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인더스토리는 매주 토요일, 한 주간 있었던 기업들의 주요 이슈를 깊고,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인더스트리(산업)에 스토리(이야기)를 입혀 해당 이슈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과 기업들의 속내를 살펴봅니다. [편집자]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해 27조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 영업이익 기록을 썼습니다. 삼성전자를 제치고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2위에 올라섰는데요. 지난해 수출에서도 액수 기준으로 1, 2위를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역대급 한 해를 보낸 것으로 평가됩니다.
현대차와 기아 입장에서는 지난 2021년 이후 눈에 띄는 실적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으로 여겨질 만합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 흐름이 지속하는 속에서도 3년째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올해도 추가 성장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 산업 측면에서 보면 지난해 반도체 등 주력 제품군 수출이 주춤한 가운데 자동차가 공백을 메꿔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이에 더해 올해 반도체 산업이 반등한다면 우리나라의 수출 산업에 다시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기대됩니다.정의선 주도 체질 개선으로 3년째 승승장구
현대차·기아가 언제나 승승장구 했던 건 아닙니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어닝쇼크를 기록하는 등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었는데요. 실제 현대차·기아의 영업이익은 지난 2012년 11조 9592억원으로 최고치를 찍은 이후 2018년까지 6년간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2018년에는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3조6000억원에 그치며 어닝쇼크를 기록하기도 했죠.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총체적인 위기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2018년 9월 정의선 회장이 당시 '총괄 수석 부회장'에 오른 뒤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세대교체 등을 통한 인적 쇄신과 조직 문화 개선, 과감한 투자, 해외 시장 공략 등으로 실적 개선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이는 2020년 이후의 눈에 띄는 성장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 결과 지난해에는 다양한 기록을 쏟아냈습니다. 우선 두 기업의 합산 영업이익이 26조7348억원을 기록했다는 점이 주목받는데요. 이는 지난 2022년까지 14년 연속 1위를 기록했던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6조 5400억원)를 네 배 이상 웃도는 수치입니다. 양사는 각각 국내 영업이익 1, 2위 기업에 오르게 됐습니다.
양사는 지난해 수출에서도 나란히 1·2위를 차지한 바 있는데요.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300억달러 수출의 탑'과 '200억달러 수출의 탑'을 받았습니다. 특히 수출 액수 면에서 최고 금액으로 '수출의 탑'을 수상했는데요. 자동차 업체가 최고상을 받은 것은 상이 만들어진 지 60년 이래 처음입니다.
이를 통해 현대차는 지난해 총 730만4282대를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해 일본 도요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빅3' 자리를 수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대차·기아가 높은 수익성을 기록했다는 점도 주목받았습니다. 지난해 양사 합산 영업이익률은 10.2%로 전기차 시장 라이벌인 미국의 테슬라(9.2%)를 제쳤습니다. 테슬라의 경우 전기차 시장 둔화와 함께 가격 인하 경쟁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런 역대급 실적의 배경으로는 친환경차와 SUV 등 고수익 차종 판매 전략과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 판매 확대 등이 꼽힙니다. 현대차는 이런 흐름을 올해에도 이어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 연간 매출액 성장률 목표를 전년 대비 4~5%로 설정했고요. 영업이익률 목표는 8~9%의 양호한 수준으로 정했습니다. ▶관련 기사: 현대차, 사상 최대 실적 행진…"올해도 기록 쓴다"(1월 25일)자동차가 메꿔준 수출…올해 반도체 반등할까
현대차의 국내 영업이익 1위의 기록이 올해도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만년 1위였던 삼성전자가 올해는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인데요. 증권가에 따르면 올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컨센선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약 34조원입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부문에서만 연간 14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체 연간 영업이익도 6조원대로 쪼그라든 건데요. 하지만 최근 반도체 시장이 반등하는 흐름을 보이면서 삼성전자 실적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 삼성전자의 경쟁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 4분기 매출 11조3055억원, 영업이익 3460억원을 각각 기록했습니다. 4분기 동안 이어진 적자 행진을 끝내고 예상보다 빠르게 불황을 벗어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누가 1등을 하든 우리나라 수출 산업 측면에선 희소식입니다. 지난해 부진했던 반도체가 살아나고, 자동차 산업이 최근의 상승세를 이어간다면 수출 실적이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죠.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수출은 6326억 9000만 달러로 전년보다 7.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20년 이후 3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건데요.
자동차의 수출액은 총 709억 달러를 기록해 전년보다 31.1% 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986억 달러로 전년보다 23.7% 줄며 부진해 전체 수출액도 감소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다만 지난해 말 반도체 산업이 살아나면서 정부는 기대감을 내비쳤습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간담회에서 "올해에는 정보기술 업무 현황 회복,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 등으로 '반도체의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우리 수출의 1위 품목으로서 전체 수출의 우상향 전환 국면을 확고히 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SDV 전환·올해 업황 불황 전망 등 숙제도
현대차 그룹이 이런 실적 잔치 속에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더욱 고무적입니다. 앞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자동차(SDV) 회사로의 체질 전환을 위해 고삐를 바짝 쥐겠다는 계획인데요.
앞서 정 회장도 신년사를 통해 다시 한번 체질 개선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그는 지난 3일 열린 현대차 그룹 신년회에서도 "SDV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우리가) 뒤처진 면이 있다"며 위기감을 강조했고요. 이후 미국에서 열린 CES 2024에서도 SDV에 대해 "해외에선 이미 하고 있는데 우리가 좀 늦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차는 이에 따라 올해 투자 확대 계획도 내놨습니다. 현대차는 올해 △연구개발(R&D) 투자 4조9000억원 △설비투자 5조6000억원 △전략투자 1조9000억원 등 총 12조 4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해 투자액 10조5000억원에 비해 약 2조원 가까이 증가한 규모입니다.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이는 자동차 시장 업황도 올해 변수로 지목되는데요. 현대차 관계자는 향후 전망과 관련해 "매크로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실물경제 침체 등 예측하기 어려운 경영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환율 변동성 확대, 업체 간 경쟁 심화에 따른 판매 관련 비용 증가가 경영활동의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과연 현대차·기아가 올해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1,2위 자리를 수성할 수 있을까요. 반도체 등 다른 산업이 반등세를 보이면서 수출 성장을 쌍끌이 할지와 함께 올해 산업계의 기분 좋은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