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증권시장이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지 어느덧 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주식과 펀드가 대표적인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은 지도 적잖은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나라의 투자문화를 두고 '성숙'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는 여전히 어색한 게 사실이다. 지난해 라임부터 최근 옵티머스까지 사모펀드 사태는 설익은 한국 투자문화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투자자 보호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올바른 투자문화와 그 전제조건인 금융교육의 필요성을 고민해본다. [편집자]
사모펀드는 태생부터 '그들만의 리그'를 표방하고 만들어진 금융상품이다. 49인 이하의 자산가들로부터 각각 억대의 돈을 받아 운용된다. 돈의 흐름에 밝은 '큰손'들이 투자하는 상품답게 운용전략은 위험과 수익은 비례한다는 '하이 리스크(High Risk·고위험) 하이 리턴(High Return·고수익)'에 철저히 따른다. 다른 금융상품과 비교해 투자 결과에 대한 자기책임 원칙이 매우 강하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아무나 접근할 수도, 아무나 접근해서도 안되는 상품이다.
최근 잇따른 사모펀드 사고로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하는 투자자 대부분은 예금만큼 안전하면서도 예금 이자보다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해 펀드에 가입했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사모펀드의 기본 개념과 위험성을 숙지하지 못하고, 당연히 부실 상품을 구별할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약육강식의 위험한 정글에 덜컥 발을 들여놓았다는 걸 뜻한다.
운용사의 계획적 사기로 드러난 옵티머스펀드 사고의 경우 피해 금액의 절반이 넘는 돈이 금융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60대 이상 고객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고 한다. 펀드 환매가 중단되면서 투자금을 날릴 처지가 돼서야 자신이 투자한 상품의 위험성을 알게 된 고객도 상당수다. 노후 대비 은퇴자금을 투자한 고령층의 충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은 모든 걸 자신의 잘못으로만 인정하고 스스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니다. 일차적으로 투자자들의 돈을 펀드 운용 취지에 맞게 굴리지 않고, 사리사욕을 위해 악용한 운용사의 잘못이 가장 큰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니 차치하자.
일차적으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의 책임이 크다. 위험한 투자상품에 사전 지식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너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줬다. 기업 자금조달 창구로써 사모펀드의 순기능만 높이 평가한 나머지 부작용 발생 가능성을 간과하고 사모펀드의 진입 장벽을 풀어주는 데만 급급했다.
사모펀드를 먼저 도입한 선진국들이 소득이나 보유 자산, 금융거래 경험 등을 따져본 후 투자를 허용하는 것과 달리 투자금액이 1억원만 넘으면 사모펀드에 접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준 것은 사모펀드가 마치 공모펀드처럼 팔리게 된 직접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금융업계는 당국이 사모펀드의 문턱을 낮추는 동시에 투자자들에게 그 개념과 위험성을 알리는 교육을 실시하고 또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해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노력도 병행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무턱대고 문턱만 낮춘 뒤에 사고가 터지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판매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명확한 결론도 나기 전에 보상을 압박하는 행태도 어불성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판매사들도 책임을 모면하긴 어렵다. 원금 손실 위험이 지극히 높은 펀드를 판매할 땐 그 구조를 꼼꼼히 검증하고, 투자자들에게도 충분히 설명하고 자세히 고지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당장의 수수료 수입에 눈이 멀어 부실과 사고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다. 판매사들이 선관의무에 따른 이 절차를 무시했다면 관련 규정에 따라 처벌을 달게 받고 투자자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는 게 마땅하다.
투자자들 역시 일방적인 피해자로 볼 순 없다. 노후자금이나 전세금 등 피 같은 거액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그 상품이 어떻게 수익을 내는지, 위험성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새 TV나 가구를 고르는 만큼의 노력도 없었다. 물론 꼼꼼하게 알아보더라도 얼마든지 손실을 보거나 사기를 당할 수 있다. 다만 예금처럼 원금을 보장해 준다는 창구직원의 말만 믿고 투자했다는 하소연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전반적인 투자 문화도 척박한 게 현실이다. 최근 2030세대 위주의 동학·서학개미들이 적극적으로 주식시장에 뛰어들면서 자본시장 활성화에 청신호가 켜지긴 했다. 하지만 투자가 아닌 투기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빚투'와 '곱버스', '원유개미' 같은 신조어가 이런 흐름을 잘 대변해준다.
결국 문제의 귀결은 금융교육으로 모아진다. 금융교육은 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와 신뢰를 높이고 바람직한 투자 결정을 내리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자기책임의 원칙 역시 그 전제하에 투자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꾸준한 금융교육은 성숙한 투자문화 정착은 물론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한 밑바탕이다.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업계가 다시 한번 금융교육 강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