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만 해도 서른살이 넘으면 프로그래밍을 못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수염이 희끗한 미국 개발자들을 동경하는 이들이 생겼습니다. 관리자로 넘어가지 않고 평생 개발자로 남겠다는 친구도 늘었죠. 프로그래밍이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이 된 겁니다."
1998년부터 프로그래밍을 업으로 삼은 김명신 NHN클라우드 최고기술책임자(CTO)에게 그동안 개발업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묻자 이같은 답이 돌아왔다. 개발자로 오래 일하려면 "열린 마음으로 깊이있게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NHN클라우드에도 개발자들이 성장할 수 있는 문화를 키우고, 인공지능 등 다양한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개발자는 윈드서퍼…수시로 변화 수용해야"
김 CTO는 NHN클라우드에서 기술과 관련된 업무 전반을 총괄한다. 기술 관점에서 시장 상황에 맞춰 전략을 수립하고, NHN클라우드의 미래를 그린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기술 역량을 지원하고, 만들어진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김 CTO의 몫이다.
다른 기업의 CTO들과 달리 NHN클라우드의 기술을 알리고 개발자 커뮤니티를 관리하는 마케팅 부서도 산하에 두고 운영한다. 최근엔 외부 개발자들이 쉽게 NHN클라우드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테크니컬 라이팅' 분야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플랫폼을 비롯한 기술 제품뿐만 아니라 사용법을 알려주는 완성도 높은 도큐먼트(문서)도 하나의 제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NHN클라우드의 기술과 관련된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그의 탄탄한 역량은 1990년대부터 쌓였다. 자신을 '8비트 키즈(8bits kids)'라고 부르는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의 컴퓨터 대리점에서 삼성 spc-1000 모델을 보면서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컴퓨터 서적을 구매해 집에서 종이에 그린 자판으로 혼자 소스코드를 공부하고, 백화점과 대리점에 진열된 컴퓨터로 실행해보면서 개발을 배웠다.
외환위기의 여파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은 시기, 창업으로 프로그래밍 업계에 발을 들인 그는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수용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1960년대 프로그래밍 언어가 등장하면서 생겨난 현재 개발 생태계에선 "아직 변치 않는 이론이 만들어지지 않아 어제 했던 이야기가 하루아침에 틀릴 수도 있다"며 "소프트웨어를 다루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변화 수용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두번째 역량을 꼽으라면 변화를 수용하는 스터디 능력"이라며 "개발자는 수시로 바뀌는 파도에 맞춰 균형을 잡는 윈드서퍼처럼, 주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파악하고 수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단순히 새 기술을 쫓기만 하지 않고, 수많은 기술이 하나로 귀결되는 지점을 찾아낼 수 있는 깊이있는 공부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NHN클라우드 기술강점은 '패스트 팔로우'
변화를 강조한 김 CTO는 NHN클라우드만의 기술 강점으로 가장 먼저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를 꼽았다. 쟁쟁한 글로벌 클라우드 사업자(CSP)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파악하고 자사 서비스를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김 CTO는 "글로벌 CSP를 꼽자면 AWS(아마존), 애저(MS), GCP(구글) 정도인데, 현실적으로 국내 CSP가 글로벌 CSP보다 잘하는 건 쉽지 않다"며 "글로벌 CSP보다 잘할 수 있는 건,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새로운 시도 등을 빠르게 파악하고 받아들여 NHN클라우드 이용자들이 부족함 없도록 패스트 팔로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용자들이 필요한 것을 잘 제공하는 지역화능력도 NHN클라우드만의 강점"이라며 "인공지능(AI)으로 동양인의 얼굴을 인식하거나 한국어 서비스를 만드는 면에선 지역화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토착 기업으로서 국내 공공 사업 시장의 실정에 맞는 인증 체계를 갖추고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도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NHN의 전신인 한게임 시절부터 쌓아온 보안 능력도 차별점으로 꼽았다. 김 CTO는 "NHN은 한게임 시절부터 보안과 개인정보 문제를 민감하게 다뤘고, 금융기업 페이코를 운영하면서 보안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NHN클라우드는 공공 전환 사업의 50%를 수주할 정도로 관련 사업을 활발히 해오면서 다양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해왔다"고 강조했다. '유연하고 안전하게'라는 슬로건에 맞춰 NHN클라우드가 이용자들에게 보안 컨설팅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인공지능으로 글로벌 시장 도약할까
최근 관심갖는 분야를 묻자 김 CTO는 주저 없이 인공지능(AI)이라고 답했다. 그는 "NHN클라우드는 내부에 AI 본부를 갖추고 있어 클라우드와 AI를 한 몸처럼 움직이는 유일한 기업일 것"이라며 "AI로 직접 결과물을 낸다기보다는 AI를 연구하거나 사용하는 고객에게 적합한 인프라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에게 학습시킬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선 저장 공간이 필요하다. NHN클라우드는 광주에 국가 AI 데이터센터 등을 운영하면서 본격적으로 관련 사업에 나서고 있다.
