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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기관 놓고 업권간 갈등…'표류하는' 퇴직연금 개혁

  • 2021.03.15(월) 14:41

DB형 투자일임 주체 두고 은행·보험업권 "우리도 자격 달라"
금융투자업권은 "어불성설" 퇴직연금 개혁 의미만 퇴색시켜

디폴트 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퇴직급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쥐꼬리 수익률' 탈출을 위한 퇴직연금 개혁에도 제동이 걸렸다.

개정안의 핵심으로 지목되던 확정기여(DC)형에 대한 디폴트 옵션 적용보다 확정급여(DB)형 투자일임 주체를 둘러싼 업권간 갈등이 장애물로 급부상했다. 사업자 간 기싸움으로 '퇴직연금 성과 개선'이라는 대명제가 뒷전으로 밀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일부 개정안이 검토 보류로 결론났다. 중소기업을 위해 근로복지공단이 퇴직연금기금을 만들어 운용할 수 있게 하는 안건을 다루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 탓에 관련 논의를 할 시간이 부족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업계에선 DB형 퇴직연금의 투자일임을 담당할 '자산운용기관'을 놓고 은행·보험업권과 증권·자산운용업권 간 줄다리기가 심화되면서 개정안 전반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 상황으로는 이달 임시 국회에서 개정안이 재논의되더라도 통과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안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 제29조2(적립금 운용에 관한 투자일임계약의 체결)를 보면 'DB형 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한 사용자는 자산운용기관과 적립금 운용에 관한 투자일임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여기서 자산운용기관의 자격 요건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투자일임업자로서 집합투자업 인가를 받았거나 전문사모집합투자업을 등록한 곳', '운용하는 투자일임재산 또는 집합투자재산의 규모 등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준 이상인 곳'이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투자업권이 이에 해당한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사들은 지난 2016년 출시된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투자일임업 인가를 받았던 사례를 들면서 이번에도 퇴직연금 자산운용기관 자격을 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디폴트 옵션 도입과 더불어 DB형 투자일임마저 증권사와 운용사 등에 내줄 경우 중장기적으로 퇴직연금 시장의 주도권을 금융투자업계에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와 운용사들은 은행·보험업권의 주장에 대해 애초 DB형 투자일임을 담당할 자산운용기관을 선정하자는 취지에 걸맞지 않은 '어불성설격' 우기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기존 퇴직연금의 부진한 수익률을 개선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산운용기관을 세우려는 것인데, 그간 운용성과가 부진하고 투자일임 경력 또한 일천한 은행·보험업권이 자산운용기관 자격을 달라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과거 은행권이 강력한 로비력을 동원해 ISA 투자일임업 자격을 따내는 것을 보고만 있었던 전철을 또다시 밟지 않겠다는 속내도 담겨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은행과 보험사들에 자산운용기관 라이선스를 줄 경우 퇴직연금 개혁의 의미는 퇴색할 게 분명하다"며 "업력이 없는 은행·보험사가 투자일임을 하겠다는 것은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돈으로 운용 연습하려는 것밖에 더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DB형 투자일임을 둘러싼 논란과 더불어 이번 퇴직연금 개정안의 간판 격인 디폴트 옵션 도입도 여의치는 않은 상황이다. 디폴트 옵션 도입 후 원금 손실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 법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보험사들은 25일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과의 충돌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디폴트 옵션을 도입하려면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권은 디폴트 옵션에 원리금 보장 상품을 넣자는 제안에 대해 겉으로 디폴트 옵션 도입에 대해 반대하지 않으면서 속으로는 제도 자체를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평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지금도 퇴직연금에 대해 별다른 운용 지시를 안 하면 예금으로 돈이 가게 돼 있다"며 "디폴트 옵션에 예금을 넣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디폴트 옵션을 통한 투자상품 가입은 은행 영업점이나 증권사 창구에서 파는 펀드에 가입하는 것과는 다르다"며 "운용 지시가 이뤄지지 않을 시 사전 약속에 따라 3번의 통보 후 이뤄지는 것으로, 금소법을 이에 맞게 적용하자는 게 정부 당국의 입장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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