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없어서 못 샀던 분양권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대출 금리 부담과 집값 하락이 맞물리며 수분양자들이 하나 둘씩 발을 뺀 탓이다.
'줍줍'(무순위 청약)의 위상도 날개 없이 추락 중이다. 분양가가 시세보다 크게 저렴한 '로또' 수준이 아닌 이상 자칫 '폭탄'을 떠안게 될 것이란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에 분양가 등에 따른 '청약시장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계약 안해→줍줍→또 미달 '악순환'
최근 수도권 분양 단지에 청약 당첨이 되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수분양자들이 늘면서 줍줍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8월 분양한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 아이파크시티 10단지'는 일반공급 당시 128가구 모집에 681명이 청약통장을 접수해 평균 경쟁률 5.32대 1을 기록했다.
지하 2층~지상 14층, 128가구 규모인 이 단지는 모든 평형이 전용 84㎡로 구성돼 청약 성적이 좋았지만, 수분양자의 62.5%에 달하는 80가구가 계약을 포기하면서 줍줍으로 나왔다.
그러나 지난 12일 진행된 줍줍에서도 58가구만 청약 신청해 0.73대 1의 경쟁률을 기록, 아직 22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지난달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에서 분양한 '평촌 두산위브 더 프라임'도 최근 청약 당첨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무순위청약을 진행했다.
이곳은 삼신6차 아파트 재건축 사업으로 총 456가구로 조성되고 지하철 1·4호선 환승역인 금정역이 도보권에 있어 일반공급에서 11.8대 1의 평균 청약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달 초 진행된 정당계약에서 일반분양 물량 178가구 중 111가구가 계약하지 않으면서 줍줍으로 이어졌다. 전날(24일) 진행된 무순위청약엔 27명이 신청하면서 청약 경쟁률 0.24대 1을 기록, 또다시 84가구가 주인을 찾지 못했다.
이날 무순위 청약을 진행하는 경기 의왕시 '인덕원 자이 SK뷰'도 줍줍을 전량 소화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9월 분양한 이 단지는 총 2633가구의 대단지로 모델하우스에서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는 등 분양 전부터 큰 관심을 받고 5.6대 1의 평균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청약 당첨자들이 계약을 꺼리면서 일반분양 899가구 가운데 절반이 넘는 508가구(56.6%)가 줍줍 물량으로 나왔다.
청약 당첨자들이 줄줄이 계약을 포기하는 데는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의 영향이다. 올해만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총 1.5%포인트 오른 데다, 집값은 떨어지는 반면 분양가는 오르면서 청약 수요자들의 부담이 점점 커진 탓이다.
집값 상승기엔 분양가 규제로 인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분양 아파트 수요가 높았지만, 최근 자재비 상승 등으로 분양가가 오르면서 시세보다 분양가가 비싼 단지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인덕원 자이 SK뷰'는 인근 아파트 시세가 하락하며 분양가가 더 높아졌다. 전용면적 59㎡의 분양가는 7억2400만~7억7800만원으로 바로 옆에 위치한 '인덕원센트럴자이' 같은 평형 실거래가(9월·7억500만원)보다 높은 상황이다.
'로또' 아니면 안 해!…청약자들 뒷짐
다만 여전히 줍줍에서 높은 인기를 끄는 단지도 있다.
지난 2020년 분양한 경기 과천 지식정보타운 '과천 푸르지오 라비엔오'는 이달 잔여 5가구(일반공급)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 결과 총 4511명이 신청해 평균 902.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동시에 무순위 청약을 한 '푸르지오 벨라르테'도 3가구(일반공급) 모집에 4094명이 신청해 평균 1364.7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이들 아파트는 최초 분양 때도 세자릿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로또 청약' 열기를 모은 바 있다.
올 들어 전국적으로 집값 하락세에 접어든 가운데 과천 아파트도 약세를 지속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분양가가 주변 시세의 절반 수준이라 '로또'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공공택지에 들어선 이들 아파트는 전용 84㎡ 분양가가 7억~8억원대다. 인근 '과천래미안슈르' 같은 평형이 14억~16억원대 호가하고 있어 향후 가격이 추가 하락해도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나온다.
이달 무순위청약을 받을 예정인 서울 송파구 '송파 시그니처 롯데캐슬' 2가구(계약 취소분·전용 84㎡)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높은 경쟁률이 예상되고 있다.
이 단지는 1945가구 규모의 대단지로 지난 2019년 8월 청약을 진행해 올해 1월 입주했다. 84㎡의 분양가는 9억원대로, 현재 인근 아파트의 호가는 17억원 전후에 형성돼 있다.
이처럼 '로또' 수준의 분양가가 아닌 이상 분양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청약 양극화'도 더욱 심화할 것이란 관측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수요자 입장에선 분양가 부담을 어느 때보다 크게 느끼면서 일부 지역에서 청약 미달로 연결되고 있다"며 "분양가와 기존 주택 실거래가 격차도 줄고 있고 분양 예정 물량 연기, 경기 침체, 분양가 인상 등이 맞물리면서 청약 미달 단지가 많아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한동안 '청약 광풍'이 불었던 서울마저도 미분양이 쌓이면서 한국부동산원 집계 기준 올해 8월 서울 미분양주택은 610가구로 전년 동월(55가구)보다 열 배 넘게 늘었다.
이어 "줍줍에서도 미달이 나는 건 청약 수요자들이 선별 청약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미래 가치가 높은 곳으로 수요자가 쏠리는 등 청약 선호도 편차가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