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얼마전 백화점과 TV홈쇼핑사들의 판매수수료율을 공개했습니다. 백화점은 28.3%, 홈쇼핑은 34.0%입니다. 소비자가 1만원짜리 제품을 사면 백화점은 2830원, 홈쇼핑은 3400원을 가져간다는 얘깁니다. 홈쇼핑 마진이 백화점보다 높은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분들이 있을텐데요. 백화점은 땅사고 건물짓는데 돈이 들어가지만 홈쇼핑은 그런 것도 없이 폭리를 취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 판매수수료 낮추라는 정부
판매수수료는 제품판매에 기여한 대가로 유통업체가 가져가는 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본다면 유통채널 이용료인 셈이죠. 완전경쟁시장이라면 판매수수료도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돼야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홈쇼핑사들은 정부승인이라는 두터운 진입장벽으로 보호받고, 방송 한번 나가게 해달라며 줄서있는 중소기업은 넘쳐납니다. 그러다보니 홈쇼핑사들이 갑(甲)의 입장에서 을(乙)인 중소기업에 비싼 이용료를 매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는데요.
공정위는 2011년부터 상품군별 판매수수료를 공개하며 대형유통업체들에게 가격(판매수수료) 인하를 압박했습니다. 그때도 홈쇼핑은 가장 높은 판매수수료 때문에 여론의 질타를 받았죠. 최근엔 미래창조과학부가 중소기업을 위한 또다른 홈쇼핑이 필요하다며 제7홈쇼핑 승인절차에 들어갔습니다. 중소기업 전용 홈쇼핑인 홈앤쇼핑이 출범한지 3년도 안됐는데 말이죠. 두 가지 모두 중소기업의 홈쇼핑 이용료가 비싸다는 정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TV홈쇼핑 시장구조 (자료:미래창조과학부) |
◇ 중소기업 울리는 곳, 또 있다
중소기업 육성과 보호라는 정부의 명분은 그럴듯합니다. 그렇다면 홈쇼핑사들이 받는 판매수수료는 떨어질 수 있는 걸까요? 우선 홈쇼핑 판매수수료가 결정되는 구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홈쇼핑사들은 방송망을 보유한 유선방송사업자나 IPTV사업자 등 플랫폼사업자에게 돈을 내야합니다. TV에 홈쇼핑이 나올 수 있게 해준 대가로 일종의 이용요금을 내는 건데요. 이를 송출수수료(채널사용료)라고 합니다. 지난해 홈쇼핑사들이 플랫폼사업자에게 지급한 송출수수료만 9700억원에 달합니다.
이 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겠죠? 홈쇼핑사들은 중소기업에서 받는 판매수수료에 이러한 송출수수료 비용을 전가합니다. 송출수수료가 판매수수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 정도라고 합니다. 결국 중소기업이 낸 판매수수료가 홈쇼핑을 거쳐 플랫폼사업자까지 가는 구조인 거죠.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눈물을 닦아주는 방법으로 송출수수료를 낮출 순 없을까요? 송출수수료는 최근 5년간 연평균 24.1% 증가했습니다. 플랫폼사업자들도 대기업들인데 고통분담에서 예외를 둔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 송출수수료 문제, 왜 침묵하나
이 역시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플랫폼사업자들의 수익구조가 송출수수료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플랫폼사업자들은 수신료와 송출수수료로 먹고 삽니다. 수신료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됩니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은 달라졌습니다. 송출수수료 비중이 급증했는데요. 케이블TV만 보면 수신료는 5년간 710억원 증가했지만 송출수수료는 무려 4100억원 늘었습니다. 송출수수료야말로 케이블TV를 지탱하는 가장 큰 수익원이 된 것입니다. 실제 케이블TV의 영업이익을 보면 홈쇼핑에서 받는 송출수수료와 그 규모가 매우 비슷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엔 송출수수료가 영업이익을 넘어섰죠.
이런 수익기반이 훼손되는 걸 참고있을 기업은 많지 않을 겁니다. 플랫폼사업자들은 송출수수료가 줄어들면 시청자에게서 받는 수신료를 올릴 가능성이 큽니다. 정부가 송출수수료를 건드리지 못하는 것도 수신료 인상이라는 자칫 벌집을 건드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인데요. 판매수수료는 홈쇼핑만 어르고 달래면 되지만, 플랫폼사업자가 받는 송출수수료는 2800만 시청자들의 저항을 감내해야합니다. 정책결정자라면 어떤 길이 편할까요?
◇ 새로운 홈쇼핑이 대안이라고?
정부는 송출수수료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홈쇼핑사들의 요구에도 그 일은 사업자간 자율적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사실상 뒷짐지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겠다며 판매수수료 인하를 압박하고 새로운 홈쇼핑을 만들던 적극성은 플랫폼사업자 앞에만 가면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정부가 제7홈쇼핑 승인을 추진하는 것도 송출수수료에는 손댈 의지가 크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홈쇼핑 6개사가 서로 좋은 채널을 차지하려고 송출수수료 퍼주기 경쟁을 하는 마당에 홈쇼핑이 하나더 생기면 그 결과는 뻔할텐데 말이죠.
미래부가 제7홈쇼핑에 대한 승인심사를 할 때 송출수수료 인하 의지를 보겠다고 했지만, 일단 출범한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게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그동안 홈쇼핑 승인취소라는 칼을 한번도 휘두른 적이 없는 정부가 민간기업도 아닌 제7홈쇼핑에 매서운 칼날을 들이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죠. 황금채널에서 빠진 제7홈쇼핑이 과거 롯데로 넘어간 우리홈쇼핑처럼 결국 대기업 좋은 일만 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옵니다.
◇ 끝나지 않은 판매수수료 문제
홈쇼핑사들의 엄살이 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홈쇼핑사들은 매년 수천억원의 이익을 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과거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홈쇼핑의 취급액 기준 영업이익률은 5%대로 백화점보다 낮습니다. 황금알을 낳던 거위가 평범한 계란을 낳는 암탉이 되고 있는 건데요. 표면적으로 드러난 홈쇼핑의 폭리만 볼 게 아니라 그 밑의 역학관계를 바라보는 것도 홈쇼핑 판매수수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중소기업의 눈물을 닦아주려면 어쩌면 더 많은 인내와 희생이 필요한건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