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제도가 이제는 수명을 다 한 게 아닌가 싶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공식적으로 전세 제도의 검토를 예고했다. 전세 제도의 허점이 전세사기를 비롯해 역전세, 깡통전세 등의 부작용을 야기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
이와 맞물리는 임대차3법도 근본적인 틀을 다시 짠다는 방침이다. 전세를 둘러싼 제도들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는 만큼 전월세신고제 시행도 1년 더 미루기로 했다.
미반환 전세사기 보증금을 사후정산하는 제도는 불가능하다고 딱잘라 말했다. 다만 국가에서 대신 경매를 진행해주는 식의 경매절차지원은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전세 제도, 올 하반기 연구 들어간다
원희룡 장관은 16일 취임 1주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세 제도가 역할이 있지만 이제는 수명을 다 한게 아닌가 보고 근본적으로 검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세제도는 임대인이 세입자한테 목돈을 빌린건데 갚을 생각을 안 한다는게 황당한 얘기"라며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으니까 못 돌려주겠다, 다음 전세 계약 보증금이 그 이전 보증금보다 작으니까 어쩔 수 없다라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보증금을) 돌려줄 마음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 갭투자를 통해 투자 차익만 노리고 나중엔 빠져나갈 구멍이 있어, 조직적 사기범죄가 판을 치게끔 지금까지 온 건 심각한 문제"라고 봤다.
원 장관은 "누구 잘못인가를 떠나서 제대로 예방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기나 주거약자들에 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는 걸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올 하반기에 본격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 제도와 맞물리는 임대차3법(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도 함께 손본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임대차시장에서 나타난 많은 문제를 분석·복기해서 현재 수준에서 현실성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선 가장 근본적인 제도안을 내놓을때가 됐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제대로 판 위에 올려서 큰 그림 짜보자는 각오"라고 밝혔다.
이어 "임대차3법은 억지로 4년 동안 (계약 기간) 보장, (전월세) 신고 및 과태료 등은 아주 복잡한 문제에 대해 회초리 하나 들고 강요하는 거라 대책이 될 수 없다"며 "법 자체를 없앤다는게 폐지라고 한다면 (그보다는) 전세제도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2020년 7월 말 전월세신고제와 계약갱신청구권 통과 후 2021년 6월부터 전월세신고제를 시행하면서 1년간 계도기간을 뒀다.
그러나 2022년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임대차3법에 대한 개정 요구가 커지면서 계도기간을 1년 연장해 이달 말 만료를 앞두고 있다.
원 장관은 이날 전월세신고제의 계도기간을 1년 추가 연장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과태료 관계없이 신고율이 올라가고 있고 전세가율, 역전세, 깡통전세, 전세가기 등의 문제가 엉켜있는 데다 등록임대사업자 제도도 손을 봐야 한다"며 "임대차신고라는 단편적인 행정에 행정력을 쏟는 것보단 임대차시장 전체의 틀을 크게 공사하면서 어느 정도 큰 줄기를 잡은 시점에서 행정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전세사기 '사후정산' 불가능…경매절차지원은 검토"
전세사기 피해자는 최대한 구제한다는 방침이다.
원 장관은 "억울하게 전재산을 날린 피해자들에게 가급적 지원의 폭을 넓힌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계획적인 갭투자, 감당 불가능한 갭투자도 사기성이 있는지는 법정으로 가서 따질 일인데 결과적으론 사기로 보고 지원 범위에 넣으려 한다"며 "계획적이고 다량의 갭투자 피해를 본 피해자들에 대해 굳이 지원을 못해준다고 선 그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사기 의도는 없으나 역전세 등으로 전세보증금을 돌려주기 힘든 이른바 '선의의 집주인'에 대해선 대출 규제 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원 장관은 "지나갈 길을 열어주고 지나가라고 해야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셋값이 내려가서 이전 전세보증금을 못 돌려주는데 다른 대출 끌어들일 수 없는 상황에선 대출을 해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며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떻게 할지 금융당국에서 시뮬레이션 하면 저희가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사후정산' 방식은 불가능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경매나 공매 등을 통해 보증금을 회수하고 임차인에게 이를 사후 정산해주는 방식이다.
원 장관은 "말이 사후정산이지 실제로 정산금이 없기 때문에 국민을 속이는거라 검토 대상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증금 양도를 전제로 한 선지원 후정산 방식인데, 양도하는 순간 최우선변제금도 포기해야 한다"며 "최우선변제도 받고 나머지 금액도 받겠다는 건 마음대로 골라잡고 나머지 찌꺼기는 당신들이 처리하라는 식이기 때문에 법 앞의 평등 원리에 어긋난다"고 평가했다.
'경매절차지원' 등은 검토해보겠다는 방침이다. 원 장관은 "최우선변제금을 우선 받고 나머지는 HUG 등 국가에서 경매해주고 수수료를 일부 받거나 무료로 해주는 식으로 국회에서 공정 질서를 잡아주면 우리는 집행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개개인이 먹고 살기도 바쁘고 시간 내기 어려운데 국가에서 대신 받아주고 정산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의미에서의 경매절차지원은 충분히 검토해줄 수 있다"며 "얼만큼 이용할지 모르겠지만 그 부분 이용하겠다면 충분히 제공하겠다는 전제하에 준비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