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신임 단독 대표로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내정했다. 다양한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키워 낸 IT(정보기술)업계 베테랑인 그가 위기에 빠진 카카오를 어떻게 구해낼지 관심이 모아진다. 세대교체 신호탄... 쇄신 급물살 탈 듯
카카오는 13일 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사업 총괄을 맡고 있는 정신아(만 48세·1975년생)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단독대표 내정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오는 3월 예정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공식 대표로 선임된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 11일 임직원 대상으로 진행한 행사에서 "카카오는 근본적 변화를 시도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며 "새로운 배, 새로운 카카오를 이끌어갈 리더십을 세우겠다"고 밝힌지 불과 이틀만의 CEO(최고경영자) 교체 결정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가려면 그에 걸맞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IT 분야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보유하고 기업의 성장 단계에 따른 갈등과 어려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신아 내정자가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특히 카카오의 이번 결정은 정 내정자보다 12살 많은 홍은택 대표(1963년생) 시대를 닫고 경영 세대 교체를 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정 내정자는 최근 출범한 경영쇄신위원회 상임위원도 맡아 쇄신의 방향성 논의에도 참여하고 있어 업계에선 그가 차기 CEO(최고경영자)로 수차례 거론되기도 했다.
앞으로 정 내정자는 '쇄신TF장'을 맡아 카카오의 실질적인 쇄신을 위한 방향을 설정하고 세부 과제들을 챙길 계획이다.
성장기업 두루 거친 베테랑... 새 리더 부상
글로벌 IT 업계 사례를 보면 회사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젊은 여성 CEO를 내세워 브랜드 이미지·경영 쇄신을 한꺼번에 시도하는 한편, 그가 성공하면 영웅으로, 실패하면 CEO 탓으로 모는 경우가 하나의 패턴으로 발견되고 있어 이번 리더십 교체도 주목받는다.
2012년 구글 부사장에서 야후 CEO로 발탁된 마리사 메이어가 대표적 사례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였던 야후가 구글과 페이스북 등 신흥 강자에 밀려 무너지고 있을 때였다. 취임 초기엔 스타트업 인수를 적극 추진하며 살아나는듯 했으나, 결국 그의 야후 살리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정 내정자가 단지 젊고, 여성이란 이유로 카카오 쇄신의 전면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는 이미 한 회사의 CEO였고, 특히 VC(벤처캐피털)를 경험하면서 한 회사가 아닌 다양한 회사의 역량을 파악하고 동반 성장에 기여하는 경험을 쌓았다는 것이다.
실제 정 내정자는 보스턴 컨설팅그룹과 이베이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eBay APAC HQ), 네이버를 거쳐 2014년 카카오벤처스에 합류해 10년가량 VC 경험을 쌓은 스타트업 생태계 베테랑이다.
특히 2018년부터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맡아 인공지능(AI)·로봇 등 선행 기술, 모바일 플랫폼, 게임,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한 것이 카카오의 새로운 리더십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카카오는 스타트업으로 출발해 국내 계열사만 146개(올해 6월말 기준)에 달할 정도로 양적 팽창을 거듭하면서, 전체를 아우르는 리더십이 사실상 없다는 지적을 받았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도 "카카오 각 공동체(계열사)가 더 이상 스스로를 스타트업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며 "사회가 카카오에 요구하는 사회적 눈높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책임경영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정 내정자는 10여 년간 VC 분야에서 경험을 쌓으며 스타트업의 창업부터 성장,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까지 각 성장 단계에 대한 분석·문제 해결 능력을 키웠다"며 "커머스·광고 등 카카오의 다양한 사업과 서비스에 대한 깊은 인사이트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3월부턴 카카오 기타비상무이사로 합류해 카카오의 사업·서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왔고, 지난 9월부터는 CA(Corporate Alignment)협의체에서 사업 부문 총괄을 맡는 등 리더십의 최고층에 바짝 근접한 인사였다는 분석이다.
최근 카카오 내부 비리를 연일 폭로하며 회사 내부를 뒤흔든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 이사장이 CA협의체에서 '경영지원'을 맡아 비용과 같은 살림을 챙긴다면, '사업'을 맡은 정신아 내정자는 사회적 눈높이에 맞는 전사적 쇄신을 단행하는 선봉장이자, 향후 카카오 계열사의 사업 전체의 방향성 등을 이끄는 새로운 리더로 부상했다는 해석이다.
정신아 내정자는 "사회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출 수 있도록 성장만을 위한 자율경영이 아닌 적극적인 책임 경영을 실행하고, 미래 핵심사업 분야에 더욱 집중하겠다"며 "카카오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기에 변화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