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띄우기에 나섰던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오히려 금융권에 경쟁 자제를 요청했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아직 제대로 준비하지도 않은 상품을 두고 경품 경쟁을 벌이는 등 과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2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금융위원회에서 'ISA 준비 점검회의'를 열고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 = 금융위원회) |
임 위원장은 24일 서울 세종대로 금융위원회에서 'ISA 준비 점검회의'를 열고 "유치 고객 수나 점유율 같은 외형 경쟁에 치중하는 금융사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불완전 판매 문제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며 "금융당국은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미스터리 쇼핑, 불시 점검 등 현장 점검을 강도 높게 시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애초 'ISA 준비 점검회의'는 금융당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이 제도의 분위기를 띄우려는 성격이 짙었다. 15일 활성화 방안을 내놓고, 다음날인 16일 점검회의를 열 예정이었는데, 국회 정무위원회 일정과 겹쳐 연기했다. 그런데 최근 은행과 증권사 간 과열 경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일부 소비자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경쟁 자제'를 경고하는 자리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관련 기사 : ISA 묻지마 경쟁, 준비도 안했는데…
금융당국은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번 방안을 마련했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 보호 우려보다는 '금융사 간 경쟁을 통한 소비자의 선택 확대'에 방점을 찍었다. 금융사가 제안하는 모델 포트폴리오를 소비자가 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일임형 ISA'를 은행에 허용해주고, 온라인 가입을 가능하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선 금융사가 모델 포트폴리오를 금감원에 사전 보고 하는 정도의 장치만 언급했다. 관련 기사 : 은행 ISA도 간편하게…증권사와 진검승부
그러나 1인 1계좌, 3~5년의 의무 가입 등 ISA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런 과열 경쟁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ISA의 긍정적인 면에 대한 홍보에만 치중해, 뒤늦게야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가 지난 15일 ISA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가, 바로 며칠 뒤 '금융사 간 계좌 갈아타기'를 허용하겠다고 추가 보완책을 내놓은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계좌 갈아타기를 허용하면, 소비자들이 수익률에 따라 금융사를 옮길 수 있으니 '고객 선점 효과'가 줄어든다.
소비자단체인 금융소비자원은 "ISA 판매는 의무가입기간 축소, 고객 투자 성향 제도 개선, 금융사 배상 책임 등 소비자 보호 관련 제도를 보완한 뒤 시행해야 한다"며 금융당국의 '준비 미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임 위원장은 이날 은행들의 '자사 예·적금 편입' 요구에 대해 "제도 설계가 마무리된 만큼, ISA 운영방식에 더는 논란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은행에서 ISA에 가입하려는 고객은 해당 은행의 예·적금은 ISA 계좌에 넣을 수 없다.
금융위는 "2005년 도입한 퇴직연금에 예외적으로 편입을 허용했는데, 은행들이 이를 활용해 특정 사업장이나 가입자를 차별적으로 취급하고, 원리금 보장 상품 중심의 운용과 이에 따른 수익률 저하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행이 ISA를 자행 예·적금 판매 실적을 올리는 우회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고, 과거와 같은 운용방식으로 ISA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