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연계증권(ELS) 마진콜로 인한 증권사들의 유동성 경색이 점차 진정되는 모습이다. 다만, 기업어음(CP) 금리가 아직 제자리를 못찾고 있어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한은)에서 단기금융시장 안정화를 위해 정책적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유동성 위축 국면을 타개할 수 있는 핵심 '키'는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입 여부에 달렸다는 진단이다.
◇CP 금리 하락세⋯여전히 높은 수준
14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CP 91일물 금리는 지난 13일 2.120%를 기록했다. 지난달 26일 2%를 넘어선 CP 금리는 이달 2일 2.230%까지 치솟으며 연중 최고점에 올라서기도 했다.
이후 정부와 금융당국의 단기금융시장 안정화 대책들이 나오면서 이달 10일 2.130%까지 떨어졌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이전까지 CP 91일물 금리는 1.5%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CP금리 급등 배경에는 해외 거래소의 마진콜(추가 증거금)이 자리하고 있다. 증시 하락으로 인해 추가 증거금을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인 증권사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갖고 있는 CP를 시장에 팔기 시작했는데 시장에 물량이 대거 출회하면서 금리가 치솟은 것이다.
기준금리 및 CP 3개월물 A1 등급 수익률 간 스프레드도 점차 안정세를 찾고 있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격차는 벌어져 있다.
지난달 16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50bp(1bp=0.01%포인트) 인하한 이후 CP A1 등급 3개월물 금리 수익률은 2.02%까지 뛰었고 4월 들어 1.66%(13일 기준)까지 하락하며 기준금리 및 만기수익률 간 스프레드를 좁혀가고 있다.
◇ 관건은 PF-ABCP 매입⋯문제는 신용위험 전가
최근 CP 시장의 금리가 하향세를 타면서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려면 한국은행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대상 채권에 ABCP가 포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히 전체 ABCP 발행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ABCP 매입 여부가 금리 안정화의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증권사들은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시행사 대출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어음(ABCP)을 발행해 신용을 보강해 왔다. 통상 3개월 안에 차환 발행되는 구조인데, 시장에서 매입자를 찾지 못할 경우 증권사는 그 물량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14일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 '세이브로'에 따르면 10일 기준 ABCP의 발행 규모는 123조109억원이다. 이중 PF-ABCP는 약 80조~90조원에 이를 것으로 금융투자업계는 추산한다.
같은 기간 ABCP를 포함한 CP 발행잔액은 188조7118억원으로 전체 CP 발행 규모에도 50%를 육박한다. 즉, 해당 물량이 시장에서 제때 차환되지 않을 경우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
한은의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 유동성 공급대책의 담보 대상 채권에서 CP가 빠져있기 때문에 3개월 마다 만기가 도래하는 PF-ABCP 특성 상 2분기에도 증권사들의 유동성 불확실성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한은의 RP 매입 프로그램에 CP도 포함돼야 유동성 위험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신용위험 전가를 감안하면 한은의 CP매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증권사들의 유동성 불확실성 해소의 관건은 신용위험 전가 여부"라며 "한은이 발권력을 이용해 자금 지원을 하고 싶어도 신용위험이 있기 때문에 ABCP 매입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미국 CP 매입 프로그램 참고할 만
이에 일각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연준)의 CP 매입 프로그램(Commercial Paper Funding Facility 2020·CPFF 2020)이 금리를 낮추는 동시에 유동성 경색을 타개할 수 있는 대안으로 거론된다.
해당 프로그램에 따르면 연준이 특수목적 법인을 설립해 ABCP를 포함한 3월 만기의 CP를 매입하는데 이때 미국 재무부가 CPFF 2020을 위해 조성한 거래안정기금(Exchange Stabilization Fund)을 활용해 100억 달러(한화 약 12조 1750억원) 규모의 신용보증을 제공한다.
즉, CP 매입은 연준이 하지만 이에 수반하는 리스크는 미국 재무부가 지게 되는 것이다.
황 연구원은 "미국은 연준이 돈을 풀면 신용위험을 미국 재무부가 보증을 서준다"며 "담보 부실이 발생할 경우 재무부가 신용위험을 떠안기 때문에 연준이 돈을 무제한으로 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용리스크를 한국은행이 진다는 것은 통화정책 영역 벗어나는 것"이라며 "재정정책을 통해 신용위험을 대체해 보다 근본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