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프레’라는 말이 어울리지 싶다. 후계자의 1인회사가 벌이는 제법 돈 되는 사업들 상당수가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부친이 경영권 유지와 재산 증식의 보루로 삼고 있는 개인회사를 살찌우는 데 알차게 이용해 온 간판 계열사의 일감들과 겹친다.
중견 에너지그룹 SCG 얘기다. 한마디로 오너 김영민(79) 회장의 저비용 고효율의 서울도시가스 활용법은 이제 와서는 장남 김요한(42) 부사장의 후계세습에 효험을 낼 것으로 점쳐진다. 달리 ‘값싼 승계’가 점쳐진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서울가스 뒷배 둔 계열 통합
‘[거버넌스워치] 서울도시가스 ⑤편‘ 언급한 김 부사장의 ‘나 홀로 회사’ 에스씨지솔루션즈의 전신 ‘에코끼리(ECOKIRI)’는 2008년 11월 설립 초기만 해도 유기농식품 쇼핑몰 ‘에코끼리’를 운영하던 업체다. 다만 오래 하지는 않았다.
2010년 3월 주력사업을 싹 갈아엎었다. ‘서울도시산업’으로 사명을 갈아치운 것도 이 때다. 김 부사장이 2009년 5월 5000만원에 이어 1억5000만원을 추가 출자한 무렵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서울가스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산업의 뒤를 봐주기 시작했다. 배관설비공사 및 용역관리를 맡겼다. 이외에도 서울가스 콜센터도 담당했다.
‘[거버넌스워치] 서울도시가스 ④편‘을 읽은 독자라면 언뜻 떠오를 법 하다. 맞다. 김 회장의 1인 회사 서울개발이 하던 알짜사업이다. 엄밀히 얘기하면, 2006년 12월 서울개발에 흡수된 또 다른 개인회사 서울도시가스엔지니어링(ENG)의 핵심사업이었다. 즉, 김 회장이 김 부사장을 위해 ’돈 되는‘ 사업을 물려준 정황이다.
게다가 서울산업은 매년 예외 없이 서울가스 매출이 불어났다. 2010년 62억원 하더니 2012년에는 142억원을 찍었다. 벌이가 안 좋을 리 없다. 매출이 77억원에서 316억원으로 뛰었고, 영업이익으로 적게는 14억원, 많게는 21억원을 벌어들였다. 총자산 180억원에 이익잉여금이 88억원 쌓여있던 이유다.
서울산업이 설립 이듬해인 2009년 11월 100% 출자해 설립한 SCG솔루션즈는 원래부터가 서울가스와의 거래가 적잖았던 곳이다. 기업용 IT제품 유통 외에 계열사들의 IT 유지 보수를 담당했다. 2012년 매출 405억원 중 14%(57억원)를 서울가스로부터 올렸다는 게 증거다.
합병 무렵 서울가스 빌딩관리까지 담당
한 가지 더. 2013년 8월 SCG솔루션즈가 100% 모회사 서울산업을 흡수하며 통합법인인 될 무렵 돈 되는 사업이 하나 더 생긴다. 바로 서울 강서구 염창동 사옥 등 서울가스의 빌딩․시설 관리사업이다.
원래 서울개발이 영위했던 사업 중 하나다. 즉, 서울개발이 2011년 1월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로 지정된 뒤 2013년 서울가스와의 내부거래를 끊고 자체사업을 모두 정리할 당시 이 사업 또한 김 회장이 김 부사장에게 넘겨줬다고 볼 수 있다. 수치로도 확인된다.
2013년은 SCG솔루션즈의 서울가스 매출이 224억원이나 됐던 해다. 시스템통합(SI) 22억원, 가스배관공사 80억원, 도시가스위탁용역 84억원 외에 건물관리 분야도 39억원으로 적잖았다.
(참고로 SCG솔루션즈의 도시가스 배관공사 사업은 2014년 100% 자회사인 에스앤네트웍스에 넘겼다가 2018년부터 다시 자체 사업으로 가져왔다. 그 해 10월 에스앤네트웍스를 흡수합병한 데 기인한다.)
꿋꿋하다. SCG솔루션즈는 지금도 서울가스와 내부거래가 이어지고 있고, 점점 불어나고 있다. 게다가 돈이 된다. 사실 IT 제품 유통 분야는 매출 비중만 컸지 도매업의 특성상 마진이 박한 반면 서울가스와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제법 쏠쏠하다는 뜻이다.
서울가스 내부거래 높은 마진율
SCG솔루션즈는 매출이 2018년 1000억원을 넘어선 뒤 2022년에는 3090억원을 찍었다. 이 중 상품매출이 86%(2670억원)다. 델테크놀로지스, 씨게이트, 벤큐, 아리스타네트웍스 등 글로벌 IT사를 비롯해 글로벌 태양광 셀·모듈 제조사 공식총판이어서다. 반면 마진율은 6.9%(매출이익(상품매출-상품매출원가) 183억원/상품매출 2670억원)에 머문다.
알짜는 따로 있다. 2022년 서울가스 매출은 338억원이다. 즉, 매출비중은 적지만 주로 서울가스와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용역매출과 공사수익 마진율은 19.6%(69억원/352억원), 11.6%(8억원/73억원)를 차지한다.
한 가지 더. SCG솔루션즈는 2019년 이후로 벌이가 부쩍 좋아졌다. 영업이익이 100억원을 넘어서며 많게는 142억원을 벌어들였다. 이 시기는 서울가스 매출이 300억원을 웃돌기 시작한 때와 딱 맞아떨어진다.
이렇다 보니 현재 SCG솔루션즈는 총자산 1300억원에 이익잉여금이 465억원 쌓여있다. 김 부사장이 2013년 배당금 5억원을 가져간 것 말고는 벌어들이는 족족 쟁여놓고 있다. 가스계량기 업체 에스씨지그리드(옛 대한가스기기) 등 계열사들을 배제한 본체만으로도 이 정도다.
결국 김 회장이 개인회사 서울개발을 키우는 데 한몫 단단히 했던 서울가스의 ‘돈 되는’ 일감들을 하나 둘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지금에 와서는 후계자는 이를 기반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SCG 후계자 김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줄로서 SCG솔루션즈의 활용 가치가 점점 더 업그레이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회장의 3대 세습 작업의 결과를 기다려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방식이야 뭐가 됐든, 값싼 대물림은 ‘따 놓은 당상’ 이다. (▶ [거버넌스워치] 서울도시가스 ⑦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