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4000원 맥주 4000원.
요즘 많은 일반식당에서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비슷합니다. 바꿔말하면 더 이상 소주가 맥주보다 저렴하지 않은 셈이죠.
이러한 생활 물가는 통계에도 고스란히 반영됩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로 소주와 맥주 가격변동 추이를 살펴보니 최근 몇년새 맥주가격보다 소주가격 상승률이 훨씬 더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1월 기준 외식용(영업용) 맥주 물가지수는 108.12를 기록한 반면 외식용 소주물가지수는 121.06로 나타났습니다.
물가지수는 2015년을 기준으로 100을 잡고 해당 품목의 가격이 얼마나 변했는지를 보여주는 지수인데요. 식당이나 주점에서 마시는 맥주 값이 2015년 대비 8.12% 오르는 동안 소주 값은 21.06% 상승한 것입니다.
'소주파'를 슬프게 하는 이러한 물가상승률 차이는 왜 발생한 것일까요.
먼저 소주와 맥주 가격의 출발점인 출고가를 살펴보겠습니다.
하이트진로, 오비맥주, 롯데주류 등 주류업체가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도매상에 납품하는 가격이 출고가인데요. 2015년 이후 소주와 맥주의 출고가를 보면 대부분의 업체들이 비슷한 시기에 출고가를 조정했습니다.
소주 시장점유율 50%를 차지하는 하이트진로는 '참이슬' 등 소주 출고가를 기존 961.7원에서 2015년 11월 1015.7원으로 5.62% 인상했습니다. 같은해 롯데주류도 '처음처럼' 출고가를 946원에서 1006.5원으로 5.54% 올렸습니다.
맥주 시장점유율 60%를 차지하는 오비맥주는 '카스' 출고가를 2016년 1081.99원에서 1147원으로 6% 올렸고, 같은해 하이트진로도 '하이트맥주' 출고가를 1079.62원에서 1146.66원으로 6.33% 인상했습니다.
출고가만 놓고보면 소주보다는 맥주의 인상률이 더 높습니다. 그럼에도 식당에서 소비자에 파는 판매가격 즉 외식 물가지수는 소주가 맥주를 앞지른 것이죠.
그 이유를 살펴보면 소주의 출고가 인상 이전의 가격이 맥주보다 많이 낮았다는 점을 따져봐야 합니다. 2015년 소주 출고가격이 인상되기 전에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소주 1병당 3000~4000원을 받았습니다. 같은 기간 맥주는 이미 4000~5000원을 받았는데요.
출고가가 인상되면서 식당이나 주점 상인들이 소주값은 대대적으로 1000원씩 올려 맥주와 비슷한 4000~5000원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소주가격이 맥주가격과 동등해진 것이 소주 물가지수를 급격히 높인 핵심 이유입니다.
또 2017년 소주와 맥주의 빈병보증금이 인상되면서 일부에서는 주류가격을 5000원으로 인상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점으로 부차적으로 소주 물가지수를 높인 배경입니다.
대체재의 유무도 소주 물가 상승률을 견인하는 이유로 꼽을 수 있습니다.
소주는 대체재가 많지 않지만 맥주는 국산병맥주 외에도 생맥주는 물론 수입맥주, 수제맥주 등 다양한 대체재가 존재하죠.
염재화 한국기업평가 선임연구원은 "소주는 대체할만한 주종이 많지 않지만 맥주는 수입맥주의 다변화로 인해 대체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수입맥주의 관세율이 낮아 소매가격도 낮으니 상대적으로 국내 맥주 가격 인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3년 수입맥주의 점유율은 4.9%였지만 2014년 6%, 2015년 8.5%, 2016년 11.1%, 2017년 16.7%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외식용 뿐만 아니라 가정용 주류 물가지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정용 소주와 맥주의 물가지수는 올해 1월 기준 각각 113.35, 107.55인데요. 소주는 2015년부터 꾸준히 물가지수가 올랐지만 맥주는 2016년 출고가 인상 이후로 물가 변동이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4캔에 1만원에 구매할 수 있는 수입맥주가 많죠. 맥주시장에서 경쟁상대가 늘어나면서 국산 맥주 판매가를 섣불리 올리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