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장녀인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가 올해 들어 연이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며 주목받고 있다. 현대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홀딩스컴퍼니에 대한 H&Q코리아와의 투자 관계도 마무리되면서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던 승계 작업이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정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확대로 승계에 필요한 재원을 늘릴 수 있게 된 만큼 다음 수인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이동 여부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있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정지이 현대무벡스 전무는 지난 3월부터 지난 22일까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10년 넘게 0.4%가량에 불과했던 지분율은 약 석 달 만에 3.01%까지 확대됐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확보를 위해 투입한 자금 규모는 약 900억원으로 추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확보와 같은 시간대에 현대무벡스 지분 전량을 매각하면서 이를 통해 확보한 1200억원의 자금을 실탄으로 활용했다.
재계에서 주목하는 점은 정지이 전무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확보의 방향성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먼저 현대무벡스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으로 갈아타면서 다른 주주와의 주식 양수도 거래 계약 등이 아닌 시장에 풀려있는 지분을 사들이며 책임 경영 의지를 내비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향후 승계 과정에서 필요한 현금 흐름을 보강할 수 있게 됐다는 관측이다. 현대무벡스보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배당 여력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무벡스의 최근 주당 배당금은 50원으로, 정 전무가 기존 지분 447만2473주를 계속 들고 있었다면 단순 계산상 연간 약 2억2360만원의 배당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현대엘리베이터의 배당은 주당 2000~3000원 수준으로 정 전무가 확보한 지분 117만6612주에 대한 연간 배당 추정 수입은 약 23억5000만~35억3000만원 선까지 늘어난다. 향후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이전 과정에서 세금 부담을 해결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존보다 훨씬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지이 전무의 지분 변동과 함께 승계 작업에 힘을 싣는 추가적인 움직임도 감지된다. 현대그룹 지배구조 최상단에 있는 현대홀딩스컴퍼니는 최근 H&Q코리아가 보유한 잔여 전환사채(CB)와 상환전환우선주(RCPS)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며 양측의 투자 관계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2023년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백기사로 참여했던 H&Q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고 현대그룹으로서는 외부 재무적투자자의 권리행사에 따른 지배구조 부담을 상당부분 덜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최근 몇년간 현대그룹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던 외부와의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완전히 털어내면서 본격적으로 승계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라며 "앞서 진행된 정지이 전무의 추가 지분 확보 역시 시장 등에 신뢰를 줄 수 있는 장내매수를 통한 정공법으로 이뤄지면서 대외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계에서는 아직 현대그룹 승계가 본격화 됐다기보다는 '시작'을 위한 준비 정도를 마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은 정지이 전무의 존재감이 크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현대그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 확보가 본격적인 승계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현대그룹은 현대홀딩스컴퍼니가 사실상 지주 역할을 하며 현대엘리베이터를 지배하고 그 아래 현대무벡스, 현대아산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현대홀딩스컴퍼니는 현정은 회장이 지분 74.98%, 정지이 전무가 8.95%를 쥐고 있다.
따라서 정지이 전무가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을 늘렸다고는 하지만 결국 현대홀딩스컴퍼니의 지분을 넘겨받아야 승계 작업이 본격화할 것이란 시각이다.
관건은 '세금'이다. 현대홀딩스컴퍼니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가치만 감안해도 현정은 회장 보유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의 간접 가치는 약 4700억원대로 추산된다. 최대주주 할증평가 가능성을 반영하면 평가액은 5700억원 안팎까지 높아지는데 이 경우 증여세 또는 상속세 부담은 많게는 2800억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적게 잡아도 2000억원이 넘는 세금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현대홀딩스컴퍼니의 지분을 단기간에 모두 넘기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앞으로는 순차적으로 현대홀딩스컴퍼니 지분이 정지이 전무에게 넘어가는 작업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