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기업공개(IPO) 역사를 다시 쓸 것으로 기대를 모은 알리바바의 금융 계열사 앤트그룹 상장이 얼마 전 돌연 중단됐다. 한껏 달아올랐던 중국 공모주 시장, 특히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과창판·과학혁신판)에 대한 투자 열기가 꺾이면서 관련 펀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셋자산운용과 우리자산운용 등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펀드를 선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고려할 때 커촹반을 필두로 한 중국 공모주 시장의 성장세는 흔들림 없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고 앤트그룹의 상장 연기 역시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앤트그룹은 당초 지난 5일 상하이증권거래소의 커촹반과 홍콩증권거래소에 동시 상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상장을 고작 이틀 앞두고 중국 금융당국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상하이증권거래소는 앤트그룹의 커촹반 상장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히면서 구체적인 재개 시한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앤트그룹의 공시에 따르면 상장 잠정 중단은 이달 초 중국 인민은행과 중국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은보감회),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증감회), 국가외환관리국 관리자와 알리바바 창업주이자 앤트그룹의 실질적 지배주주인 마윈, 앤트그룹 회장, 앤트그룹 총재 간 예약 면담 후 결정됐다. 중국 핀테크 감독관리 환경에 변화가 발생해 상장 요건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게 상장 중단의 표면적 배경이다.
그러나 해외 언론들은 중국 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서밋에서 마윈이 중국 정부의 보수적인 금융감독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사실에 분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앤트그룹의 IPO를 중단하도록 지시했다고 전하고 있다. 게다가 기득권 세력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은행권의 집중 견제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은 미중 갈등의 반대급부로 자국 정부의 후방 지원 속에 고공행진하던 중국 공모주 시장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앤트그룹은 커촹반·홍콩증시 동시 상장으로 350억달러(약 39조원)를 조달해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세운 역대 최대 IPO 기록을 갈아치우고 중국 공모주에 대한 시장의 투자 열기를 높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일각에선 앤트그룹 사태로 중국 공모주 펀드에 대한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도 식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운용사들은 이에 크게 개의치 않고 관련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미래에셋운용은 지난 16일 커촹반에 상장된 상위 50개 종목에 투자하는 주식형펀드 '미래에셋차이나과창판펀드'를 내놨다. 상위 50개 종목 외에도 중국 주식 관련 ETF와 신규 상장 예정 종목의 IPO에도 투자한다. 미래에셋운용은 "중국 정부 주도의 산업 고도화 수혜를 받는 중국 내 유니콘 기업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보다 닷새 앞서 우리운용도 커촹반에 상장된 주식에 투자하는 '우리과창판50바스켓펀드'를 출시했다. 펀드 구조는 미래에셋운용 펀드와 같다. 커촹반 종목 중 유동성과 시가총액이 높은 50개 종목 위주로 투자하고 중국 본토 ETF와 IPO도 포트폴리오에 활용하는 방식이다. 우리운용은 펀드를 낸 이유에 대해 "미국의 대중 제재 강화로 중국 정부가 기술 자립과 내수 육성 정책을 통해 커촹반을 키울 것으로 판단했다"고 전했다.
자산운용업계는 앤트그룹 상장 중단이 전체 중국 공모주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미미하다고 보고 있다.
현동식 한국투자신탁운용 상하이사무소장은 "앤트그룹의 상장 연기가 공모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앤트그룹 공모주 청약에 참여한 3000조원 이상의 증거금과 39조원의 공모자금이 모두 반환되면 해당 자금들은 또다시 새로운 공모주를 찾아서 청약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따라서 앤트그룹 자체 이슈를 공모주 시장 전체로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앤트그룹의 상장 중단이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청약 열기가 과열되며 공모가가 너무 높게 형성돼 상장 후 상승폭이 기대에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됐던 상황에서 수요예측부터 다시 시작해 공모가가 낮아지면 오히려 투자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중국 정부의 '주식발행 등록제' 확대 실시도 중장기적으로 중국 공모주 시장에 대한 투자 전망을 밝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7월 커촹반을 출범시키면서 증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다른 증권거래소와 달리 서류 적격 여부만 검증받으면 상장할 수 있는 주식발행 등록제를 처음 도입했다. 올해 8월 말 차스닥으로 불리는 '촹예반(창업판)'에 이 제도를 추가 적용한 데 이어 메인보드와 중소형판에도 확대 실시할 예정이다.
현동식 소장은 "주식발행 등록제 실시는 기관 중심의 수요예측이 진행된다는 것"이라며 "메인보드와 중소형판이 등록제로 전환되면 중국 시장의 모든 상장 주식에 대해 기관배정물량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펀드를 통한 중국 공모주 투자가 더 활발해질 가능성을 의미한다는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