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주주총회에서 판정승을 거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MBK 측에 '대타협'을 요청했다.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그만두고 고려아연 발전을 위해 힘을 모으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 MBK에 고려아연 경영 참여 여지를 열어두겠다는 게 최윤범 회장 측의 입장이다.
다만 MBK 측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MBK는 최윤범 회장 측이 호주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을 활용해 영풍의 고려아연 의결권을 제한한 것을 두고 법적 공방을 예고하며 강경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고려아연이 협상 테이블에서 영풍을 아예 배제하는 구도도 주목받고 있다. 경영권 분쟁에 MBK를 끌어들인 영풍을 패싱하고 MBK를 우군으로 합류시켜 영풍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 담긴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대타협' 내건 고려아연…왜?
박기덕 고려아연 대표이사 사장은 24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억지로 만들어낸 주장과 비방이 난무하는 소모적인 갈등을 이젠 멈춰야 한다"라며 "MBK를 더 이상 적이 아닌 새로운 협력자로 받아들이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MBK와의 대타협을 위해 MBK 측이 원할 경우 이사회 참여, 일부 경영 참여 등의 가능성을 열어둔 채 MBK와 대화해 나가겠다는 게 고려아연 측 입장이다.
박기덕 대표이사는 "기존 고려아연 경영진들과 산업자본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섞을 수 있다면 시너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려아연 측이 전날(23일)있었던 임시 주주총회에서 사실상 압승한 직후 대타협이라는 카드를 꺼낸 데에는 고려아연의 호주 손자회사 SMC를 통한 영풍의 의결권 제한이라는 결정적 묘수에 불안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22일 SMC는 최윤범 회장 일가와 영풍정밀이 보유하고 있는 ㈜영풍 지분 10.33%(19만226주)를 575억원에 장외거래로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최윤범 회장 측이 SMC에 영풍의 지분을 넘기면서 고려아연→SMC→영풍→고려아연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가 완성됐다. 상법에 따라 이같은 지배구조 상에서는 영풍이 고려아연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고려아연 측은 이러한 조치가 법적문제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지만 MBK와 영풍은 다르다. 상법은 물론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어 의결권을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MBK와 영풍은 이날 오전 해당 사안에 대해 법의 해석을 받겠다고 밝혔다.
법원이 MBK와 영풍 측의 손을 들어준다면 전날 임시 주주총회 내용이 아예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법적 판단을 받기 이전에 MBK와의 화해를 통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만들어 두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법정 공방이 장기화 하는 것도 부담이다. 경영권을 사이에 둔 법적 리스크가 장기화 한다면 회사 경쟁력이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박기덕 대표이사 역시 "(MBK측이)법적 대응을 예고했는데 분쟁이 장기화 하면 이는 소모전이다"라며 "회사의 모든 구성원, 지역사회, 협력사, 주주, 국민 모두가 장기화를 원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MBK, '화답' 가능성은
고려아연의 대타협 제안에 MBK가 화답할 가능성은 낮다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날 오전 김광일 MBK 부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의결권 제한 조치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선을 넘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고려아연이 대타협을 위해 이사회 및 경영 참여에 대해 한 발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MBK입장에서는 솔깃할만한 제안은 아니라는게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날 고려아연 측이 내건 이사회 및 경영 참여는 겉으로 보면 크게 양보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사회 내 일부 자리와 경영에서도 제한된 부분의 참여만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MBK 입장에서는 이에 적극 응답할 만한 요인은 안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애초 MBK가 경영권 인수를 위해 이번 분쟁에 뛰어들었고 적지 않은 투자금을 투입했는데 만족스러울 수 없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영풍 배제한 고려아연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고려아연 측이 영풍은 철저히 배제한 체 대타협에 나서겠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점이다.
이날 박기덕 대표는 줄곧 MBK와의 대타협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영풍이라는 단어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박기덕 대표 역시 "(영풍 이야기는)삼가하려고 한다"라며 선을 그었을 정도다.
이번 경영권 분쟁의 시작이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을 감안하면 고려아연과 영풍 간의 감정의 골 또한 회복되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영풍과 손을 잡은 MBK를 오히려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여 영풍을 배제하려 한다는 평가도 나왔다. 다른 업계 한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MBK를 우군으로 확보해 영풍을 고립시키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