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당국이 특정 투자자 손실을 메워주기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한 증권사 랩·신탁 운용역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로 잠정 결론 내렸다. 당국은 9개 증권사 30명의 운용역이 연루됐다고 보고, 혐의 사실을 검찰에 통보하기로 했다.
자전거래 행위, '업무상 배임' 판단
17일 금융감독원은 9개 증권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채권형 랩·신탁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금감원이 지난 5월 KB증권, 하나증권을 시작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한지 8개월만이다.
채권형 랩‧신탁은 통상 계약기간이 3~6개월로 법인 등이 단기 여유자금을 굴리기 위한 목적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법인 자금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증권사들은 거래량이 적은 장기 기업어음(CP)을 편입했다. 문제는 작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환매요구가 빗발쳤다. 이에 증권사들이 법인 등 일부 고객에만 투자손실을 메워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금감원은 특정 고객의 수익을 메워주기 위해 다른 고객에게 손해를 전가한 행위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는 중대 위법행위라고 밝혔다. 이에 주요 혐의사실을 수사당국에 제공하기로 했다. 관련 혐의자는 검사 대상인 증권사 9곳의 운용역 30명 내외다.
일례로 A증권사는 타 증권사에 특정고객 계좌의 CP를 비싸게 판 다음, 다른 고객의 계좌로 사가는 방식으로 고객간 손실을 이전했다. 이 증권사는 2022년 7월부터 총 6000회의 이러한 연계‧교체거래를 진행해 총 5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고객 간 전가했다.
증권사별 손실전가금액은 수백억원에서 최대 수천억원에 이른다.
고유자산 활용한 손실보전 행위 등 제재 예고
금감원은 또 증권사 고유자산으로 손실보전 행위가 자본시장법상 '사후이익제공'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시장법 55조에서는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사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B증권사는 다른 증권사에 가입한 특정금전신탁을 통해 2022년 11~12월 중 고객 랩‧신탁의 CP 등을 고가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총 1100억원 규모의 손실을 메워줬다.
이밖에도 △고객과의 계약으로 정한 편입자산의 잔존만기, 신용등급 등을 위반한 거래 △동일 투자자의 랩 계좌 간 위법 자전거래 △고유자금으로 펀드를 설정하고 특정 채권, CP를 고가매수 거래 등 여러 위법 행위가 적발됐다.
이번 검사를 통해 포착된 불법 행위는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간주해 향후 신속 조치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법인 등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랩‧신탁은 실적배당상품이므로 증권사에 과도한 목표수익률 제시를 요구하거나 이를 신뢰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또한 운용보고서 및 계좌 조회 등을 통해 자산의 내역과 만기 등을 수시로 확인하고, 적정하게 운용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매 시에는 투자손실 보전 또는 목표수익률 보장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투자자 자기책임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금감원은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선 객관적인 가격 산정 및 적법한 손해배상 절차 등을 통해 환매가 이뤄지도록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