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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스토리]병원 보습크림, 실비지급 박해진 이유

  • 2022.01.20(목) 06:10

현대해상, MD크림 실손보험금 4년새 4.8배↑
일부 도덕적 해이로 실수요자도 보험금 청구 불가

# 20대 직장인 최씨는 요새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소소한 용돈 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최근 피부염으로 피부과를 찾았다가 "실손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냐"는 말에 피부보호제인 제로이드 MD크림(Medical Device, 점착성투명창상피복재)을 50개 처방받았거든요. 모두 150만원이 넘는 MD크림 비용 중 대부분은 실손보험으로 돌려받았죠.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MD크림 하나당 5000원 정도 더 올려 받으면 딱 일 것 같았습니다. MD크림을 구매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고 최씨는 오늘도 'Yes!'를 외쳤습니다.

# 30대 전업주부 김씨는 5살 아이의 아토피 치료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건조한 날씨 탓에 피부 가려움증이 더 심해져 칭얼대는 아이를 살피는 데 여념이 없죠. 피부과에서 처방받은 MD크림을 발라주면 가려움증이 금세 가라앉는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요.

평소와 같이 피부과에서 MD크림을 10개 정도 챙겨온 김씨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DB손해보험에서 MD크림에 대한 실손보험금을 내원 1회당 1개만 지급한다는 겁니다. 억울하게(?)도 같은 병원에 다니는 박씨는 삼성화재 실손보험으로 전부 처리됐죠. DB손보에 따져 물으니 보험금 지급기준이 회사마다 달라서라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김씨는 추운 겨울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닐 일이 걱정됐습니다.

보험사들 "MD크림, 보험금 못준다" 

대형 손해보험사들이 아토피 등 피부염 환자들이 사용하는 보습제 MD크림의 실손의료보험금 지급을 일부 거절하면서 논란입니다. 제로이드MD와 아토베리어MD 등이 대표적인 MD크림 제품인데요. 이제까지는 일반 화장품과 달리 의료기기로 분류돼 피부과 등에서 비급여 처방을 받은 뒤 실손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이를 악용해 MD크림을 대량으로 구매한 뒤,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재판매하는 부작용이 이어졌습니다. 보험사들이 허겁지겁 보험금 지급 중단을 결정한 이유입니다. 문제는 치료 목적으로 MD크림을 이용해 온 선량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당 청구 적발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데요. 더 자세히 알아보시죠. 

/그래픽=아이클릭아트

최근 현대해상, DB손보,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대형 손보사들은 MD크림 실손보험 청구에 대해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진 직접처치가 확인되고 내원 1회당 MD크림 1개만 지급해주는 식이죠. 입원의 경우 입원기간내 의료진이 처치한 MD크림 사용 개수를 확인한 후 보험금을 준답니다. 

당초 현대해상과 DB손보가 전액 지급 거부를 선언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마저도 완화된 것"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전엔 전부 실손보험으로 처리됐던 것들이었죠. 

MD크림에 대해 지급 거부 의사를 가장 처음 밝힌 건 현대해상입니다. 2019년 8월에 난 대법원 판결이 근거가 됐는데요. 당시 대법원은 화상 치료 목적으로 사용한 보습제에 대한 보험금 지급 여부를 다투는 재판에서 '입·통원의 제 비용은 의사가 주체가 되는 의료행위로부터 발생한 비용만 의미한다'고 판결했죠. "의료진의 권고만으로 MD크림을 탔다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취지"라고 보험업계는 설명합니다. 

실손보험 이미 적자…MD크림은 안돼!

손보사들이 대법원 판결이 나온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지급거부에 나선 건 관련 보험금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탓입니다. 일례로 현대해상의 MD크림 보험금 지급액은 2018년엔 48억원에 그쳤지만 2019년에는 105억원, 2020년에는 169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었고 지난해엔 231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4년새 4.8배 급증한 셈입니다. 보험사들로서는 이미 백내장 수술이나 도수치료로 실손보험 적자가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MD크림까지 부담이 되는 건 막아야 했죠. 

강화된 보험금 지급 지침이 업계에 확산되면서 보험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데 한창입니다. '의사가 상처 부위에 직접 크림을 바르고 진료 소견서를 받으면 된다',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실수요자가 피해를 보는 건 부당하다'는 볼멘소리가 대부분이고요. 일부는 '어떤 보험사는 MD크림 가격을 전액 보상하고, 어떤 보험사는 보상하지 않는 게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넣겠다'고 으름장을 놨습니다. 

급기야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죠. 청원인은 지난 6일 '아토피 질환 로션 실손보험(실비) 청구를 도와주세요'라는 게시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MD크림은) 의사가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피부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며 "3만5000원~5만원이나 하는 비싼 MD크림을 이틀에 한 통씩 쓰는 환자는 부담이 크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습니다. 이 청원은 이주일 만에 1만6000여명이 동의했죠.

금융당국-보험업계, 실손 문제 해결 맞손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지난해 7월부터 실손보험 비급여 보험금 누수 방지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비급여 진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심사 강화방안 등을 논의 중입니다. 이날 금융당국은 기획재정부, 보험연구원, 보험협회 등과 함께 '지속가능한 실손보험을 위한 정책협의체' 발족(Kick-off) 회의도 개최했죠.

TF나 협의체의 이름은 다르지만 모인 이유는 같습니다. 실손보험 적자의 주 원인인 비급여 관리를 강화하자는 게 핵심이고요. 보험금 누수방지를 위한 보험사기 사전예방에 힘쓰자는 겁니다. 특히 MD크림 등을 중고거래 플랫폼이나 사이트에서 되파는 건 보험사기는 물론 의료기기법 위반에도 해당됩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MD크림을 비롯해 △백내장 수술 △갑상선·고주파절제술 △하이푸(고강도 집속 초음파) △맘모톰 △비밸브재건술(코) △도수치료(근골격계) △양악수술·오다리·탈모 △비급여약제 등의 심사 문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인데요.

이들이 실손보험 지급기준을 손보는데 뜻을 모은 건 큰 폭의 적자로 실손보험 운영 자체가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보험사들이 실손보험에서 발생한 적자만 3조6000억여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해 실손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가 2010년 30개사에서 지난해 10월 15개사로 반토막이 났죠.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의 존속을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선량한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보험사간 지급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쓴소리를 흘려 들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MD크림의 예처럼 말입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실수요자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부당 청구 행위 적발을 강화하고 명확한 보상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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