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사들의 범용 제품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기술 장벽이 낮은 탓에 중동과 중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을 받고 있다. 이를 뛰어넘으려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 및 스페셜티 제품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도 석유화학 경쟁력 개선을 위해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미래인 R&D 현황을 짚어보고 향후 경쟁력을 진단한다. [편집자]
나일론을 들여와 국내 섬유산업의 기반을 다졌던 효성과 코오롱은 이제 소재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섬유 기술을 바탕으로 관련된 다양한 신소재 개발에 성공하며 수출 길도 넓히고 있다.
특히 이들은 R&D(연구·개발)를 바탕으로 제품의 품질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에서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실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기업들으로 꼽힌다.
◇ 효성, 스판덱스에서 폴리케톤까지
효성을 대표하는 주력제품은 스판덱스다. 2010년부터 전 세계 스판덱스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이후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효성은 최근 들어 공격적으로 스판덱스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터키에 2700만달러를 투자해 이스탄불 스판덱스 공장 생산량을 현재 2만톤에서 2만5000톤으로 늘리기로 결정하고, 9월부터 관련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터키에서의 스판덱스 수요에 대처하고, 중동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효성은 중국 취저우에도 스판덱스 신규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터키공장 증설 및 취저우 신규 공장이 준공될 시기인 내년 상반기 효성의 스판덱스 글로벌 생산량은 22만1000톤 규모로 늘어난다.
효성은 반복되는 실패 끝에 지난 1992년 독자적으로 스판덱스 생산기술 개발에 성공하며 R&D를 통한 결실을 얻었다. 이후에도 고객 요구에 맞는 제품과 다양한 기능을 보유한 고품질 제품 개발에 집중했다. 이는 효성이 스판덱스 시장 1위로 올라서는 밑거름이 됐다.
▲ 효성은 탄소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고부가 신소재인 폴리케톤 개발에 성공했다. |
효성의 신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폴리케톤과 탄소섬유 역시 R&D를 통해 얻은 결과다. 효성은 2004년부터 약 500억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해 신물질 개발에 나섰고, 지난 2014년 폴리케톤 개발에 성공했다. 폴리케톤은 고분자 신소재로 나일론 대비 충격강도 2.3배, 내화학성은 30% 이상 우수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시장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와 함께 효성은 철 대체제로 각광 받는 탄소섬유 개발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폴리케톤과 탄소섬유 등은 상용화 단계로 나아가는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우수한 품질의 신소재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기존 제품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약점 등의 이유로 수요처를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한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소재를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것 뿐 아니라 이 제품을 상용화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다”며 “제품은 만들었는데 이를 적용할 곳이 없다면 이 기술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고부가 신소재로 주목받은 효성의 폴리케톤 역시 신성장동력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빠른 상용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효성 관계자는 “수요처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샘플을 보내는 등의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며 “과거 스판덱스 개발 후에도 적자가 지속되다 10년 이후에 흑자로 돌아선 경험이 있는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상용화를 위한 투자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미래 준비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
효성이 신소재를 개발하고도 상용화단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코오롱은 상업화를 준비하며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각광받는 제품은 폴더블 스마트폰 등에 적용이 가능한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CPI)이다. CPI는 유리처럼 투명하고 강도가 세면서도 수십만 번 접었다펴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차세대 스마트폰으로 폴더블폰을 준비하고 있어 CPI가 핵심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코오롱인더스트리는 경북 구미공장에 CPI 양산설비를 구축하기로 결정했고, 총 900억원을 투자해 오는 2018년 1분기까지 준공할 계획이다. 생산설비가 갖춰지면 이 사업에서 연간 2000억원의 매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2·3호 라인도 공격적으로 증설할 방침이다.
▲ 코오롱인더스트리가 개발한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 이 소재는 폴더블 스마트폰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
이와 함께 코오롱인더스트리는 CPI 응용분양 확대를 위해 2010년부터 WPM(World Premier Material) 국책과제로 선정된 고내열 투명 폴리이미드 액상소재 국산화를 위한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대형 투명 창에서도 컴퓨터 화면을 구현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선 코오롱인더스트리 CPI 기술력이 경쟁사보다 5~7년 정도 앞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생산설비 준공 후 폴더블 디스플레이 모듈에 코오롱인더스트리 제품이 채용될 경우, 후발 기업의 진입장벽은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 시장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입지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자동차 소재 분야에선 스펀본드가 R&D를 통해 일군 대표적인 성과다. 최근 코오롱인더스트리는 400억원을 투자해 스펀본드 생산설비를 늘리기로 결정했다. 자동차 성형용 카펫 기포지에 제품을 새롭게 적용하기 위해서다.
자동차 성형용 카펫 기포지는 자동차 하부 굴곡형태를 정확히 구현하면서도 내구성을 확보해야 하는 까닭에 기술장벽이 높은 제품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의 프로이덴베르크와 네덜란드의 보나르, 일본의 유니티카 등 소수 기업이 시장을 과점해왔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07년부터 스펀본드를 자동차 성형용 기포지에 적용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해왔고, 지난해 이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국책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400억원을 투자해 스펀본드 생산설비도 늘릴 예정이다. 자동차 성형용 카펫 기포지에 스펀본드를 새롭게 적용하기 위해서다. 증설 완료 후 코오롱인더스트리 스펀본드가 자동차 성형용 기포지에 적용되면 이 제품의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한편 코오롱 입장에선 연간 스펀본드 매출액이 1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해 수익성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