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중견그룹 일진(日進)의 2대(代) 경영자가 오랜 기간 오너십을 유지하는 지렛대로 십분 활용해왔던 비상장 개인 지주사 지분을 소리 소문 없이 적잖이 정리했다. 20년 전 부친에게서 물려받았듯이 이제는 이 우회 안전장치를 3세 승계용으로 활용할지 주목거리다. 유한책임회사 ‘일진파트너스’가 진원지다.
2대 지분 승계 ‘투트랙’의 한 축
‘[거버넌스워치] 일진 ②편’은 허진규(86) 회장이 후계자의 가업 입문 무렵인 1990년대부터 2008년 지주 체제 전환 때까지 지분을 몰아주는 작업을 통해 허정석(57) 부회장을 지금의 일진홀딩스 29.12% 최대주주로 올린 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뿐 아니다. 허 창업주는 허 부회장의 지배력을 떠받칠 안전장치를 빼놓지 않았다. 즉, 2세 지분승계는 ‘투트랙(two track)’으로 진행했고, 그 한 축으로 삼았던 것이 일진파트너스다.
1996년 11월 설립된 일진파이낸스가 전신(前身)이다. 1998년 7월 일진캐피탈→1999년 12월 일진기술금융을 거쳐 2006년 3월 일진캐피탈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사명(社名)에서 보듯 초창기에는 팩토링금융, 신용담보대출 등 금융사업을 벌였다.
당시만 해도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었다. 모태 주력사인 전선 및 중전기기 업체 일진전기가 지분 61.8%를 보유한 계열사일 뿐이었다. 이어 공업용 다이아몬드 업체 일진다이아 30.9%, 허 회장이 나머지 7.3%를 소유했다.
2006년 12월 180도 바뀌었다. 허 회장과 일진전기와 지분 69.13%를 149억원에 허 부회장에게 전량 넘긴 데서 비롯됐다. 2007년 2월에는 일진다이아 또한 58억원을 받고 주식을 허 부회장에게 전량 매각했다.
2007~2008년 홀딩스 지분 25% 확보
결과적으로 허 창업주가 일진파트너스를 후계자의 개인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은 일진파트너스를 지분 승계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이었다. 허 회장이 2007~2008년 4단계에 걸쳐 허 부회장 개인지분 강화 작업을 가속화할 당시 이와 병행해 각 단계마다 일진파트너스를 장남의 지배기반을 보강하는 장치로 활용했다.
2007년 8월 일진전기가 변압기 등 중전기기 업체 일진중공업을 흡수통합하자 일진파트너스가 일진전기의 5.25% 주주로 등장했다. 당시 일진파트너스가 일진중공업 지분 17.14% 3대주주로 있어서다.
2008년 3월에는 일진다이아 주주명부에도 이름을 올렸다. 허 회장이 일진다이아 지분 중 18.91%를 109억원(주당 1만3050원)에 매각할 당시 허 부회장 12.51%(72억원) 외에 6.4%(37억원)를 인수한 게 일진파트너스다.
즉, 허 부회장으로서는 ▲허 부회장(45.6%)→일진다이아(20.41%)→일전전기 ▲허 부회장(8.39%)→일전전기 외에도 ▲허 부회장(100%)→일진캐피탈(6.40%)→일진다이아(20.41%)→일전전기 ▲허 부회장(100%)→일진캐피탈(5.25%)→일진전기를 통해 계열 장악력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2008년 7월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 인적분할 및 투자부문 합병을 통해 지주 체제로 전환하자 일진캐피탈의 위력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최대주주 허 부회장 19.95%, 허 회장 10.95%에 이어 일진홀딩스의 5.5% 3대주주로 부상했다. 허 부회장의 지배지분이 25.45%에 달했다.
이어 3개월 뒤 홀딩스의 522억원(주당 3755원)어치 현물출자 유상증자 뒤에는 일진파트너스의 홀딩스 지분이 9.31%로 뛰었다. 허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일진전기(신설) 및 일진다이아(존속) 주식 각 5.09%․6.4%, 102억원어치를 모조리 홀딩스로 갈아탄 데서 비롯됐다.
2013년 11월 허 회장은 마침표를 찍었다. 현물출자 뒤 보유하고 있던 홀딩스 지분 15.18%를 전량 173억원(주당 2300원)에 일진파트너스에 넘겼다. 최대주주인 허 부회장 29.12%에 이어 일진파트너스가 홀딩스 24.64%를 확보하며 2대주주로 올라섰다.
똑같다. 13년 전, 허 부회장이 개인지분과 일진파트너스를 통해 확보한 홀딩스 지배지분 53.76%는 지금껏 단 한 주의 변동도 없다. 결국 허 부회장이 가업 승계 뒤 흔들림 없는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전적으로 허 회장이 선제적으로 닦아놓은 치밀한 승계 전략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2020년대 들어 3세 주주 등장
현재 일진파트너스는 매출 ‘제로(0)’의 페이퍼컴퍼니다. 오로지 홀딩스 지분 보유를 목적으로 하며 허 부회장 오너십을 지탱하는 역할만 하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 말 자산이 1420억원으로 홀딩스 주식 가치(1460억원)와 비슷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금융업을 접은 지는 한참 됐다. 2010년 5월이다. 현 사명으로 교체한 것도 이 때다. 이후로는 일진전기의 수출 물류를 담당했다. 2012년에는 일진전기를 통해 136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2018년 11월 법인형태를 주식회사→유한회사로 바꾸면서 자체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한데, 허 부회장이 일진파트너스 지분 100%를 보유해온 유일주주 체제에 2020년대 들어 심상치 않은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허 부회장의 두 자녀가 주주명부에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비상장·비외감법인으로 기업정보가 제한적이지만, 2021년 5월 허 부회장 지분이 97.00%로 축소되고, 허준혁·허준호씨가 각각 지분 0.03%를 소유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 작년 10월 또다시 허 부회장 지분이 70%로 축소됐다.
이런 이유로, 허 창업주가 후계자를 위해 그랬듯 허 부회장이 물밑에서 일진파트너스를 3대 승계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표가 달리고 있다. (▶ [거버넌스워치] 일진 ④편으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