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 신화'를 써내려가던 명품 브랜드들이 지난해 국내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소비 침체 장기화 탓이다. 인기가 높은 브랜드들은 대부분 매출이 늘었지만 성장세가 꺾였다. 이때문에 수익성이 크게 악화했다.
에루샤디 합쳐 5조 넘었지만
지난해 명품 브랜드들의 국내 법인 실적을 살펴보면 이른바 '에루샤디'로 불리는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디올의 매출액 합계는 5조1977억원을 기록했다. 4개 브랜드의 매출액 합이 5조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그러나 각사의 실적을 살펴보면 성장세 둔화가 뚜렷하다. 샤넬코리아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이 1조7038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7.1% 성장하는 데 그쳤다. 전년 대비 매출액 성장률이 2021년 31.6%, 2022년 30.0%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급감한 수치다. 샤넬코리아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721억원으로 전년보다 34.1% 감소했다.
루이비통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마저 감소하며 매출기준 국내 명품 1위 자리를 샤넬에 내줬다. 루이비통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6511억원, 영업이익은 2867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4%, 31.4% 줄었다.
크리스챤디올꾸뛰르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2.4% 늘어난 1조456억원을 기록, 매출 1조 달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3.6% 줄어든 3120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에르메스코리아만 성장세를 이어갔다. 에르메스의 경우 지난해 매출액은 전년보다 22.6% 성장한 7972억원을 내면서 3년 연속 2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2.0% 증가한 2357억원이었다.
시계·주얼리 브랜드 타격
이들 상위 브랜드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중하위권 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매출액이 급감하면서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펜디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1522억원)이 소폭 성장했으나 8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페라가모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액(984억원)과 영업이익(25억원)이 전년 대비 각각 29.9%, 70.6% 줄었다. 발렌티노코리아는 영업이익이 259% 늘었지만 매출액은 16.5% 줄어든 511억원에 머물렀다.
특히 시계·주얼리 브랜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시계와 주얼리는 상대적으로 가방보다 수요가 적다. 이 탓에 소비침체의 충격을 그대로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또 코로나19가 끝난 직후의 결혼 특수가 수그러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티파니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액이 3509억원, 영업이익이 216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3%, 1.7% 감소했다. 불가리코리아 역시 지난해 매출액이 3399억원에 전년 대비 2.8% 줄었다. 영업이익도 8.4% 감소한 477억원에 머물렀다.
'오메가', '해밀턴' 등을 전개하는 스와치그룹코리아의 매출액은 전년보다 17.5% 감소한 3079억원에 그쳤다. 영업이익은 73.4% 급감한 139억원에 머물렀다. '롤렉스'를 운영하는 한국로렉스는 지난해 매출액이 전년보다 1.6% 감소한 2944억원을 기록, 선방했지만 영업이익은 46억원으로 85.9%나 쪼그라들었다.
소비침체 영향 지속
일부 명품 브랜드들은 수익성 악화로 본사에 보내는 배당을 축소하고 있다. 샤넬코리아는 주로 매년 3월에 전년 실적에 대한 중간배당을 본사에 지급해왔다. 올해 3월 중간배당은 975억원에 그쳤다. 지난해 중간배당 2950억원과 연차배당 2000억원 등 총 4950억원을 지급한 것과 비교하면 급감한 수치다.
스와치그룹코리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년도 실적에 대한 배당을 지급하지 않았다. 한국로렉스는 지난해에는 3월 중 350억원의 배당을 한 것과 달리, 올해는 배당을 하지 않았다. 페라가모코리아도 지난해 3월 150억원의 중간배당을 했으나 올해 3월에는 배당이 없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명품업체들의 성장률 둔화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명품 브랜드들은 '보복소비'에 힘입어 고공 성장했으나, 이미 고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많다. 또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있어 당분간 명품에 대한 수요가 다시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도 최근 명품 브랜드들이 지속해서 수 차례 가격 인상을 단행한 점도 수익성 악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백화점에서 명품 카테고리 매출이 감소했는데 전반적인 소비 침체가 계속되고 있어 이 같은 추세가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