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사들의 범용 제품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술 장벽이 낮은 탓에 중동과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이를 뛰어넘으려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 및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도 석유화학 경쟁력 개선을 위해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미래인 R&D 현황을 짚어보고 향후 경쟁력을 진단한다. [편집자]
국내 석유화학사들의 범용 제품 기술력은 익히 알려져있다. 지난 몇 년간 경쟁력을 키워 국내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는 중국과 중동지역 기업에 비해 품질 면에선 여전히 앞선다. 기술 장벽이 낮다고는 하지만 설비 운영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한 미세한 차이에선 국내 기업이 앞서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에틸렌 등 기초 석유화학 제품을 원료로 하는 많은 해외 기업들은 가격 차이가 크지 않다면 국내 제품을 선호한다. 하지만 값싼 원료와 대규모 생산설비를 바탕으로 한 중동 및 중국 기업들의 저가공세를 지속적으로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정부가 석유화학 업계에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을 촉진하고, R&D(연구·개발) 지원을 통해 신소재 개발을 독려한 이유다.
◇ 고부가 제품으로 업그레이드
국내에선 석유화학업계 1위인 LG화학이 R&D에 가장 적극적이다. 해마다 R&D 인력과 투자금액을 늘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인수한 신사업인 바이오화학(팜한농·LG생명과학)도 R&D가 중요한 분야인 까닭에 적극적인 R&D 육성 계획을 세운 상태다. LG화학은 오는 2018년에는 R&D 인력을 4100명으로 늘리고 투자액도 9000원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특히 LG화학은 R&D를 통해 첨단 소재기업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엔지니어링 플라스틱(EP)과 SAP(고흡수성 수지) 등이 대표적이다. 금속을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EP는 자동차부품과 전자기기 등으로 적용처가 늘어나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환경규제 강화 등으로 자동차 경량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어서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글로벌 EP 시장은 연 평균 3.8% 성장률을 기록하며 2020년에는 1000만톤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 규제 및 연비 강화로 자동차 경량화가 필수 요소가 되면서 EP 사용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EP는 정부가 꼽은 미래 주력산업 소재 중 하나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LG화학 역시 2018년에는 EP 분야에서 글로벌 톱3 메이커로 자리매김한다는 목표 아래 IT 및 LED 조명용 제품, 차량용 제품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이 가운데 성장 가능성이 가장 큰 차량용 EP 비중을 현재 30% 수준에서 2018년에는 5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이와 함께 탄소나노튜브(CNT)와 CO₂ 플라스틱 등 신소재 개발과 유망 소재 분야 원천 기술 개발도 강화할 예정이다.
경쟁력 약화 제품으로 지적된 합성고무(SBR)가 주력 제품인 금호석유화학도 R&D를 통해 고부가 제품으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중 고기능성 합성고무(SSBR) 제품 다각화에 집중하고 있다. 타이어 브랜드별 고유의 특·장점을 구현하는 실리카 친화적인 4세대 SSBR 제품 포트폴리오를 확충하고 있다. 올해부턴 타이어효율 등급제를 시범 도입해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태다.
금호석화는 새롭게 디스플레이 소재 개발을 위해 전자소재연구소 내 소재연구3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 팀은 OLED 및 LCD 패널용 접착제인 실란트를 연구한다. 금호석화는 20102년 LCD 중소형 실란트 양산에 성공한 후 LCD 중대형 패널 및 OLED 패널 등으로 제품 라인을 확장했고, 최근에는 OLED용 실란트 기술을 국산화하는 연구를 진행하며 사업 다각화를 준비 중이다.
◇ R&D 지원, 어떻게 활용할까
정부는 기업들의 R&D 지원을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신소재를 개발하고, 고부가 정밀화학 분야 기술력을 갖춰야한다는 의미다. 정부가 내놓은 안을 보면 신성장동력 및 원천기술 R&D 세액공제 대상에 고기능섬유와 하이퍼 플라스틱 등 고부가가치 융·복합 소재를 포함하고, 사업재편과 연계된 R&D 투자에 대해선 신산업 육성펀드 3000억원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3대 핵심기술 분야로 경량소재 및 극한환경용 특수소재를 포함한 ‘미래 주력산업 소재’, 산업용과 헬스케어용 생활밀착형 기능성소재 등을 담은 ‘고부가 정밀화학’, 무독성 소재 및 환경파괴 대체물질 개발이 중심인 ‘친환경 화학소재’ 등을 선정했다.
특히 공급과잉 심화로 설비통합 등 구조조정이 필요한 제품으로 꼽힌 TPA와 PS 등을 생산하는 기업이 제품 다각화를 위한 신소재 R&D에 주력할 경우, 정부 지원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TPA 생산기업 중 한 곳이자 지난해 삼성으로부터 정밀화학 사업을 인수해 롯데정밀화학 및 롯데첨단소재로 출범한 롯데케미칼, 중점지원 대상기업 업종에 농화학 제품이 추가됨에 따라 팜한농을 인수한 LG화학 등 국내 석화업계를 이끄는 이들 기업도 정부 지원을 받아 R&D를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업계에선 정부 의도처럼 R&D가 효과를 보기 위해선 고부가 제품의 상업화 가능성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을 받는다해도 고부가 제품 개발을 위한 R&D에는 상당한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며 "기술 개발은 했지만 이를 활용할 수요처가 없다면 이 제품은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상업성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