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의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 열풍이 거세다. 이커머스 플랫폼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던 PLCC는 최근 패션·뷰티 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업계에서는 PLCC가 지금 당장은 카드사와 유통사 사이의 시너지를 낼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간편결제 서비스 등 유통사 자체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PLCC, 왜 인기 끄나
PLCC는 새로운 상품은 아니다. 롯데·현대백화점 등은 계열 카드사와 손잡고 오래 전부터 PLCC와 유사한 상품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당시에는 많은 부가 혜택으로 무장한 '만능 카드'가 시장의 주류였다. 한정된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PLCC에 대한 니즈는 높지 않았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18년부터다. 당시 금융위는 카드사의 과도한 부가서비스가 수수료를 높이는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카드사 경쟁력 강화 및 영업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수익성 심사를 강화했다. 만능 카드 경쟁이 불가능해진 카드사들은 또 다른 시장을 찾아야 했다. 카드 소비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유통업체들이 적합한 파트너로 떠올랐다.
이커머스 업계에게도 PLCC는 효율성이 높은 전략이었다. 쿠팡이 '로켓배송' 등을 앞세워 출혈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시장의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기존 이커머스 플랫폼들에게는 로켓배송에 맞설 수 있는 차별화 요소가 절실했다. 카드를 통해 혜택을 주면서 고객을 플랫폼에 '록인(Lock-in)'시킬 수 있는 PLCC는 입맛에 딱 맞는 수단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커머스 플랫폼의 PLCC는 좋은 성과를 냈다. 이베이코리아가 2018년 현대카드와 손잡고 내놓은 이커머스 최초의 PLCC '스마일카드'는 론칭 2년 만에 11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11번가가 2019년 7월 내놓은 '11번가 신한카드'도 누적 30만장이 발급됐다. 위메프, 배달의민족, 무신사 등의 플랫폼도 PLCC를 내놓는 등 관련 시장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이커머스 외의 시장에서도 고객 록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PLCC는 이를 겨냥해 시장을 넓혔다. 스타벅스는 지난해 10월 '스타벅스 현대카드'를 선보였다. 이 카드는 출시 6개월만에 회원 10만명을 확보했다.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신한카드와 함께 뷰티업계 최초의 PLCC 상품을 출시했다. 이 외에도 SPC그룹, 커피빈 등도 PLCC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한 번이라도 더 매장에 찾아오도록 유도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이다.
'양날의 검' PLCC, 제대로 활용해야
PLCC는 당분간 카드사와 유통사 사이에서 '윈윈(Win-Win)' 효과를 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고객 소비 성향을 데이터화하는 것이 가능해서다. 카드사는 고객 데이터를 활용해 플랫폼 사업 등을 모색할 수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데이터를 활용해 신규 플랫폼을 론칭하거나, 프로모션 전략 등을 보다 효율적으로 마련할 수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PLCC의 유행이 유통업계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국내 PLCC 상품의 구조상 유통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적어서다.
일례로 PLCC의 '원조'인 미국에서는 PLCC의 사용처를 해당 유통사 매장으로 제한하고 있다. 대신 '다양한 혜택'을 '큰 폭'으로 제공한다. 사용처가 제한돼있는 만큼 발급 과정도 단순하다. 이를 통해 미국의 PLCC는 저소득층·저신용자 위주로 빠르게 회원 수를 늘리며 '대세'로 자리잡았다. 유통사는 PLCC 고객을 충성 고객으로 고스란히 흡수했다.
반면 국내 PLCC 상품 대부분은 일반 신용카드에 특정 플랫폼·브랜드의 포인트 적립 등의 옵션이 붙어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일부 카드를 제외하면 일반 신용카드와 발급 조건도 비슷하다.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전월 의무 사용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고객 혜택도 미국의 PLCC에 비해 제한적이다. 이런 탓에 유통사가 누릴 수 있는 PLCC를 통한 고객 소비 집중 효과도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PLCC가 유통사의 간편결제 서비스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PLCC는 카드 발급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과정의 비용과 수익을 카드사와 유통사가 나누게 된다. SSG페이, 쿠팡페이, 스마일페이 등 유통사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에 비해 수익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유통사들은 PLCC 사용자가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에 가입할 경우 혜택을 더욱 높여주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PLCC는 상품 구조상 '유통 특화'보다는 '특정 혜택이 있는 신용카드'에 가깝다. PLCC를 매개로 유통사에 관심을 가지게 될 가능성은 낮다는 이야기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진다면 유통사의 결제 시스템이 카드사에 종속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PLCC는 단기적으로 고객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현재 유통사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적"이라며 "시장 내 영향력이 큰 플랫폼·기업이 아니라면 PLCC가 유통사 간편결제 시스템 등의 자체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PLCC 고객을 자사 서비스 내로 흡수하기 위한 전략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