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라하는 중견기업이라면 후계구도 역시 늘 주목받은 이슈 중 하나다. 후계자에게는 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대물림의 시계가 빨라지며 스포트라이트가 강해질수록 그 그림자도 짙다.
중견 에너지그룹 SCG의 3대 승계 얘기를 꺼낸 김에, 경영권 승계를 위해 한창 몸을 풀고 있는 유력 후계자의 그림자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3세들을 양지로 불러내봤다. 제 갈 길 가는 듯 보여도 부친이 음으로 양으로 뒤를 봐준 이들이기도 하다.
오너 부자, 지배구조·사업 중추 이사진
SCG의 오너 김영민(79) 회장의 2남1녀 중 장남이자 자타공인 후계자인 김요한(42) 서울도시가스 부사장이 간판 계열사 서울가스 경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은 때는 2009년 3월이다. 김 회장이 의장으로 앉아 있는 이사회의 한 자리를 꿰찼다. 27살 때다.
이 시기 김 부사장이 이사회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계열사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서울도시개발이다. 김 회장이 예나 지금이나 1인 주주로 있는 개인회사이자 서울가스 경영권 장악을 위해 지렛대로 써먹고 있는 곳이다.
즉, 김 회장이 SCG 계열 중 현재 등기임원직을 가지고 있는 곳은 지배구조의 핵 서울개발과 사업 중추 서울가스뿐으로 김 부사장 또한 두 곳 모두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다른 3세들은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더라도 차남과 맏딸은 SCG 후계구도에서 일찌감치 비켜나 있는 논외 대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종한(35) 피델리 대표와 김은혜(44) 서울도시미디어 대표다.
둘 다 서울가스에 적을 둔 적이 있기는 했다. 기획팀장, 홍보기획부서장 등의 명함이 있었다. 딱 거기까지다. 2013~2014년 무렵 저마다 개인회사를 차려 나갔다. 현재 차남은 서울가스 주식 또한 한 주도 없다. 장녀도 0.02%가 전부다.
차남 회사로 넘어간 서울가스 커피사업
김종한 대표가 피델리(Fedeli)를 창업한 게 2014년 1월이다. 25살 때다. 초기 자본금 6억5000만원을 오롯이 혼자 출자해 지금껏 1인주주로 있다. 설립 때는 전문경영인에게 대표 자리를 맡겼지만 2018년 8월 이후로는 이사진이 김 대표 딱 1명으로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다.
원래는 원유, 천연가스 채굴 등 유전사업을 벌였다. 오래 가지 않았다. 2015년 업종을 확 갈아치웠다. 커피 생두 수입․판매업이 그것이다. 김 회장의 지원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초 서울가스가 벌였던 사업이다. 2012년 11월 10만달러(100%)를 출자해 설립한 ‘SCG에디오피아(SCG ETHIOPIA BRANCH)’를 통해서다. 다만 2014년 9월에 청산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를 차남 개인회사에 넘겨줬다고 볼 수 있다.
피델리 사업 초기 은행 차입금 10억원에 대해서는 김 회장이 11억원 담보를 서주기도 했다. 피델리 자금조달을 위해 개인회사인 서울개발을 통해 600만달러를 지급보증해 주기도 했다.
요즘 차남은 업계에서는 제법 잘 나간다.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에 본점을 두고 있는 피델리는 커피 생두 브랜드 ‘엘마씨엘로(ALMACIELO)’를 가지고 제법 알짜 중소기업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총자산(2022년 말) 181억원에 자기자본이 108억원이다. 벌이가 좋다는 얘기다. 매출이 2018년 181억원 이후 해마다 예외 없이 성장하며 2022년 322억원을 찍었다. 영업이익은 5년간 적게는 11억원, 많게는 35억원을 벌어들였다. 순익도 7억~24억원 흑자가 이어지고 있다.
맏딸의 서울미디어, 변함없는 내부거래
김은혜 대표는 작은 남동생 보다 3개월 정도 앞서 2013년 10월 서울미디어를 설립했다. 33살 때다. 자본금 1000만원으로 만들었다. 김 대표가 전액 출자해 현재까지 지분 100%를 소유 중이다. 초창기부터 대표를 맡아 경영을 직접 챙기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서울가스와 사업적 관계가 긴밀하다. 본점 역시 서울 강서구 염창동 서울도시가스 사옥에 위치한다. 초기에는 큰동생 김요한 부사장의 SCG솔루션즈가 운영하던 서울가스 임직원 복지몰을 사들여 운영했다. 그룹사 상품 카탈로그나 캘린더 제작, 임직원 대상 교육사업 등을 벌였다.
지금은 온라인 종합 유통몰 ‘웰던몰’을 운영한다. 또한 커피 생두 수입판매사업을 비롯해 ‘레그나(LEGNA)’라는 자체 커피브랜드로 카페 매장도 운영한다. 광고기획사업도 한다.
2020년 총자산 8억원, 자기자본 4억원 정도였다는 것만 확인될 정도로 기업 볼륨은 이렇다 할 게 없다. 반면 서울가스와의 거래는 변함없다. 2022년 서울가스의 재무제표상(별도기준) 서울미디어 대상의 ‘매입 등’ 거래액이 11억원 잡혀 있는 게 그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