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핵심 업무권역 중 하나인 광화문·남대문·명동·을지로 등의 도심(CBD)에서 빌딩 공실이 늘었다. 경기 침체로 비용 절감에 나선 기업들이 임대료가 줄곧 오른 서울 중심지에서 이탈한 결과다.
한국부동산원은 지난해 4분기말 서울 내 오피스(업무용 빌딩) 공실률이 직전분기말 대비 0.3%포인트 오른 5.6%로 나타났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도심권역 오피스 공실률 9.6%
서울에서의 오피스 공실 증가는 도심권역에서 주요 기업이 이탈한 영향이 컸다. 도심권역 오피스 공실률은 9.6%로 전기 대비 2.0%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강남(4.3%)과 여의도·마포(3.7%) 권역은 공실률이 각각 0.4%포인트, 0.1%포인트 낮아졌다.
민간 통계에서도 서울 내 공실률 상승이 나타났다. 글로벌 부동산 자문업체 쿠시먼앤웨이크필드(C&W)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말 서울 3개 핵심권역의 평균 공실률은 전 분기말 대비 0.4%포인트 상승한 3.5%로 나타났다.
이 집계에서도 공실률이 가장 크게 상승한 곳은 광화문·종로·서울역 등 도심권역(CBD)이다. CBD의 공실률은 전 분기말 대비 1.2%포인트 상승한 4.3%였다. 빌딩 내 대규모 공간을 사용하던 11번가와 스타벅스 코리아 등의 기업이 이탈하면서 공실률이 높아졌다는 게 C&W의 설명이다.
더불어 한국전파진흥협회도 서울역 인근 '그랜드 센트럴' 5~6층을 1인 미디어 입주기업 유치용으로 사용했으나 이를 서울 강서구 마곡 '케이스퀘어'로 옮겼다.
강남권(GBD)의 공실률은 전 분기말 대비 0.3%포인트 상승한 3.3%를 기록했다. C&W는 강남권의 공실률 상승폭이 비교적 크지 않은 것이 임차사 다수가 권역 내에서 움직였기 때문으로 파악했다. 롯데GFR 등 롯데그룹 계열사와 우아한형제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CBD를 벗어난 스타벅스 코리아도 GBD 내 '센터필드'로 본사를 이전한다.
여의도권(YBD)은 공실률이 하락했다. YBD 공실률은 지난 분기말 대비 1.1%포인트 낮아진 2.3%를 나타냈다. KB국민은행과 미래에셋생명, 우리투자증권 등의 금융사들이 잇따라 임차 면적을 늘린 결과다.
늘어난 빈방, 임대료는 우상향
서울 중심권역에 위치한 기업들은 서울 외곽과 경기도로 떠나고 있다. 11번가가 대표적이다. 서울역 인근 '서울스퀘어'를 임차했던 11번가는 지난해 9월에 비용 절감을 위해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광명 유플래닛 타워'로 이전했다. 강남권역에 자리잡은 SSG닷컴도 올해 영등포로 이전 예정이다.
대형건설사들도 서울 중심지를 떠날 움직임이 보인다. DL이앤씨가 서대문역 인근에서 강서구 마곡으로, SK에코플랜트도 종로구 수송동에서 영등포구 양평동 4가로, HDC현대산업개발은 용산역 근처에서 노원구 광운대역 근처로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관련기사: 마곡, 영등포, 노원으로 떠나는 건설사(1월5일)
기업들이 서울 주요 권역을 이탈한 배경에는 임대료 상승이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말 기준 서울 전역 오피스 임대가격지수는 102.0으로 전년 대비 4.78%포인트 올랐다. 이는 전국 기준 상승률인 3.22%포인트를 웃도는 수치다.
공실률이 비교적 크게 올랐던 도심권역(102.1)의 오피스 임대가격지수는 직전 분기말과 비교했을 때 0.71%포인트 올랐고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4.87%포인트 상승했다. 강남(102.4)과 여의도·마포(102.0)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5.91%포인트, 5.36%포인트 올랐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서울은 GBD 등 기존 중심업무지구와 신흥업무지구인 용산역에서 임차수요가 크게 늘어난 결과"라며 "임대인 우위시장이 이어지면서 실질 임대료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지역 내 오피스 임대 가격 상승세는 C&W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C&W에 따르면 서울 주요 업무권역의 지난해 연간 임대료 상승률은 3.51%다. 2022년과 2023년 연간 임대료 상승률인 7.1%, 5.8%에 미치지 못하지만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CBD의 1㎡당 평균 요구 임대료(OVERALL AVG ASKING RENT)는 3만6875원이다. 평(3.3㎡) 당 임대료 12만1688원인 셈이다. 작년과 비교했을 때 3.03% 올랐다. GBD와 YBD도 3만8604원, 3만1906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3.51%, 5.69% 올랐다.
단기적으로 높아진 공실률과 무관하게 서울 주요 업무권역의 임대료는 꾸준히 오를 것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기업들도 지금껏 높아진 임대료가 계속해서 오를 조짐을 보이자 서울 외곽지역, 경기도 등으로 본사 이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C&W 리서치팀 김수경 부장은 "올해 서울 주요 업무권역에서 대규모 면적을 임차해 사용하던 대기업들이 임대료 급등을 견디지 못하고 이탈해 공실률이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서울의 주요 업무 권역 내 오피스 임대료는 제한된 공급으로 인해 올해도 지속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라면서 "임대료 상승률은 완만해지겠지만 GBD의 강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