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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푼다더니" 물 건너간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 2022.08.31(수) 06:50

정부 '규제개혁 1호' 한 달 만에 후퇴
주먹구구식 추진…이해관계자 설득 실패
대형마트·소상공인 '해묵은' 갈등만 키워

/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가 소상공인 등 여론의 반발이 부딪혀 결국 흐지부지됐다. 정부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면서 관련 내용을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대형마트 영업규제 완화 여부를 다룰 예정이던 2차 규제심판회의도 무기한 연기됐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의 월 2회 휴무를 규정한 제도다. 2012년부터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의 주먹구구식 규제 해제 추진이 '좌초'의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이해당사자 간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투표 등을 진행한 것이 소상공인의 큰 반발을 샀다. 노동자 휴식권 등 새로운 문제도 불거졌다. 수년을 기다린 대형마트 업계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번 논란이 과거의 해묵은 갈등만 키웠다는 질책도 나온다. 

이번엔 '될까' 했는데

시작은 올해 초였다. 정권이 바뀌면서 대형마트 규제 해제에 대한 기대가 컸다. 윤석열 정부는 취임 초부터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시장 자율'을 강조해왔다. 특히 올해는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시행된 지 10년째가 되는 해였다. 그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커머스의 등장에 대형마트는 더 이상 강자가 아니었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 등 영향으로 소비패턴까지 변했다. 대형마트의 전성기가 끝났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충분히 규제가 풀릴 수 있다는 예상이었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민심의 변화도 긍정적인 요인이었다. '대형마트 VS 재래시장' 식의 이분법적 사고가 변하기 시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라는 새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규제의 효과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영업규제' 인식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7.8%는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규제 해제가 마치 무르익은 것처럼 보였다.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도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 온라인 배송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다. 정부가 지난달 진행한 '국민제한 톱10' 투표에서도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 폐지'가 1위 안건으로 꼽혔다. 정부가 투표에 '대형마트 격주 의무휴업 규정을 폐지하고 기업 자율에 맡긴다'고 명시한 만큼, 업계의 기대도 컸다.

여전한 '갈등'

10년이 지났어도 갈등은 여전했다. 노동계와 소상공인 단체가 집단 반발했다. 특히 정부가 이벤트성으로 '국민제안 온라인 투표'를 벌인 것이 큰 공분을 샀다. 당사자들에 의견을 묻지도 않고 인기투표로 정책을 결정한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온라인 투표를 두고 공정성 문제도 불거졌다. 대형마트 업계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논란 확산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지도 못했다. 자칫하다간 그간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였다.

대형마트의 점유율을 줄었지만, 온라인·홈쇼핑이 포함된 무점포소매업의 시장점유율은 두 배가 됐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새로운 갈등도 불거졌다. 노동자 휴식권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의무휴업은 골목상권 보호 뿐 아니라 노동자 휴식을 보장하는 권리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특히 대형마트의 업무가 과거보다 더 늘었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온라인몰과의 협업에 따른 배송 업무 증가, 인력 감축에 따른 일손 부족 등을 근거로 들었다. 오히려 '쉴 권리'를 위해 의무휴업을 4일로 늘리자는 의견도 나왔다. 

골목상권 침해 주장도 여전했다. 민심이 돌아섰다 해도 정부 입장에서 소수 의견을 무시하긴 힘들다. 일각에서는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의 '사회안전망'을 없애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규제 해제 이전엔 상생안 마련이 먼저라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여러 시민·소상공인 단체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집권 초기인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지지율마저 떨어지자 코너에 몰렸다. 결국 정부는 '백기'를 들었다.

가던 길 간다

대형마트 업계는 '가던 길을 가겠다'는 입장이다. 규제 해제가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기대했던 '큰 변화'는 당분간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전략도 그대로 유지된다. 점포 리뉴얼, 체험요소 강화 등이 이어질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이커머스와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통의 중심축은 온라인으로 이동한 지 오래다. 대형마트의 족쇄는 10년 동안 이어졌다. 리뉴얼을 통한 '집객'과 온라인몰과의 '연계'는 대형마트가 생존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는 의무휴업 폐지를 시작으로 완전한 규제 폐지를 기대했다. 실현됐다면 다양한 전략을 시도해 볼 수도 있었다. 규제 이전 대형마트는 셔틀버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교외에서 도심의 마트, 백화점까지 손님을 실어 날랐다. 이외에도 여러 오프라인 전략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쿠팡, 마켓컬리와 본격적인 승부를 벌일 발판이 마련되는 셈이다. 특히 대형마트의 의무휴업일은 보통 주말이다. 평일 대비 매출이 2.5배 가량 높다. 실적 개선도 예상되는 부분이었다. 

이번 규제 해제 논란이 자칫 갈등만 키웠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구체적인 청사진 없이 여론몰이에만 급급했다는 것이다. 대형마트, 소상공인 등 이해관계자가 마주 앉아 소통하는 토론의 장도 열리지 않았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절충점을 찾을 기회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다. 주먹구구식 '규제 해제' 선언에 혼란만 가중됐다는 비판이 업계 안팎에서 거세다. 오히려 국민 간의 갈등이 커졌다. 대형마트, 소상공인 양 진영 모두 이번 정부의 조치에 실망감을 드러내는 이유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무려 10년간 규제가 이어졌던 만큼, 이번에는 시대 변화가 정책에 반영되길 기대했다"며 "심도 있는 공론의 장이 열리길 원했지만 온라인 투표 등 공정성 논란으로 논의 자체가 막혀버린 측면이 있다"고 평했다. 이어 "아직 민감한 사안인만큼 정부서도 조심스럽게 나섰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조만간 논의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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