가는 말 그대로 주택을 판 사람과 산 사람이 실제 주고 받은 금액을 말합니다. 이 가격을 바탕으로 취득세, 양도세 등의 '거래세'를 매기죠.
그러나 집을 사거나 팔지 않고 보유만 한다면 집값을 매기기 어려운데요. 이때 공시가격을 씁니다. 이 공시가격은 종부세, 재산세 등 '보유세'를 책정할 때 쓰죠.
이밖에도 공시가격은 건강보험료, 기초연금 등 67개 행정 제도의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요.
공시가격이 세금 등 국민 부담을 늘리는 자료의 기초가 되는 값인 만큼 통상 실거래가보다 낮게 결정됩니다.
이같은 '틈'을 노린 투자도 더러 있습니다. 주택 보유자 입장에선 공시가격은 낮고 시세가 높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그 차이가 큰 주택에 투자하는 거죠.
'공시가격 1억원' 아파트 투자가 성행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현재 공시가격 1억원 미만 주택은 다주택자와 법인들이 취득세 중과를 받지 않고 1.1%로 적용받을 수 있는데요.
실거래가는 2억원 중반까지 가기 때문에 실제 가치는 훨씬 높은 매물을 찾는거죠. 공시가 1억원이 넘으면 취득세를 최고 12%까지 내야 하는데 취득세 부담도 줄이고 보유세도 적게 내니까 이득인 셈입니다.
다시 작아지는 배꼽…'숨통' 트이나
실거래가에 비해 훨씬 낮았던 공시가격은 이전 정권에서 점점 실거래가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실거래가와 공시가격의 차이가 커지자 당시 정부가 그 간격을 줄이겠다며 '현실화'(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선언한건데요.
이에 따라 2021년 전국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 인상률은 19.05%, 2022년은 17.22%로 2년 연속 두자릿수의 가파른 상승률을 이어갔습니다.
여기에 공정시장가액비율과 세율 인상이 병행하면서 종부세 부담은 점점 커졌는데요.
종부세 과세표준은 주택 공시가격 합계액에 공제액을 뺀 값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구합니다. 공제액은 기본 6억원, 1가구1주택자는 11억원이고요.▷관련기사:[알쓸부잡]공정시장가액비율, 종부세 할인아닌 할증같은 너~(5월30일)
그러자 주택분 종부세는 2019년 1조원에서 2020년 1조5000억원, 2021년 4조4000억원, 올해 4조1000억원으로 단기간 급증했는데요.
어차피 종부세는 '부자세'나 다름 없으니 괜찮지 않냐고요?
실거래가는 변화가 없어도 공시가격이 오르니 재산세, 종부세 등 내야 할 세금이 올랐다는 점에서 조세 저항이 생겼습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공시가 현실화 계획 재검토를 공약하고 당선 이후 국정 과제로 선정한 바 있는데요. 여기에 올해 부동산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문제는 더욱 커졌습니다.
일부 집값 하락세가 가파른 지역들은 주택 시세보다 공시가격이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죠.
결국 국토교통부는 23일 내년도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발표 이전인 2020년 수준으로 돌리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내년 아파트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올해 71.5%에서 내년 69%로 낮아지는데요.
이로써 주택 보유자들도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가뜩이나 고금리에 시달리는데 주택 경기가 꺾이면서 집도 안 팔리는 상황이거든요.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은 막았지만 '배앓이'는 이어질 거란 우려가 나옵니다.
추가 금리 인상, 경기 위축 등이 예상돼 일부 세금 완화만으론 거래가 활성화되거나 주택 보유자의 부담을 크게 줄이긴 어렵기 때문이죠.
시장에선 공제액 상향 등 세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현재 △주택분 종부세 기본공제금액 인상(6억→9억원, 1가구1주택자 11억→12억원) △다주택자 중과 세율 폐지 및 세율 인하(일반 0.6~3.0%, 다주택 1.2~6.0%→0.5~2.7%) △세부담 상한 조정(일반 150%, 다주택 300%→150% 일원화) 등의 내용이 담긴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국회를 넘지 못하고 있거든요.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경제 성장률 둔화, 경기위축, 보유세 부담 등을 고려할 때 공시가격에 대한 시세 반영비율 장기 로드맵의 하향 수정과 1가구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 완화 등 추가 방안이 필요해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