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보증료율을 11년 만에 인상했다. 전세보증 100건 중 8건가량에서 사고가 나자, 이를 반영해 보증료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다. 시장에서도 '불가피한 인상'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조치가 HUG의 대위변제에 따른 손실을 해소를 돕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분석이다. 보증 사고의 위험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더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증료율, 최고 30% 인상
HUG는 오는 3월31일부터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하 전세보증) 보증료 체계를 개편한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핵심은 보증료율 상향이다. HUG는 지난 2013년 전세 보증을 출시한 이후 0.1%대 보증료율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전세사기, 역전세 등의 여파로 보증 사고율이 크게 치솟았고 다주택자에 대해서도 50~60%의 높은 할인이 제공된 것에 지적이 나오면서 개선 필요성이 제기됐다. HUG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보증사고율은 8.9%에 달한다.
이에 HUG는 '위험이 클수록 높게, 위험이 적을수록 낮게' 보증료율을 조정하기로 했다. 여기서 '위험'의 기준은 '부채비율'로 잡는다. 이는 전세보증금과 선순위채권(주로 주택담보대출금)을 합한 금액을 주택가액으로 나눈 비율이다.
집값 대비 전셋값과 그 외 채권이 얼마나 높은지를 보는 것이다. 통상 이 비율이 높을수록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부담이 크다. 보증금 미반환 사고 여지가 있는 것이다. HUG는 편의상 이번 개편안에선 부채비율을 '전세가율'로 용어만 변경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HUG는 보증금액, 전세가율, 주택유형에 따라 전세보증 보증료율을 책정한다. 기존엔 보증금액 구간이 △9000만원 이하 △9000만원 초과~2억원 이하 △2억원 초과 등 3가지로 나뉘어 있었지만 사실상 '9000만원 이상~2억원 이하'와 '2억원 초과' 구간의 보증료율이 동일했다.
개편안에선 보증금 규모에 따른 위험을 감안해 보증금액 구간을 △1억원 이하 △1억원 초과~2억원 이하 △2억원 초과~5억원 초과 △5억원 초과~7억원 이하 등 4단계로 세분화했다. 주택 유형은 기존과 동일하게 아파트와 비아파트로 구분했다.
전세가율도 기존 80% 이하, 80% 초과 두 가지에서 △70% 이하 △70% 초과~80% 이하 △80% 초과 등 3개로 나눴다. 전세가율 70% 이하 시 현행 대비 보증료율을 최대 20% 내리고, 초과 시에는 최대 30% 올린다.
이로써 보증료율은 기존 연 0.115~0.154%에서 연 0.097~0.211%로 조정된다. 아파트는 0.097~0.164%, 비아파트는 0.111~0.211%다. 보증금액 및 전세가율이 낮으면 오히려 보증료가 내려가고 그 반대면 오르는 식이다.
가령 주택매매가격 5억원, 전세보증금 3억5000만원(선순위 채권 없음·계약 기간 2년)의 전세가율 70%짜리 아파트라면 기존엔 85만4000원의 보증료를 내야 하지만 개편 이후엔 74만9000원(12.3%↓)만 내면 된다. 같은 조건의 비아파트는 기존 102만2000원에서 개편 이후 86만8000원(15.1%↓)으로 줄어든다.
다만 동일한 주택의 전세가율이 80%을 넘는다면 보증료가 오히려 늘어난다. 아파트의 경우 89만6000원에서 107만8000원(20.3%↑), 비아파트는 107만8000원에서 137만9000원(29.6%↑)으로 각각 증가한다.
'올릴 만도'…더 중요한 건?
이번 보증료 개편의 배경엔 높은 보증 사고율이 있었다. HUG에 따르면 연간 전세보증사고율은 2021년만 해도 1.9%에 불과했다. 반환 보증 100건 중 2건 정도만 사고가 나는 수준이다.
사고율은 이후 2022년엔 3.2%로 올랐고 2023년엔 8.1%까지 치솟았다. '빌라왕' 등 대규모 전세사기, 전셋값 상승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환 보증 100건 중 8건 이상은 사고가 난다는 뜻이다.
다만 최근 들어선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2024년 연간 보증사고율은 7.4%를 기록했다. 아울러 2023년 5월 전세보증 가입 기준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강화했는데, 올해부터 해당 계약의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보증사고율이 더 떨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보증사고율은 높은 수준이다. 보증사고로 늘어날수록 HUG의 재정 부담도 커진다. 지난해 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전세금을 돌려준 대위변제액은 4조원에 달한다. 보증사고가 급증했던 2023년엔 3조8598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고, 지난해 적자도 4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보증료 인상 조치 만으론 HUG의 손실을 해소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HUG가 지난해 한국리스크관리에 의뢰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증료율 개선' 연구용역에서 적정 전세보증료율은 '0.121~0.339%' 수준이었다. ▷관련기사: 빌라 전세보증료 오르는 거, 정말인가요?(2024년 12월29일)
그러나 이번 인상은 이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이번 개편안에서도 보증료율 0.2%를 넘는 건 5억원 초과~7억원 이하 전세가율 80% 초과 비아파트 유형 뿐이다.보증료 할인 대상에 무주택 요건을 추가하고, 보증료는 6개월 또는 12개월 단위로 무이자 분납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개편안에는 기존 보증 가입자가 동일한 주택에 대해 보증을 갱신할 경우 1회에 한해 종전과 동일한 보증료율을 적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재 시행 중인 지자체별 '전세보증 보증료 지원사업'의 지원 한도도 보증료 조정 시기에 맞춰 현행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상향키로 했다.
이로써 보증금액에 낮은 전세 주택에 거주하는 서민들의 보증료 부담가 과도하게 늘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임차인의 보증료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한 장치들이 보증 손실을 줄이는 데는 역효과를 낼 수 있어서다. 다만 그 외 경우는 보증료 인상이 불가피해 보증 사고와 HUG의 재무 부담을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일부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증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선 보증료 인상뿐만 아니라 감정가 산정 현실화, 보증 요건 강화 등 더욱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전세보증은 보험 상품과 같기 때문에 손실을 반영해 보증료율을 조정하는 게 당연하다"며 "그동안 정부의 정책 자금으로 메워 왔지만 이젠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도 "다만 전세대출금리, 보증료 등의 부담으로 전세 거주의 이점이 떨어지면서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할 수도 있다"며 "비아파트의 가격 산정을 투명하게 하고 보증 요건을 강화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