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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하이트진로, 진로 '더 순해진' 사연

  • 2024.03.18(월) 17:03

하이트진로, 15.5도 '진로 골드' 출시
롯데칠성 '새로' 인기 잡기 위한 제품
저도수 트렌드 "13도 밑으론 안 내려가"

그래픽=비즈워치

15.5도

하이트진로가 지난주 소주 신제품을 내놨습니다. 바로 15.5도의 '진로 골드'입니다. 기존 16도의 '진로(진로이즈백)'나 '참이슬 후레쉬', '새로'보다 0.5도 낮은 '초저도수 소주'입니다. 

진로 골드라는 이름이 어쩐지 낯익은 분들도 계실 텐데요. 아이러니하게도 하이트진로의 소주 제품들 중 가장 도수가 높은 25도짜리 소주의 이름이 진로 골드입니다. 지난해 '진로25'로 이름이 바뀌었는데요. 지금와서 보니 진로 골드라는 이름을 15.5도 신제품에 내주기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이트진로의 신제품 소주 '진로 골드'/사진제공=하이트진로

사실 15도대 소주가 새로운 건 아닙니다. 특히 몸이 가벼운 지방 소주 브랜드들이 저도수 트렌드에는 한 발 빠릅니다. 무학은 지난 2018년 '좋은데이 15.9도' 제품을 내놨었구요. 지난해 맥키스컴퍼니는 14.9도짜리 '선양'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이트진로도 15.5도 소주를 내놓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10년 15.5도의 도수에 아스파라긴·알라닌·메티오닌·글루타민·글리신 등 5가지 아미노산까지 넣은 '즐겨찾기'라는 소주를 내놨었죠. 트렌드를 15년쯤 앞서간 결과는 소리소문 없는 단종이었습니다. 

'초저도수 소주' 내놓는 사연

일반적으로 시장의 '질서'를 깨는 파격적인 제품을 출시하는 건 후발주자의 몫입니다. 리딩 업체는 기존 트렌드를 따르며 점유율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주 시장에서도 17도, 16.5도, 16도 제품을 먼저 내놓은 건 하이트진로가 아닌 롯데칠성이었습니다. 하이트진로의 '진로 골드' 출시에도 '추격'의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이트진로는 2019년 레트로 타입의 병을 도입한 진로이즈백을 출시하며 한 때 시장 점유율이 65%를 웃돌기도 했습니다. 처음처럼이 일본 불매운동 여파에 매출이 감소하며 진로 매출만으로도 처음처럼을 잡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죠.

그래픽=비즈워치

하지만 롯데주류가 2022년 16도로 도수를 낮추고 '제로 슈거' 콘셉트를 입힌 '새로'를 선보이며 반격에 성공합니다. 이에 하이트진로도 황급히 진로이즈백의 도수를 낮추고 제로 슈거 제품을 출시하지만 '새로 돌풍'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진로 골드가 2030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새로를 잡기 위한 제품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진로이즈백이 어느덧 출시 6년차를 맞이하며 신선함이 사라진 만큼 신제품으로 젊은 층의 관심을 얻겠다는 거죠. '쌀 100% 증류 원액'을 첨가한 것도 쌀과 보리 증류 원액을 넣은 새로나 진로이즈백과의 차별화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몇 도까지 내려갈까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소주 업계에서는 소주의 도수에 '마지노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2009년 업계 2위였던 롯데주류(현 롯데칠성)가 16도대 소주인 '처음처럼 쿨'을 출시하자 하이트진로의 한 임원은 "17도 미만으로 내려가면 '물 탄 소주' 맛이 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며 저도수 소주를 출시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죠.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습니다. 소주의 도수는 꾸준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2006년 참이슬이 19.8도짜리 소주를 내놓으며 20도 벽을 깬 이후 소주업계는 2~3년에 한 번 꼴로 도수를 낮추고 있습니다. 이제 '물 탄 소주'가 대세가 된 겁니다.

주요 희석식 소주 도수 변천사/그래픽=비즈워치

그렇다면 10년이나 20년쯤 후에는 10도짜리 소주도 등장할까요? 주류업계에서는 또 한 번 '마지노선'을 거론합니다. 바로 '13도'입니다. 이 알코올 도수대에는 인기 주류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우선 레드와인이 있죠. 또 청주와 사케도 있습니다. 소주가 여기까지 도수를 내리면 와인, 청주와 경쟁해야 하는데 맛이나 풍미 등에서 사실상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국내 소비자들이 소주를 음용하는 방식 중 하나인 '소맥'을 만들기에도 13도는 너무 낮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소주의 도수가 16.5도에서 13도로 떨어지면 소맥 한 잔의 도수도 1도 가까이 떨어집니다. 제아무리 소비자들이 '부드러운 술'을 선호한다 해도 여기까지 내려가지는 않을 거라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15년 전에도 지금의 15.5도 소주를 상상할 수 없었듯, 지금의 우리는 15년 후의 음주 문화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물 탄 소주'가 별로라고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2040년에는 진짜 소주에 물을 타 마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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