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3분기 역대급 최악 실적을 내놨다. 주력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두 완성차 업체의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판매부진에 품질 문제까지 동시에 불거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번이야말로 바닥을 치고야 만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실적에 추후 반영해도 좋을 품질 비용까지 앞당겨 넣은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재계 한 관계자는 "불확실성을 남겨두기보다는 이번에 모두 털고 가겠다는 회계적 선택이 실적에 드러났다"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 듯한 최고 경영진의 결의(決意) 같은 것이 읽힌다"고 했다. 올 상반기 한 차례 시도했다가 되물린 지배구조 개편을 재시동할 조짐이 이번 실적에서 감지된다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6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주요 7개 계열사(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위아·현대제철·현대건설) 영업이익(연결기준)은 총 1조679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2조1405억원)보다 21.6%, 직전인 지난 2분기(2조6320억원)에 비해서는 36.2% 감소한 실적이다.
덩치가 줄지는 않았다. 7개사 매출은 62조9508억원으로 전년동기(62조2960억원)보다 오히려 1.1% 증가했다. 그런 만큼 영업이익률은 대폭 낮아졌다. 작년 3분기 3.4%, 지난 2분기 4.1%에서 각각 0.7%포인트, 1.4%포인트 하락한 2.7%를 기록했다. 100만원어치를 팔아 2만7000원을 손에 쥐었다는 얘기다.
맏형 격이자 주축인 현대차 실적이 가장 심하게 악화했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 1조2042억원보다 76%, 9153억원 줄었다. 7개사 전체 영업이익 감소폭 4615억원과 비교하면 배에 가까운 규모다. 7개사 실적에서 현대차를 뺀 6개사의 영업이익만 보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38억원, 48.5% 증가한다.
현대차 매출은 24조4337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 늘어 근소하게 늘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급격한 하락 탓에 영업이익률 역시 작년 같은 기간 5%에서 1.2%로 뚝 떨어져 체면을 구겼다.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는 우려를 부른 저조한 사업수익성이다.
현대차 영업이익은 증권업계에서 추정한 것보다 5000억원 가까이 적은 '어닝 쇼크'(실적 충격)였다. 하지만 이 가운데 약 1500억원은 추후 들어갈 엔진 이상 진단 시스템(KSDS, Knock Sensor Detection System) 장착비용으로 이번에 반영하지 않아도 될 부분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번 어닝쇼크에 이를 엎었다.
강성진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잠재적 비용요인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로 한 경영상의 결단도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며 "현대차그룹은 지배구조 변경 및 신차 출시 사이클을 앞두고 악성 재고 처분 손실과 품질관련 비용을 적극적으로 실적에 반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차도 본질적으로 비슷했다. 작년 3분기 1조원 가까운 통상임금 비용 타격으로 적자를 봤기 때문에 이번 분기는 흑자 전환했다. 하지만 개선됐다고 보기 어려웠다. 두 시기 모두 일회성 비용 요인을 빼고 보면 이번 분기 수익성 부진은 오히려 더 심했다.
기아차 3분기 영업이익은 1173억원이었는데 여기에는 품질관리 비용으로 쓰인 2800억원이 차감 반영됐다. 영업이익률은 0.8%로, 2000만원짜리 차 한 대를 팔아 16만원을 남긴 수준이었다. 작년과 올해 대형 일회성 요인을 제외하고 보면 수익성 악화가 더 깊어졌다는 분석이다.
현대모비스는 두 완성차 업체를 합친 것보다 많은 영업이익을 거뒀다. 3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 영업이익은 462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5.1% 감소했다. 하지만 현대차, 기아차의 부진이 워낙 깊었던 탓에 어부지리로 그룹 내 영업이익 1위 자리에 올랐다.
현대모비스 매출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3.9% 줄어든 8조4273억원, 순이익은 6.8% 감소한 4497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은 5.5%로 작년 3분기보다 0.7%포인트, 직전 2분기보다 0.5%포인트 낮아졌다. 다만 지난 4월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도 때 지주사 역할을 할 존속법인 몫으로 남겨두려던 핵심부품과 전동화 부문은 매출 증가세와 함께 높은 수익성을 보였다.
현대제철은 그룹 계열사 중 지난 3분기 영업이익 2위였다. 역시 완성차 투톱이 극도로 부진했기 때문에 생긴 드문 경우다. 3분기 영업이익은 3761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10.7%, 매출은 5조2341억원으로 8.6% 증가했다.
자동차 강판 판매를 크게 늘리며 외형과 수익성을 모두 챙긴 것이 역설적이다. 자동차 강판 판매량을 3분기 누계 기준 46만3000t으로 작년 같은 기간 24만8000t보다 87% 늘린 것이 주목할만하다. 현대차, 기아차 등 계열사뿐만 아니라 다른 글로벌 완성차업체로부터 주문을 받아 수요처를 다변화한 성과다.
건설 계열사인 현대건설은 3분기 영업이익 2379억원을 기록했다. 연결종속법인 현대엔지니어링과 합작한 결과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5.3% 감소한 것인데, 3분기까지 누적 실적도 6773억원으로 작년보다 14.4% 줄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연간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강남 삼성동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 사업 착공이 올해를 넘기게 된 것이 아쉽다. 외형이나 수익성에 탄력을 줄 수 있는 메가 프로젝트가 지연되면서 실적 개선도 제한을 받는 상황이다.
그룹 물류를 담당하면서 현대모비스와 함께 지배구조 개편의 한 축으로 등장했던 현대글로비스는 매출 4조3730억원, 영업이익 1870억원을 기록했다. 완성차 계열사가 부진했지만 비계열 물량 영업을 늘리며 안정적 실적을 거뒀다.
부품 계열사 현대위아는 매출 1조9221억원, 영업이익이 96억원을 냈다. 매출은 작년보다 6.6% 줄었고, 영업익은 36.2%나 감소했다. 부품 수요처인 완성차 계열사 부진이 고정비 증가로 수익성을 저해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