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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인기 떨어져도…면세점 '이전투구' 여전

  • 2024.03.12(화) 07:00

'황금알 낳는 거위' 된 면세 시장
특허 받기 위해 경쟁 상대 비방
면세시장 축소에도 신경전 지속

/그래픽=비즈워치

최근 김포국제공항 출국장 면세점 입찰에서 롯데면세점이 신라를 제치고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면세점에 대한 관심 자체는 예전에 비해 뚝 떨어졌지만 오랜만에 업계 1·2위가 맞붙었던 만큼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롯데면세점은 이번 입찰에서 1000점 만점에 927.16점을 받았습니다. 탈락한 신라면세점의 점수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공항면세점 입찰은 공항의 시설관리권자(공항공사)의 평가 그리고 관세청 특허심사위원회의 평가를 합쳐 최종 점수를 냅니다. 공항공사는 입찰가격(임대료)과 업체의 사업 능력을 평가합니다. 특허심사위원회는 면세점의 관리역량, 경영능력, 상생 방안 등을 봅니다. 

이처럼 면세점 심사 과정은 크게 입찰가와 사업 계획 두 가지로 평가 받습니다. 누가 더 높은 임대료를 써내고 사업 계획을 잘 설명하느냐에 낙찰 여부가 달려있습니다. '기본'을 잘하는 쪽이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장외에서도 아주 치열한 다툼이 있습니다. 바로 '여론전'입니다. 이 장외 여론전에서는 면세업체들은 자신의 강점보다는 상대의 약점을 파헤치는 데 집중합니다. 보통 '네거티브'라고 하죠. 선거에서 정책 대결 대신 상대 후보의 약점을 공격하는 네거티브 선거 운동을 많이들 보셨을 겁니다. 면세업계에서도 수시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면세업이 기본적으로 '특허제'이기 때문입니다.

한정된 특허

면세점을 열기 위해서는 정부로부터 특허를 받아야 합니다. 정부가 면세점 운영 점포 수와 누구에게 특허를 줄 지를 결정합니다. 현행 관세법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보세판매장 제도운영위원회의 심의와 의결을 거쳐 신규 특허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허 심사는 관세청이 합니다. 한때 일정 자격을 갖추면 누구나 면세점을 열도록 하는 신고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실제로 성사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 특히 특허심사위원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여론전이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경쟁 상대를 떨어뜨려야 특허를 획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향이 심해진 것은 2013년부터입니다. 이전에는 면세점 사업자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으면 자동으로 특허가 갱신돼 최장 10년동안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3년 관세법 개정으로 특허기간은 5년으로 짧아졌습니다. 무엇보다 갱신 제도가 사라졌습니다. 사업자들이 5년마다 사업권을 다시 받아야 하니, 경쟁이 과열되는 게 당연했습니다.

때마침 국내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면세시장도 이들을 따라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특히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관광 코스에 포함된 시내 면세점이 급성장했습니다. 정부는 새 면세점을 열기 위해 신규 특허를 내놨고 이를 획득하기 위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잇따라 참전했습니다.

상대를 떨어뜨려라

면세업계의 이전투구 양상이 가장 심했던 때는 '면세점 대전'이 벌어졌던 2015~2016년입니다. 이때 서울에 신규 특허가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러자 각 업체들은 과장 홍보와 경쟁사 약점 들추기로 여론전을 펼치기 시작했죠.

당시 HDC신라면세점은 후보지로 내세웠던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의 '면적을 부풀렸다'는 논란에 시달렸습니다. 현대백화점면세점은 특허 취득 시 LVMH의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키기로 부루벨코리아와 '확약'했다고 홍보한 것이 과장된 것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은 독과점 논란에 계속 휘말린 데다, 소상공인과 마찰이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특정 회사가 관세청에 로비를 했다는 논란도 있었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 모든 이야기들은 경쟁사들에 의해 부풀려지고 재확산했습니다. 경쟁사의 단점을 언론에 흘려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심사 점수가 공개되지 않는 '깜깜이' 심사가 이뤄졌습니다. 따라서 누가 왜 특허를 획득하거나 하지 못했는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진흙탕 싸움은 더 심했습니다. 얼마나 심했는지 관세청이 업체들을 불러다 부정 경쟁 행위에 대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 하기도 했을 정도였죠.

이런 양상은 공항 면세점 입찰로까지 번졌습니다. 2018년 중견 면세사업자 시티플러스는 신라면세점이 인천공항 향수·화장품 사업권을 획득하면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공문을 인천공항공사에 전달했습니다. 신세계는 같은 해 직원들의 '밀수' 혐의가 적발됐는데, 조선호텔 면세사업부 합병 이전의 일임에도 입찰 과정에서 여러 차례 거론됐습니다.

기본에 충실해야

이런 업체들간의 진흙탕 싸움은 최근 수그러든 듯 보입니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입국이 막히면서 면세시장이 크게 침체돼있기 때문입니다. 한화나 두산 같은 대기업은 물론 중소중견 사업자들까지 사업을 접으면서 면세사업자의 수도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여론전의 역할을 믿는 곳도 있습니다. 최근 진행된 김포공항 면세점 입찰에서는 롯데가 사업권을 획득할 경우 '독점'이 된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하지만 김포공항에는 DF1(화장품·향수)와 DF2(주류·담배) 2개 사업권이 있습니다. 두 곳의 품목이 겹치지 않아 독점이라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해외에도 공항의 면세점을 한 업체가 모두 운영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업계에서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며 롯데가 사업권을 가져가는 걸 저지하려고 했죠.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런 이야기들이 심사위원의 귀에 들어가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예 영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롯데의 독점 우려를 제기한 곳은 다른 업체였습니다. 과거 문제점으로 지목됐던 '네거티브 여론전'이 이번에도 재현된 셈입니다. 통상 의혹을 제기한 쪽은 숨습니다. "그런 일이 없다"고 발을 뺍니다. 반면 당한 쪽은 억울해 합니다. 면세점 시장이 침체된 상황임에도 여전히 물밑에서의 이전투구는 계속되고 있는 겁니다.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업자의 사업 계획과 역량입니다. 한때 훨씬 더 중요했던 임대료의 경우 관련 제도가 지속적으로 보완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젠 사업 계획에 더 많은 배점이 주어집니다. 좋은 사업자를 뽑는 것이 침체된 우리 면세업계를 다시 살리는 길일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본'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물밑에서의 이전투구를 벌이기 보다는 수면 위에서 정정당당히 사업계획으로 승부를 볼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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