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 25일 시행을 앞둔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 시행령 제정안을 놓고 금융권이 대응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보험업계 또한 생·손보협회를 중심으로 보험사들과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의견을 모으는 등 분주한 모습입니다.
보험업계의 핵심 건의사항들을 통해 금소법 시행령 제정안의 쟁점과 내용을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위법계약해지권' 신설…보험권엔 전화위복
위법계약해지권은 금소법에서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 새롭게 도입한 권리입니다. 보험권은 이미 청약철회, 품질보증해지, 민원해지 등의 소비자 권리가 적용되고 있었던 만큼 가장 부담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시행령 뚜껑을 열고 보니 오히려 보험사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위법계약해지권은 모든 금융상품에 대해 판매규제 위반 시 금융소비자가 계약일로부터 5년, 위법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내 계약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현재도 소비자가 약관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으나 이 경우 중도 계약해지에 따른 위약금이나 수수료 부담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추가 부담 없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입니다.
소비자 권리가 강화되는 만큼 금융사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보험업계는 당초 우려했던 것만큼 충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보험은 상품이 어렵고 복잡한데다 그만큼 민원이 많아 금융권 가운데서도 굉장히 보수적이고 강한 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몇 년 전 생보사들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보험금을 지급해야 했던 자살보험금의 경우 자살을 재해로 보기 어렵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음에도 감독당국은 자살 시에도 가입후 2년이 경과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겠다는 약관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생보사들은 소멸시효나 배임 등의 문제를 거론하며 지급을 미뤄왔지만 금감원이 대표이사 문책을 비롯한 영업정지 등 중징계를 내리자 소멸시효에 상관없이 지연이자를 포함한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한 바 있습니다.
지금도 즉시연금 지급과 관련한 소송이 진행 중이며, 암보험금 지급 관련 분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소비자들은 10년 전 계약, 이미 종료된 계약까지도 민원을 많이 낸다"며 "지금까지는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보니 금감원이 분쟁조정 등에서 정하는 대로 다 지급해야 했지만 위법계약해지권이 생기면서 오히려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위법계약해지권은 계약상 위법사항이 있어도 계약 후 5년이 지나거나, 악용을 막기 위해 5년이 지나지 않아도 가입자가 위법 사실을 알게 된 후 1년이 지나면 권리가 소멸됩니다.
이전까지는 보험의 특성을 감안해 규제를 적용해 왔지만 금소법은 개별 금융법에 산재됐던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을 한데 모으면서 '규제 형평성'을 가장 중심에 둔 채 마련됐습니다. 이 때문에 업권의 특수성을 감안한 강화된 규제를 적용하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금소법 시행으로 은행이 50평대 아파트에서 30평대로 갑자기 좁은 집에 살게 됐다면, 보험은 20평대에서 30평대로 넓어진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금소법 시행을 앞두고 은행 등에 비해 보험업권이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끼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 과태료 10배 상승...설계사 부담 커 영업위축 우려
하지만 보험업계는 설명의무 등 판매행위 규제 강화와 높아진 과태료로 인해 코로나19로 악화된 영업환경 속에서 추가적인 영업위축에 따른 수익감소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보험은 미래에 발생할 불확실한 사건으로 보험금이 결정되는 특수성으로 인해 민원이나 분쟁 가능성, 불완전판매 등이 타 금융권보다 높은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금소법은 설명의무 등 판매행위 규제를 강화하고 위법계약해지권 등을 도입해 소비자 권리를 보다 확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합니다. 개별 금융업법에 산재돼 있던 6대 판매규제 ▲적합성원칙 ▲적정성원칙 ▲설명의무 ▲불공정영업금지 ▲부당권유금지 ▲광고규제 등을 통합해 위반 시 처벌하며, 판매규제 등을 위반한 금융사에게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합니다.
보험업계는 특히 설명의무 위반으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할 경우 과실 금융사로 입증책임을 전환한 것과 과태료·과징금 부담 확대로 인한 보험설계사의 영업력 위축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설명의무 위반 시 법인은 7000만원, 보험설계사는 3500만원을 부과하도록 해 현행 보험업법 대비 10배 높은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험업계는 자칫 계약 1건으로 설계사 평균 연봉에 달하는 과태료를 내야해 대량의 신용불량자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너무 과도한 과태료 수준을 일정부분 낮춰달라는 건의를 올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보호 입장에서 설명의무를 지키지 않은 부분에 대해 제재를 하는 것은 맞지만 설계사 평균 연봉이 3000만~4000만원 수준이고 더 영세한 설계사도 많은데 1년 연봉으로 감당할 수 없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과하다"며 "설명을 해도 고객이 듣지 못했다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설계사 수익을 고려한 합리적인 수준에서 과태료 하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금소법은 보험상품에는 적용되지 않았던 적합성 원칙 위반 시에도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를 물도록 하고 있으며 적합성, 적정성 원칙을 제외한 판매규제 위반 시에도 관련 수입의 최대 50%까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습니다.
◇ '계약대출'도 일반 대출상품 포함…예외 적용 건의
금소법에서는 금융상품의 유형을 ▲예금성 ▲대출성 ▲보장성 ▲투자성으로 분류하고 해당유형에 속하는 여부에 따라 법 적용범위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상품이 2개 이상 유형에 속할 경우 두 상품의 규제가 모두 적용되는 식입니다.
금소법에서는 보험사의 보험계약대출(일명 약관대출)도 일반 대출 상품으로 보고 있습니다.
약관대출은 가입한 보험에서 보험을 해지하지 않고도 보험해지환급금 내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보험계약적립이율에 가산금리를 붙여 이자를 받지만 납입한 보험료 내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대출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관대출은 보험계약에 딸려있는 일종의 선급금 개념으로 일반 대출상품이랑은 다르다"라며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등 일반적인 대출상품으로 규제할 경우 오히려 소비자가 불필요한 규제를 받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보험업계는 금소법 시행령에서 보험계약대출을 일반 대출성 상품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할 방침입니다.
◇ 의무보험인 '자동차보험' 청약철회권 예외 인정 요구
앞서 말했듯 금소법은 각 업권별 규제를 하나로 만드는 과정에서 규제 형평성을 중시하다보니 개별법의 예외 규정들을 많이 제외했습니다.
청약철회권은 다른 업권에는 신규 도입되는 소비자권리이지만 보험에는 이미 적용되고 있었는데 일부 예외규정이 있었습니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책임보험에 한해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라는 누구나 가입해야하는 의무보험 입니다. 비운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이기 때문에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상에도 청약철회권에 대해 예외규정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차보험은 의무보험이라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데 전 업권의 소비자보호 관련 법안을 합치는 과정에서 이러한 예외규정들이 빠진 부분이 있다"며 "이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으로 당국에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양 협회는 업계 의견을 취합한 건의안을 마무리 지어 다음주 중 금융위에 전달한다는 방침입니다. 금융위는 오는 12월 6일까지 의견수렴를 마치며, 내년 3월 25일부터 금소법을 본격 시행합니다.
* 품질보증해지 : 모집과정에서 설명의무, 자필서명, 약관이나 청약서를 교부하지 않는 등 3대 규정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 3개월 내 취소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 낸 보험료를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음.
* 민원해지 : 보험사나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해 보험계약을 해지하는 방법. 불완전판매로 인정될 경우 해지를 통한 환급을 받을 수 있음. 행사가능 시점에 거의 제한이 없다는 점에서 품빌보증해지와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