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세상일에 무심한 듯 경영에는 두문불출(杜門不出)했던 안주인이 처음으로 대표이사 명함을 팠다. 남편이 1인 회사나 다름없이 소유해 온 곳이다. 대표 자리를 비운 적도 없다. 이제는 부부가 나란히 대표 자리에 앉아 경영을 챙긴다.
중견 에너지기업 대성홀딩스의 오너 김영훈(72) 회장과 부인 김정윤(55)씨다. 게다가 작은누이 외에 이사회 나머지 한 자리는 1남3녀 중 맏아들이 차지하고 있다. 김의한(30) 대성홀딩스 전무다.
이쯤 되면 이곳은 뭔가 달라도 많이 다른 것이 분명하다. ‘알앤알(R&R)’이다. 즉, 현 이사진의 면면은 김 회장이 알앤알을 3세 세습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징표일 수 있다. 자신의 절대권력을 떠받쳐온 곳인 터라 대(代)물림에는 제격이지 싶다.
개인지분 확보 2007년 이후 ‘스톱’
2001년 2월 대성(大成) 고(故) 김수근 창업주 작고 후 경영권 분쟁을 벌였던 아들 3형제가 계열분할에 최종 합의한 게 석 달 뒤인 그 해 5월이다. 3남 김 회장은 당시만 해도 자신의 몫인 대구도시가스(현 대성에너지) 주식이 단 한 주도 없었다. 대성의 모태 대성산업이 1대주주로서 무려 62.94%를 소유했다.
이렇다 보니 계열분리를 위해 맏형 김영대(82) 회장 소유의 대성산업을 주주명부에서 삭제하는 데만 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1년 6월 대성산업이 대구가스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교환사채(EB)를 대구가스가 인수한 것을 계기로 2004년 10월에 가서야 마무리됐다.
이듬해 4월 김 회장이 마침내 대구가스 1대주주에 올라섰다. 지분 39.07%를 확보했다. 2004년 10월부터 367억원을 들여 주식을 빨아들이듯 사들인 데 기인한다. 이후로는 뜸했다. 2007년 5월까지 0.94%, 액수로도 11억원이 전부다.
김 회장이 현재 지주사 대성홀딩스 최대주주로서 39.9%를 보유 중인 이유다. 2009년 10월 지주 체제 전환을 위해 대구가스에서 사업부문을 100% 자회사(물적분할) 현 대성에너지(신설)로 떼어낸 뒤로 대성홀딩스(존속)로 바뀌었을 뿐 개인지분은 16여 년간 아무런 변동이 없다는 뜻이다.
소리 소문 없이 준비한 우회장치 알앤알
오산(誤算)이다. 사실 40%에 육박하는 지주 개인지분만으로도 계열 장악에 모자람 없어 보이지만, 김 회장의 지배기반은 이게 다가 아니다. ‘형제의 난’을 겪었던 탓일까? 경영권에 대한 집념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개인회사들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 것도 대성가 3형제가 분쟁에 마침표를 찍을 무렵이다.
2001년 12월 자본금 3억원으로 설립한 건축공사 및 리모델링 업체 알앤알리모델링, 현 알앤알이 그 중 하나다. 원래는 대구가스도 16.7% 주주였다. 다만 잠깐이었을 뿐, 이듬해 8월 김 회장이 원가(5000만원)에 인수, 아예 1인 회사로 만들었다. 지분이 99.83%나 됐다.
사업적으로는 이렇다 할 게 없던 곳이다. 주로 대구가스 등 계열 공사를 맡았지만 시원찮았다. 2004~2009년 매출이 많아야 84억원 정도다. 거의 매년 3억~8억원 영업적자를 냈다. 2011년 2월 건축부문을 떼어 내 현 건물관리업체 대성이앤씨에 합친 뒤로는 자체사업은 완전히 접었다. 알앤알건설에서 현 사명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도 이 무렵이다.
김 회장이 경북도시가스(현 대성청정에너지) 33.33% 주주로 등장한 시점도 알앤알 설립 즈음인 2001년 7월의 일이다. 2004년에 가서는 49.72%로 끌어올리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뿐만 아니다. 김 회장과 엇비슷한 49.58%를 보유하고 있던 곳이 바로 개인회사 알앤알이다.
2004년은 김 회장이 알앤알을 계열 최상위 지배회사로 본격 활용하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 경북가스가 대구가스 주식을 쉼 없이 사들이며 주주명부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던 때다. 2005년 말에 가서는 16.83%를 보유했다. 즉, 알앤알(49.58%)→경북가스(16.83%)→대구가스로 이어지는 계열 출자구조가 형성됐다.
후계자 19살 때 세습작업 신호탄…타깃 알앤알
2009년 10월 대구가스 물적분할을 통한 지주 체제 전환, 이듬해 9월 경북가스 인적분할 등 굵직굵직한 지배구조 재편 작업이 있었지만 알앤알의 존재감은 어디 가지 않았다.
당시 경북가스 분할은 사업부문 현 대성청정에너지(존속)와 투자부문 대성인베스트(신설)로 쪼개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후속편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대성청정에너지를 대성홀딩스의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한 정지작업이었다.
따라서 대성홀딩스의 계열 주주사가 경북가스에서 대성인베스트로 교체됐을 뿐, 알앤알(49.58%)→대성인베스트(16.78%)→대성홀딩스(100%․50%)→대성에너지․대성청정에너지 출자구조의 맨 꼭대기에는 변함없이 알앤알이 자리했다.
결국 김 회장이 개인지분(39.9%) 말고도 1인 회사 알앤알을 계열 지배구조의 정점에 배치한 출자고리(16.78%)를 통해 대성홀딩스 지분 도합 56.68%를 소유, 전 계열사를 장해왔던 것이다. 2017년 8월까지 위력을 발휘했다.
한마디로 김 회장에게 알앤알의 존재는 2000년 12월 2대 경영자로서 대구가스의 독자경영에 나선 이후 줄곧 ‘온리 원(Only One)’ 절대권력자로서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데 뒤를 받쳐왔던 튼실한 우회장치였던 셈이다.
대성홀딩스 최상위 지배회사 알앤알을 최종 타깃으로 한 3대 승계 작업이 시작된 것은 이런 와중이었다. 2013년 9월 두 누이 김영주(76) 대성그룹 부회장. 김정주(75) 대성홀딩스 부회장이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후계자 김 전무의 나이 19살 때다. (▶ [거버넌스워치] 대성홀딩스 ③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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