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올 들어 자사주 취득과 소각에 나선 곳이 부쩍 늘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자금을 투입하거나 설립 이래 처음으로 자사주 소각에 나서는 등 과감한 베팅이 눈길을 끈다.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면서 주가 부진이 이어지자 주주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올 들어 자사주 소각 나선 기업 6개사, 유독 늘어
15일 비즈워치가 올 들어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제약바이오 기업 수를 집계해보니 유한양행을 비롯해 셀트리온과 휴젤, 큐라켐, 보령, 바디텍메드 6개사로, 작년 한 해 보다 두 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 자사주 취득에 나선 기업은 유한양행과 셀트리온을 포함해 13개사에 달했다.
올 들어 자사주 취득과 소각을 동시 진행하는 곳은 유한양행과 셀트리온이다. 유한양행은 지난 13일 2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계획과 함께 253억원에 달하는 자사주 24만627주 소각을 예고했다. 유한양행이 자사주 소각에 나선 것은 설립 이래 처음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앞서 유한양행은 지난해 10월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오는 2027년까지 약 1200억원 규모에 달하는 자사주 1%에 해당하는 80만2090주를 소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 소각하는 자사주는 당초 계획의 약 30% 수준으로, 2026년과 2027년에 나머지 70%를 나눠 소각할 것으로 보인다.
셀트리온은 올해 4차례에 걸쳐 35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했고 3차례에 걸쳐 3281억원 상당의 자사주 소각을 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휴젤은 15일 537억원을 투입해 자사주 30만주를 소각할 예정이며, 보령 100만주(102억원), 바디텍메드 14만389주(20억원),큐라켐은 25만주(20억원)의 자사주를 지난 3월 소각했다.

유한양행과 셀트리온을 제외한 11개 제약바이오 기업은 나란히 자사주 매입에 나섰다. 메디톡스는 지난 1월 48억원의 자사주를 취득한 데 이어 53억원의 자사주를 매입하며 총 101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취득했다.
아울러 △한국유나이티드 100억원 △리가켐바이오 70억원 △JW중외제약·휴메딕스 각 50억원 △한올바이오파마 32억원 △유유제약 20억원 △코미팜·선바이오·일양약품 각각 10억원 규모로 자사주 취득 계획을 발표했다.
유의미한 성과에도 주가 부진…주주가치 제고 나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잇따라 자사주 취득 및 소각에 나선 이유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주가 부진이 지속되는 등 기업가치가 저평가됐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유한양행의 경우 폐암 신약 '레이저티닙(제품명 렉라자)'이 지난해 8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J&J)의 리브리반트와 병용요법으로 허가를 받으며 증권가에서 목표주가가 22만원까지 전망됐다. 그러나 주가는 지난해 10월 장중 한때 16만6900원까지 오른 이후 등락을 반복하면서 지난 14일 기준 10만7500원까지 가라앉은 상태다.
리가켐바이오도 지난해 일본 오노약품공업에 항체약물접합체(ADC) 2건, 존슨앤드존슨 자회사 얀센바이오텍에 레고켐바이오의 ADC플랫폼기술과 메디테라니아로부터 기술도입한 항체를 접목한 'LCB84'에 대한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주가는 지난해 11월 14만3600원까지 치솟았다가 현재 9만원대로 줄어들었다.
회사가 자사주를 매입할 경우 유통주식수가 감소해 주당 순이익이 증가하고 자사주를 소각하면 발행주식수가 줄어들어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이에 기업들은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느낄 때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사주를 매입하거나 소각한다. 주당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주주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다만 취득한 자사주를 재매각할 경우 유통주식 물량이 복구돼 주주환원분이 다시 회수될 수 있다. 자사주 소각까지 이뤄져야 완전한 주주환원이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미국 경기침체로 국내 증시가 폭락하고 최근에는 트럼프 약가 행정명령 등으로 바이오주가 약세를 보이는 등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일궈낸 성과에 비해 주가는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면서 "주가 부진으로 주주들의 불안감도 해소되지 않아 자사주 취득 및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