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세가 부동산 시장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른 가운데 정부의 전세보증금반환대출(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 완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규제가 완화되면 임대인은 계속 전세를 돌릴 수 있고 기존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어 '윈윈'으로 보이는데요.
그러나 새 세입자는 근저당권이 설정된 집에 들어가야 하는 데다, 갭투자자에게 '호흡기'를 달아준다는 점 등에서 부작용이 예상돼 섣불리 시행하기엔 부담이 커 보이는데요. 그렇다고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두고 보기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대체 해법이 있긴 한걸까요?
둘 중 한 집은 '역전세'…대출 규제완화 검토
전세퇴거자금대출은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하기 위한 용도로 받는 대출인데요. 지금처럼 전셋값이 급락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울 때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이죠.
대출한도는 규제지역 1주택자의 경우 주택 9억원 이하는 LTV 40%, 9억원 초과는 LTV 20%, 다주택자는 이용이 불가능하고요. 비규제지역에선 1주택자 LTV 70%, 다주택자는 60%인데요.
가령 9억원짜리 집이면 40%인 최대 3억6000만원이 대출되는거죠. 임대인 입장에선 이 대출을 통해 계약 당시보다 떨어진 전셋값을 보완할 수 있어 보증금 반환 여지가 높아지게 되죠.
역전세에 처한 임대 가구들이 모두 이 대출을 활용하면 참 좋겠는데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정부가 소득기준 대출규제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대폭 강화하면서 이미 대출을 보유한 임대인은 이용하기 어려운 실정이거든요.
이에 전국임대인연합회 등 임대인들이 DSR 규제 완화 등을 요구해 왔고요. 각종 연구 기관·업체에선 올 하반기부터 역전세난이 심화할 것이라며 앞다퉈 '주의보'를 내렸습니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간한 '5월 경제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잔존 전세계약 중 역전세 위험가구 비중은 지난해 1월 25.9%(51만7000가구)에서 지난 52.4%(102만6000가구)로 두 배나 높아졌거든요. 전셋집 두 채 중 한 채는 역전세 위험이 있다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올해 하반기와 2024년 상반기에 이같은 위험 가구의 계약 만기가 상당 부분 도래한다는 건데요. 역전세는 올 하반기 28.3%, 내년 상반기 30.8% 각각 계약이 만료됩니다.
가뜩이나 전세사기 등으로 임대차시장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대규모 보증금 미반환 사태까지 벌어지면 혼란이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는데요.
결국 정부가 전세퇴거자금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나섰습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8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여해 "일정 기간 전세금 반환 목적의 대출에 한해 DSR 규제를 조금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늦어도 7월 중엔 시행할 것"이라고 말했는데요.
새 세입자는?..."근본 해법 찾아야"
전세퇴거자금대출만 원활히 이뤄져도 역전세 해소에 일부 도움이 될듯 한데요. 뒤따르는 부작용이 있어 규제 완화가 조속히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임대인이 전세퇴거자금대출을 받으면 기존 임차인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만 다음 임차인은 은행에 선순위 근저당권이 설정된 집에 살게 되는 셈이거든요. 향후 임대인의 자금 사정에 문제라도 생기면 새 임차인은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고요.
결국 다음 세입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건데요. 최근 전세사기 피해가 대거 발생했던 인천 미추홀구 지역 전세 역시 세입자들이 근저당권에 밀려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고요.
더군다나 이번 사태로 근저당권이 설정된 임대 매물은 기피하는 분위기가 형성, 전세퇴거자금대출을 받아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면서 또다른 경색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고요.
갭투자를 한 집주인을 정부가 도와준다는 불편한 시각이 나오기도 합니다. 애초에 현금 여력이 부족한데 전셋집을 껴서 집을 산 게 역전세의 불씨가 된 건데 대출까지 해준다는 건 부적절한 조치라는 거죠.
원희룡 국토부 장관도 "결국 갭투자를 하다가 돈이 부족하니까 국가에서 돈을 빌려줘서 빠져나가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줘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최근 가계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선 것도 대출 규제 완화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고요.
일각에선 이런 상황을 고려해 전세보증금 전액이 아닌 신규 전세보증금과의 차액 부분만 대출해주는 식의 대안이 나올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이 또한 대출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오히려 섣부른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기면서 역전세 등의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근본적 해법'을 내놔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는데요.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퇴거자금대출을 풀어주는 건 빚으로 빚 막기, 임차인 돌려막기에 불과하다"며 "특히 새 임차인은 상환 능력이 없는 임대인의 집으로 들어가는 거라 위험해지기 때문에 전세시장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전셋값이 더 꺾일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비정상적으로 올라간 가격이 원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건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부작용이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전세가 사인 간 거래인 만큼 일정 부분 시장에 맡기고 전세대출 규모를 줄이는 등의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