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술은 새 부대에...’
허인철 부회장(사진)이 오리온에 영입된 지 1년 만에 임원 절반 가까이가 교체됐다. 허 부회장의 거침없는 경영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지난 1년간 대규모 인사와 조직개편으로 조직 재정비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1차 경영 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은 그는 ‘본 시험’을 앞두고 있다. 최근 오리온이 홈플러스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그의 경영 능력은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허 부회장이 작년 7월 오리온으로 영입된 뒤 등기·미등기 임원 17명 중 5명이 교체됐다. 사외이사 2명과 감사 1명, 오너(담철곤 회장, 이화경 부회장)를 제외하면 사실상 임원의 절반이 물갈이된 셈이다.
윤영걸 부사장(홍보 담당)과 김용석 상무(마케팅), 한창수 상무(해외 프로젝트)는 올해 1월1일 사임했다. 담 회장의 비서실장 백운하 전무는 현재 오리온 농구단인 고양 오리온스 단장을 맡고 있다. 크레이티브 부문장으로 2012년 영입된 길정민 상무(디자인)도 퇴사했다.
이 빈자리는 김준신 부사장(영업), 김현섭 상무(연구소), 김재신 상무(청주공장), 박세열 상무(기획관리) 등이 채웠다. 이들은 모두 오리온에서 십 년 이상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오리온과 오리온스낵인터내셔널(OSI)이 합병하면서 OSI 대표였던 김 부사장은 오리온 영업부문장으로 복귀했다. 김현섭 상무와 김재신 상무는 연구소와 충주공장 등을 거친 ‘현장파’다.
허 부회장이 외부에서 직접 데려온 인사도 있다. 올 2월 영입된 박성규 전무(재경)다. 이마트 출신인 그는 허 부회장 ‘라인’이다.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 근무 때인 2011년 허 부회장과 박 전무는 각각 사장과 상무로 승진했고, 2012년엔 나란히 이마트로 자리를 옮겼다. 작년 허 부회장이 오리온에 영입되면서, 박 전무도 이마트에 사표를 내고 허 부회장을 따라왔다. 박 전무는 전공을 살려 오리온의 자금을 총괄하고 있다.
강원기 대표이사(경영총괄), 이규홍 부사장(생산부문), 장세칠 상무(영업), 이종욱 상무(영업), 하상일 상무(인사), 김일주 상무(마케팅) 등은 허 부회장이 취임 이후에도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강 대표는 2010년부터 6년째 오리온을 이끌어온 장수 CEO고, 이 부사장은 2001년 이후 14년째 생산부문을 책임지고 있다.
결국 허 부회장은 마케팅과 디자인, 홍보 등 지원부서 조직은 간소화하는 대신 영업과 생산, 연구 등의 핵심부서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회사 직원들은 허 부회장의 인적 쇄신에 대해 기대하고 있다. 오리온 관계자는 “임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허 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해 직원들은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인사 태풍’은 허 부회장 취임 직후 예고됐다. 허 부회장은 취임 직후인 작년 8월 전략·법무·감사·홍보로 이뤄진 ‘회장실’을 폐지했다. 2012년 회장실 출범 2년 만이다. 허 부회장이 담 회장 구속 이후 가동됐던 ‘비상체제’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이 밖에 아이팩, OSI 등 계열사 통합 작업도 속전속결로 추진했다.
조직을 재정비한 오리온은 최근 대형 인수합병(M&A)에 뛰어들었다. 이달 15일 오리온은 홈플러스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 발표했다.
대형마트는 허 부회장의 ‘전공’이다. 신세계그룹 출신이 허 부회장은 2012~2013년 이마트 대표이사를 지냈다. 그는 또 신세계그룹이 2006년 월마트코리아를 사들일 때 인수 작업을 주도한 경험도 있다. 오리온이 적극적인 인수 의지를 보이고 있어, 이번 홈플러스 인수전이 허 부회장의 경영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