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

명품도 불 태운다…면세점 '멸각'을 아시나요

  • 2024.01.28(일) 13:00

[생활의 발견] 면세점 재고 처리법 '멸각'
명품도 불에 소각…시장 교란 보호 목적

/ 그래픽=비즈워치

[생활의 발견]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소재들을 다룹니다. 먹고 입고 거주하는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해 그 뒷이야기들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보려 합니다. [생활의 발견]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여러분들은 어느새 인싸가 돼 있으실 겁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편집자]

해외여행을 가면 꼭 들르는 필수 코스가 있습니다. 바로 면세점입니다. 고가의 술부터 화장품까지 비싼 제품들이 시중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판매되는 곳입니다. '면세' 말 그대로 세금이 붙지 않아서죠. 외국인 관광객을 통한 외화 획득과 관광 진흥이 면세점의 취지입니다. 이 면세품은 아주 특별하게 취급됩니다. 그래서 재고 처리 방법도 독특하죠. 끝끝내 팔리지 않고 재고가 되면 모두 '불' 태워야 합니다. 심지어 명품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절차를 '멸각(滅却)'이라고 합니다. 이는 관세청 담당자가 입회한 자리에서 지정된 업체를 통해 재고를 소각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수백, 수천만원에 달하는 제품을 그냥 버리는 격이니까요. 헐값에라도 다른 곳에 팔면 안 되는 걸까요. 손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테니까요. 그래서 이번주 생활의발견의 주제는 '면세점의 멸각'입니다. 국내 면세업체들을 통해 알아봤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곰곰이 생각해보면 왜 멸각을 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면세품은 관세와 세금이 면제된 상품입니다. 이런 제품이 국내 다른 유통 채널에 유입된다면 어떨까요. 아마 시장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고가의 사치품이 저가로 팔리게 되니까요. 정부도 이를 불법 유통으로 엄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과거 중국 보따리상(따이공)이 면세품을 구매 후 출국을 취소하고 국내 불법 유통을 일삼아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면세점은 눈물을 머금고 재고를 불 태우고 있는 겁니다. 물론 멸각이 흔한 일은 아닙니다. 먼저 해외 여행객을 대상으로 할인을 하기도 합니다. 이후에도 물건이 남으면 원 구매처에 반송을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면세점은 일부 금액을 보전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면세점과 해당 브랜드와의 계약 조건에 따라 다릅니다. 

최후의 수단이 바로 멸각입니다. 파손 등으로 상품성이 매우 떨어졌거나 장기간 방치되어 악성 재고가 된 경우입니다. 절차가 쉬운 것도 아닙니다. 면세점 독단적으로 멸각 결정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역시 해당 브랜드와 협의를 해야 합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는 할인 등으로 이미지 타격을 받을 수 있어 멸각을 결정하기도 한다"면서 "주기가 다르긴 하지만 여러 상품을 모아 연 1~2회 정도 진행한다"고 말했습니다.

국내 면세점 매출 추이 / 그래픽=비즈워치

실제로 고가 명품을 멸각한 사례가 있다고 합니다. 사실 브랜드 입장에서 할인은 면이 서지 않는 일입니다. 강점인 희소성도 떨어지고요. 그렇다고 반송을 허락하면 면세점에게 일부 값을 돌려줘야 합니다. 이 때문에 차라리 멸각을 선택한 겁니다. 면세점은 모든 상품이 직매입입니다. 재고 부담이 무척 큰 채널입니다. 브랜드에 장소를 제공하고 판매 수수료를 받는 백화점과 다릅니다. 그래서 MD(상품기획) 능력이 참 중요합니다. 

물론 면세점이 국내에서 재고를 판매한 경우도 있습니다. 코로나19 때입니다. 하늘길이 막히며 면세점의 매출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수조원의 면세품이 재고가 될 상황에 처했습니다. 당시 관세청은 한시적으로 국내 아울렛, 온라인몰 등에서 면세품을 팔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내 시장의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 6개월 이상 장기 재고에 한해서만 허용했습니다. 여기에 관세와 부가세도 붙이도록 했습니다. 

당시 면세업계는 한숨 돌렸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덕분에 상당한 수익을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제도는 올해 부로 종료됐습니다. 업계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큽니다. 아직 유커(중국 단체관광객) 등의 복귀가 이뤄지지 않는 등 업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업황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운 일"이라며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추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면세점 멸각으로 알아본 사실입니다. 면세품 재고에 이런 숨겨진 사실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정말 명품이 불태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좀 더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재고 처리 방법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도 듭니다. 곧 설 연휴가 옵니다. 연인, 친구와 해외여행을 계획 중인 분이 많습니다. 면세점을 이용하실 때 오늘 이야기를 떠올려 보는 건 어떠실까요. 아마 재미있는 시간이 되실 겁니다. 

naver daum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