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지금까지 현대백화점그룹은 조용하고 고집스러운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경쟁사들이 죄다 사업 확장에 나설 때도 현대백화점만은 묵묵히 본업에만 충실했습니다. 단적인 예가 사옥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 본사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 내 금강쇼핑센터 건물에 있습니다. 직접 가보면 국내 2위 백화점의 본사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다른 기업들이 으리으리한 사옥을 지을 때 현대백화점그룹은 외형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쪽을 택했습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약 40여 년간 허름한 건물에서 지내왔던 현대백화점그룹은 드디어 내년 신사옥으로 본사를 이전할 계획입니다. 쓸데없는 곳에 관심을 두지 않겠다는 현대백화점그룹의 기업문화를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랬던 현대백화점그룹이 최근 들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백화점 사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사업영역을 넓혀가더니 이제는 적극적으로 인수·합병(M&A)에 나서고 있습니다. 현재 현대백화점그룹이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 기업만 두 곳입니다. 한화L&C와 전진중공업입니다. 한화L&C는 인테리어 자재 전문업체인데 최근 주목받고 있는 홈리빙 사업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대리바트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업계 1위인 한샘과 본격적인 경쟁을 위해 한화L&C 인수를 노리고 있습니다. 한화L&C는 국내 강화 천연석 부문 시장점유율이 60%대에 달할 정도로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자랑합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한화L&C를 인수한다면 단숨에 업계 1위로 치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진중공업은 조금 생소합니다. 전진중공업은 콘크리트 펌프카 생산업체입니다. 한화L&C는 현대백화점그룹이 기존에 영위하고 있는 사업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전진중공업은 현대백화점그룹이 그동안 해왔던 사업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갑자기 건설장비 업체 인수에 나섰다니 의아하기만 합니다.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지난 2015년 계열사인 현대그린푸드를 통해 '에버다임'이라는 업체를 인수했습니다. 에버다임은 앞서 언급했던 전진중공업과 국내 콘크리트 펌프카 제조 분야에서 1, 2위를 다투는 업체입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미 수 년 전부터 이 분야에 진출해 있었던 겁니다. 따라서 현대백화점그룹의 전진중공업 인수 추진이 마냥 뜬금 없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현대백화점그룹이 노리고 있는 한화L&C와 전진중공업에서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각자 해당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가진 장점들을 극대화하고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겠다는 현대백화점그룹의 생각이 엿보입니다. 즉 현대백화점그룹의 M&A 원칙은 '시너지를 통한 내실 확충'인 셈입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그룹은 한화L&C 인수를 통해 현대리바트와 시너지를 노리고 있습니다. 고급 브랜드 아파트 건설 시 현대리바트와 함께 진출할 경우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더불어 최근 각광받고 있는 홈리빙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현대백화점그룹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괜찮은 시나리오입니다.
▲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인 에버다임에서 생산하는 콘크리트 펌프. |
전진중공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버다임과 시너지를 통해 국내 콘크리트 펌프카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진중공업은 유압드릴과 크레인, 고소작업대 등 182개 모델의 특수장비 차량을 생산하는 전진CMS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전진CMS는 알짜 중의 알짜로 꼽힙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전진중공업을 인수하면 전진CMS도 가져가게 됩니다.
M&A에 있어 가장 큰 화두인 '실탄'도 넉넉합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그동안 내실을 다져왔던 만큼 현금성 자산이 풍부합니다. 현대백화점이 약 6000억원, 현대홈쇼핑이 8000억원 가량 가용 자금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른 계열사들도 사정이 괜찮다는 분석입니다. 현재 한화L&C는 3000억~4000억원대, 전진중공업의 경우는 2500억~3000억원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현대백화점그룹이 큰 변수가 없는 한 한화L&C와 전진중공업을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실탄이 넉넉한 데다 인수 의지도 강해서입니다. 또 인수 후에도 시너지를 낼 만한 요소가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생각입니다. 아울러 그동안 현대백화점그룹이 M&A에서 보여줬던 신중한 행보 등을 고려하면 이미 인수 후 리스크 등에 대해서도 분석이 끝났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백화점그룹이 밖으로는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M&A 시장에서는 굉장히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며 "인수 후 시너지가 확실하고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면 매우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과거 리바트나 한섬 등을 인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제 현대백화점그룹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소극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모습으로 탈바꿈 중입니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요란하지 않되 내실은 챙기는 근간은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그동안 현대백화점그룹을 지탱한 힘이었을 겁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올해 말 시내면세점 오픈 등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어떻게 변신할지 벌써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