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11시 경기 판교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국내 주요 가구사 대표 10명이 모였습니다. 경기도 주최로 열린 '가구산업발전 공동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참여 기업은 한샘, 현대리바트, 퍼시스, 까사미아, 에이스침대, 에넥스, 일룸, 시디즈, 에몬스, 넵스 등 10곳입니다. 협약은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추진으로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업무협약은 이케아의 국내 진출로 매출에 타격을 입은 국내 중소가구사들을 대기업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자는 취지에서 마련됐습니다. 대기업들이 중국 등 해외에서 상품을 가져와 판매하던 것을, 국내 우수 중소가구기업 30개사를 선정해 물건을 팔아 준다는 게 골자입니다. 평균 한 대기업 당 3개 중소가구사로부터 제품을 더 소싱해 오는 거죠.
국내 10대 가구사 대표가 모인 '흔치 않은' 자리임에도 업계에서는 업무협약의 성과에 대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협약내용이 그간 대기업이 해오던 일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가구 대기업들은 그간 국내 중소가구사에서 80% 정도의 제품을 소싱해 판매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외 소싱은 20% 정도입니다. 3개 중소가구사로부터 제품을 더 소싱해 오는 게 '큰 일'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죠. 협약이 강제성을 띠는 것도 아니라서 사실상 협약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번 협약의 최대 수혜자는 중소가구제조사가 아니라 정치권과 가구대기업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가구대기업은 `중소가구사와의 상생을 위해 노력했다`며 생색을 낼 수 있고, 정치권에서는 `민생을 위했다`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협약이 '이케아 잡기'의 일환이라고 설명합니다. 현재 전문점에도 대형마트처럼 의무휴업을 강제토록 하는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에 계류중입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이케아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따라야 합니다. 국내 가구사들은 가구 판매 비중을 높여 법의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이케아는 피해갈 수 없죠. 이번 법에 '이케아 규제법'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입니다.
업계사정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법안이 지난달 상임위를 통과했다면 이번 협약과 같은 '액션'이 필요했을까 싶다"며 "상임위에서 반응을 안보이니까 정치권과 대기업이 손을 잡고 법안 통과를 위해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국내 가구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이케아를 규제하는 법안을 빨리 통과시켜 달라며 정치권과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자칫하면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진출 외국기업이 해당국의 정부를 통해 한국 외교부에 항의를 할 수 있는 사안이죠. 최악의 경우 EU에서 한국의 한 기업만 '콕' 찝어 불이익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예를 들어 국내 주력 업종인 `자동차`나 `전자제품`으로 보복이 들어온다면 애꿎은 제3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입니다. 중소가구사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시작한 '이케아 잡기'가 외교 분쟁의 불씨를 품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