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을 기대하면 큰 코 다치는 할인 제도가 있습니다. 바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인데요. 이 비율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보유세가 출렁이기 때문에 연일 주택보유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은 과세표준을 낮춰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할인 제도로 도입했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다주택자들의 매물 출회를 위해 이 비율을 매년 올린 결과 올해는 최고 한도인 100%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제도의 취지를 영영 잃어버리고 마는 걸까요?
공정시장가액비율, 원래는 착한 친구?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문재인 정부에서 연일 화제가 됐습니다. 무섭게 오른 집값만큼 주택 보유자들의 세금도 크게 오른 가운데, 공정시장가액비율까지 오르니 주택 보유자들의 불만도 점점 커졌거든요.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재산세,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등 보유세 새액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택에 세금을 매길 때는 시세가 아닌 '과세표준'이 기준이 되는데요. 주택 공시가격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한 게 과세표준이고요. 과세표준에 세율 등을 곱해서 최종 세액을 도출하는 식입니다.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오를수록 세액도 커질수밖에요. 지금은 이 비율이 높아서 주택 보유자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데요. 원래 도입 취지는 정반대입니다.
지난 2009년 정부가 종부세 세율을 인하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거든요. 지금과는 이미지가 확 다르죠? 재산세나 종부세의 과세표준을 구할 때 공시가격(또는 시가표준액)에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을 낮추기 위해 사용됐는데요. 일종의 '할인 제도'나 다름 없었습니다.
재산세의 경우 주택의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시가표준액의 60%, 토지 및 건축물은 시가표준액의 70%로 수년간 고정돼 본래의 취지대로 작용하는듯 한데요. 종부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은 매년 계단식으로 오르고 있어 제도의 이미지 변신(?)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종부세는 공시가격 합산액에서 공제액을 빼고 공정시장가액비율을 곱해 과세표준을 산출하게 돼 있는데요. 현행 종부세법에 따르면 이 비율은 부동산 시장의 동향과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60~100%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2018년만 해도 이 비율이 80%에 머물러 있었는데요. 같은 해 문 정부가 9·13대책을 통해 2019년부터 5%포인트씩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2019년 85%, 2020년 90%, 2021년 95%까지 올랐습니다.
다주택자들의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을 늘려서 매물을 내놓게 하려는 의도로, 원래 제도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이용한 셈이죠. 올해 계획대로 100%까지 올라간다면 공정시장가액비율 범위에서 최고치를 찍겠네요.
'축소냐 폐지냐'…주택 보유자들 '긴장'
윤석열 정부 들어선 주택 보유자들의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후보 시절부터 '세금 정상화'를 외쳤던 윤 대통령은 올해 공정시장가액비율을 2021년 수준으로 동결하겠다고 공약했거든요. 최근엔 공시가격 급등, 세율 인상 등으로 급등한 종부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추가 인하'까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100%로 상향 조정하는 건 종부세 납세자에 대한 과도한 세 부담을 야기하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공정시장가액비율 인하 범위 등 추가 논의를 거쳐 시기와 인하 폭 등을 검토할 방침인데요. 시장에선 2020년 수준인 90% 안팎까지 이 비율이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주택보유자들의 부담도 한 풀 꺾일듯 한데요. 하지만 쉽지 않아 보입니다. 국회의원 의석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전면 폐지' 카드를 내놨거든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발의한 종부세법 일부개정안에는 공정시장가액제도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는데요. 폐지하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고요?
관련 제도 자체가 폐지되면 공정시장가액비율은 사실상 100%로 고정되는데요. 이렇게 되면 과세표준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게 돼서 '완화'와는 거리가 멀고요.
만약 주택 수에 상관 없이 모든 주택 보유자를 대상으로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폐지할 경우 다주택자뿐만 아니라 1주택 보유자들의 세금 부담도 커질 수 있습니다.
앞서 문 정부가 1가구1주택자에 한해서 지난해 공시가격을 적용해 올해 종부세를 매기기로 했지만, 공정시장가액비율이 올라가면 공시가격을 동결하더라도 종부세는 올라갈수밖에 없거든요.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에게 의뢰한 시뮬레이션 자료에 따르면, 공시가격 22억4500만원(2021년 기준)인 반포자이 한 채를 5년 미만 보유한 A씨(만 59세, 세액공제 없음)의 경우 공정시장가액비율 90%일 땐 종부세 689만2800원을 내면 되는데요. 이 비율이 100%로 오르면 종부세가 799만2000원으로 16% 오릅니다.
여기에 재산세, 농어촌특별세, 지방교육세 등을 포함한 전체 보유세로 따지면 공정시장가액비율 90%일 땐 1586만6760원에서 100%일 땐 1718만5800원으로 8.3% 오르고요. 이같은 상황에 공정시장가액비율 축소냐 폐지냐 여부에 따라 주택 보유자들의 희비가 엇갈릴듯 한데요.
우병탁 팀장은 "공시가격을 2021년 수준으로 유지한다고 해도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폐지(사실상 비율 100%)하면 오히려 종부세가 늘어나면서 보유세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이를 1주택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면 민주당이 1주택자의 세부담을 줄이겠다고 했던 기조를 뒤집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