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세대출제도 손질을 예고하며 임차인과 임대인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임차인의 전세대출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에 포함해 유동성을 축소하는 반면,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목적으로 대출을 받는 경우 DSR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전세대출이 DSR에 포함되면 소득에 따라 대출 한도가 확 줄 수 있다.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한 임차인들은 반전세, 월세 등으로 전환해야 한다. 내 집 마련으로 가는 주거 사다리가 끊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역전세난, DSR이 문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최근 '전세제도의 구조적 리스크 점검과 정책 제언' 보고서에서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하기 위해 DSR 산정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세대출은 DSR 산정 시 제외된다. 만기 시 돌려받는 전세 보증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어서다. 월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2년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는 덕에 정부도 별다른 규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보고서가 전세대출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건 '역전세난' 우려 때문이다. 최근 전셋값이 하락하며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증가하고 있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우선 임차인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
보고서는 "전세자금대출은 건당 대출 규모가 크고 과도한 대출로 인해 주택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상환 능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대출은 결과적으로 가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이같은 지적에 힘을 싣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5월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전세 제도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등 전세를 축소하는 방향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관련 기사:[집잇슈]"전세 제거는 아냐"…원희룡 장관 말 바꾼 까닭(5월26일)
원희룡 장관은 지난 19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전세대출을 상당히 제한해야 한다"며 "지금은 서민 대출이라는 이유로 거의 무제한으로 주고 있는데, 전세만이 주거 복지고 사다리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도 줄어 대출 불가…월세 부담 어떡하나
DSR 산정 때 전세대출이 포함되면 대출 한도가 크게 줄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은 현재 총대출액이 1억원 이상인 차주에 DSR 40%를 적용하는데, 소득이 낮은 사회 초년생 등은 전세살이가 아예 불가능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만기 2년, 금리 연 4.2%(6월 셋째 주 5대 은행 평균 금리)로 1억원을 빌린다면 DSR은 108.4%에 이른다. 신용대출처럼 만기 5년을 적용해도 DSR은 48.4%로 40%를 초과한다.
대출이 거절되면 한도만큼 보증금을 설정하고 나머지를 월세로 환산해 내는 '반전세'로 전환하거나, 아예 월세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원금 상환 걱정 없이 이자만 내면 됐던 임차인 입장에선 주거비용이 대폭 증가하는 셈이다.
특히 정부가 임대인의 DSR 산정 기준을 오히려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불만이 증폭될 수 있다. 임차인에게 안전하게 보증금을 반환할 수 있도록 역전세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한편으론 갭투자를 지원하고 새로운 임차인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측면에선 우려감이 커진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부터 전세금 반환 목적에 한해 DSR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장관 역시 지난 12일 "보증금 차액 정도에 한해 DSR을 풀어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도 "보증금 차액에 대해 다음 계약 기간 때까지만 DSR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에 대해 금융당국, 기재부와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선 대출 규제 등이 실현되면 전세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세사기 등으로 불신을 한 몸에 받는 빌라, 주거용 오피스텔 대신 아파트로 수요가 쏠리고, 월세화 또한 가속화될 수 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전세에 대한 불신이 길어질수록 전셋값이 내려가고, 공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비싼 아파트로 가거나 부담스러운 월세로 갈 수밖에 없어 서민들의 주거 부담은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