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승강기 기업 쉰들러 홀딩AG(이하 쉰들러)의 알프레드 쉰들러 회장이 “순환출자구조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스스로 발목이 잡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현대그룹 지배권(현대상선) 유지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 자산을 이용하는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쉰들러 회장과 현정은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두고, 지분다툼과 법정 소송을 통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7일 쉰들러 회장은 전세계 언론과 애널리스트를 상대로 한 텔레콘퍼런스에서 이 같이 말했다. 쉰들러 회장은 지난 2003년부터 시작된 현대엘리베이터와의 관계에서부터, 국내 시장의 철수 여부 등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쉰들러 회장은 앞으로 계획에 대해서는 “①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모두 매각하고 한국 시장 철수 ②투자 주식 100% 손상 처리 ③금융감독원 등 규제당국이나 채권단의 개입을 기다림 등 세가지 방안이 있다”며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쉰들러 회장이 텔레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최대한 쉰들러 회장의 말한 원문을 그대로 실었다.
◇ 04년 LOI 무산..10년 “현 회장님이 마음 바꾸셨다”
2003년 KCC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매입으로 KCC와 현정은 회장 간의 갈등이 시작됐다. 쉰들러는 2004년 1월 현대엘리베이터와 KCC를 같은 날 방문, 현정은 회장에게 현대엘리베이터의 우호적 투자 의사를 개진했다. 그 다음 달 현정은 회장과 모친인 김문희 여사와 쉰들러 회장의 합의로 LOI(Letter of Intent)를 체결했다. 2004년 말까지 엘리베이터 사업부문을 인적분할하고, 분할된 회사는 쉰들러가 60%의 지분과 경영권을 보유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쉰들러의 예상보다 복잡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LOI의 내용이 한국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LOI 파기를 요청했다. 2005년 10월 계약은 파기됐다.
이후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계속 이어졌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분할할 경우, 이를 쉰들러에게 알리겠다고 밝혔다. 2006년 쉰들러는 KCC의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5%를 매입했으며, 차후 추가적으로 10%가량을 시장으로부터 매입했다. 2007년에도 현정은 회장과 만나 전략적 파트너십 강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또한 현회장의 초청에 따라 함께 금강산을 방문했다.
2010년 5월경, 현대엘리베이터 재무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해 들었다. 채권은행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재무구조개선약정 MOU를 요청했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서신을 통해 문의하자 당시 하종선 현대그룹 사장은 “현 회장님이 마음을 바꾸셨다. 심중의 변화가 있었다”고 답했다.
◇ 순환출자·파생상품 탓에 현대엘리베이터 자멸
현대그룹의 핵심자산 1순위는 현대상선은 90억 달러 가량의 채무를 보유하고 있다. 부채비율은 자기자본 대비 1200%에 달한다. 현대상선은 2011~2012년에 15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다. 2013년 3분기 기준 3억53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4년 전망 역시 희망적이지 않다.
현대그룹의 핵심자신 2순위인 현대엘리베이터는 기업성과가 좋다. 2013년 9억5천만 달러의 수익을 냈다. EBIT는 2011년 3.2%에서 2013년 3분기 8.6%로 개선됐다. 비즈니스 자체는 건강하나, 그룹 경영권 유지 차원의 순환출자 및 파생상품 등으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 2004년 LOI 대로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사업부문이 분할됐다면, 자멸의 길을 걷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30.89%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로지스틱스는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21%를 보유하고 있고,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 37% 가량은 현정은 회장이 보유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현대로지스틱스 지분의 48%는 또 현대상선이 보유해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전형적인 순환출자 구조다.
이 순환출자 구조는 굉장히 취약하다. 또 현대상선의 지분을 담보로 현대엘리베이터가 맺은 파생상품계약에서 오는 손실에 취약한 구조다. 현회장이 보유한 현대상선의 지분은 3% 정도지만, 파생상품 계약을 통해 9.5%의 우호지분을 추가로 형성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파생상품 계약으로 인해 계약 상대방에게 현대상선의 주가 손실분을 모두 현금으로 보전하고 있다. 이자도 7.5%에 달한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진이 자신의 그룹 지배권(현대상선) 유지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 자산을 이용하는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는 1년 사이 세 번에 걸친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유상증자는 25%의 엄청난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작년 6월 유상증자의 경우 기존주주를 배제한 일반공모 방식으로 진행돼 쉰들러의 의결권이 희석됐고 주가 역시 급락했다.
규제당국은 현대그룹이 30억 달러의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 자구책으로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2014년에도 추가적인 유상증자가 필요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관을 변경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정관 상 상장가능주식수의 최대한도는 2000만주, 금번 유상증자 이후 현대엘리베이터 상장주식 수 1960만주에 이르게 된다.)
◇ 현대엘리베이터 추가 유상증자 우려
2007년 현정은 회장에게 순환출자의 문제점에 대해 이미 말했다. 현재는 자신의 그룹 지배권 유지를 위한 순환출자구조에 현정은 회장 스스로 발목 잡혔다. 현대그룹의 유일한 캐시카우는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사업부문이다. 이 사업부문을 매각하게 되면 파생상품 계약의 정산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한 금액이 2억5백만 달러에 달한다. 아울러 현재 파생상품 계약에 걸려있는 현대 상선 지분 9.57%를 되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엘리베이터 사업부를 매각하기보다는 추가 유상증자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추가적인 주가하락과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쉰들러가 향후 한국에서 취할 수 있는 방향은 세 가지다. 첫째,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매각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쉰들러의 지분매각이 다른 소액주주들과 현대엘리베이터 임직원들에 미치는 여파를 고려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둘째, 투자금을 100% 대손처리하고 잊어버리는 방법이다. 5년 정도 후면 주가가 다시 오를수도 있다. 해운업황 등 그룹 상황이 좋아져 주가가 다시 올라가길 기대한다. 마지막은 금감원 등 규제당국이나 채권단이 현대그룹의 순환출자 구조, 파생상품 등의 심각성을 인식해 조정 개입을 기다리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