김 CTO는 "저장공간뿐만 아니라 AI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이들이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개발자 키트(SDK)를 제공하는 서비스도 운영 중"이라며 "AI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길 원하는 기업이 데이터를 전달하면 개발하려는 모델에 적합한 알고리즘을 대신 골라주는 '이지 메이커' 기능도 조만간 런칭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인공지능 개발 과정에선 데이터를 수집하고 학습에 맞게 손보는 전처리 과정뿐만 아니라, 적합한 학습 알고리즘을 찾는 데에서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학습했을 때 가장 정확한 AI가 나오는지 알 수 없어 여러 알고리즘을 일일이 적용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김 CTO는 NHN클라우드의 AI 서비스를 통해 기업이 소프트웨어 출시를 앞당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서비스 시장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건 변화에 발맞춰 빠르게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라며 "이지메이커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서비스 출시 속도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18개월마다 지식 반토막 나…공부해야"
김 CTO는 NHN클라우드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사내 개발자 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는 "NHN클라우드에 와서 가장 놀라기도 했고, 가장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건 기술 공유와 소통 문화"라며 "개발자들이 사내 기술 공유 게시판에 기술적인 난제를 해결하거나, 반대로 실패했을 때 경험담을 블로그처럼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조직에서도 이 게시판에 개발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을 장려해 우수한 글을 뽑아 시상한다"며 "선정된 이들에겐 해외 연수를 제공하는 등 활발히 기술이 공유되도록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웹에서 기술 문서를 보면서 역량을 쌓는 것도 업무의 일환으로 충분히 인정해준다"며 "위에서 지시한 업무를 수행하거나, 관련 내용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도 장려한다"고 말했다.
'관리자 입장에서 공부는 퇴근 후에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개발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실용 가치가 절반이 되는 '지식의 반감기'가 1년6개월 이다"며 "그 기간이 지나면 역량이 반 토막 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회사가 전문성을 가진 직원을 원한다면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며 "NHN이 20년 가까이 개발 분야에서 리더 자리를 지킨 원동력도 단연 사내 개발자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도록 돕는 문화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꿈은 '칠순잔치에 라이브 코딩'
이런 기업 문화는 김 CTO가 생각하는 '좋은 개발자'와도 연결된다. 그는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선 "두려움 없이 도전해야 한다"며 "한계를 규정하고, 회사의 절차와 규정에 맞춰 일하기보단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으로 새롭게 도전하는 개발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CTO 본인도 개발 공부를 하고 있냐고 묻자 "지금도 계속 개발 공부를 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게 개발은 공부라기보단 생활"이라며 "CTO가 직접 코딩을 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도 러스트(RUST)라는 언어를 공부하면서 이게 지니는 가치가 뭘지 알아보고 있다"고 답했다.
끝으로 그에게 꿈을 묻자 "우선은 NHN클라우드를 국내 최고 CSP로 만드는 것"이라며 "자는 시간 빼고는 우리가 어떻게 혁신을 이끌지, 어떻게 개발자를 품어 역량을 발휘하도록 돕는 조직을 만들지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꿈이 하나 더 있는데"라며 "젊었을 때부터 환갑 잔치에서 라이브 코딩을 하는 게 꿈이었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환갑은 조금 짧은 것 같고, 칠순잔치 때 그 시대에 가장 많이 쓰는 언어로 가장 유행하는 서비스를 한시간 동안 라이브 코딩해서 보여주고 싶다. 그때까지 코딩을 하고, 공부하고, 업계에 머물고 싶은 게 소망이다"라고 웃으며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