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제법 흘렀다. 건축자재 중견그룹 한일시멘트의 ‘허(許)’씨 일가 장손(長孫)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지도 어느덧 18년이다. 이른 감이 있지만, 3대 경영자 허기호(57) 회장의 후계구도를 넘겨짚어 볼 때도 됐다.
때마침 허 회장이 가업을 세습 받은 직후부터 음으로 양으로 종손(宗孫)의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선대(先代)에서 보여줬던 ‘형제 승계’를 배제하고 바로 장남으로 ‘4대 직행’이 점쳐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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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도 형제 승계?…의문부호 세례
한일시멘트 2대 체제는 고(故) 허채경 창업주의 5남1녀 중 ‘섭(燮)’자 돌림의 ‘정·동·남’ 형제 승계로 요약된다. 1992년 장남 허정섭(84)→2003년 3월 3남 허동섭(75)→2012년 3월 4남 허남섭(72) 명예회장이 차례로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반면 3대에서도 형제 승계가 이뤄질지 여부에는 의문부호 세례가 쏟아진다. 앞서 ‘[거버넌스워치] 한일시멘트 ②편’에서 기술했지만, 2대 때는 ‘정·동·남’ 명예회장 중 모태이자 지주회사격인 옛 한일시멘트㈜ 지분에 확실히 우위를 점한 집안이 없었던 반면 지금은 180도 딴판이기 때문이다.
허정섭 명예회장의 세 아들 중 장남인 허 회장은 한일홀딩스 최대주주로서 개인지분이 31.23%다. 차남 허기준(54) 전 한일Development 부사장, 3남 허기수(53) 한일시멘트·한일현대시멘트 부회장은 각각 1.57%, 1.15%에 불과하다.
그룹 경영권 자체인 지주사 지분만 놓고 보면, 허 회장의 두 동생은 지배기반에 전혀 손대지 않았고, 그 결과 존재감이 없다시피 하다. 허 회장이 2005년 1월 경영일선 등장 이래 옛 한일시멘트㈜ 지분 1.84%에서 시작해 그룹 장악에 공을 들여왔던 것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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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냇동생 허기수 1년 만에 ‘경영 뒷선’
두 동생의 활동 반경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허 전 부사장은 서울대 분자생물학과 출신이다. 2003년 12월 한일건설 이사, 2007년 1월 한일Development 부사장 등을 지냈지만 지금은 경영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게 한일시멘트 측의 전언이다.
다만 허 부회장의 경우는 다소 결이 다르기는 하다. 현재 경영에 몸담고 있고, 한 때 잘나가기도 했다. 즉, 지주사는 허 회장, 한일시멘트와 한일현대시멘트 주력 시멘트 2개사는 막냇동생인 허 부회장이 각각 대표를 맡아 운영하고 있던 것.
허 부회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후 2014~2020년 레미콘 제조업체 한일산업 부사장을 거쳐 2018년 7월 지주 체제 전환 뒤에는 사업 자회사 한일시멘트㈜의 경영·관리·기술본부 총괄 부사장으로 활동했다. 이어 2020년 11월 한일시멘트, 2021년 3월 한일현대시멘트 각자대표에 선임됐다.
허나 딱 여기까지다. 허 부회장은 2021년 11월 양사 대표에서 동시에 물러났다. 각각 1년, 9개월만이다. 오너 경영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지금은 전근식 현 사장이 단독대표로서 경영을 총괄하는 가운데 한일현대시멘트는 허 회장, 한일시멘트㈜는 허 부회장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결국 이런 맥락에서 보면, 향후 과도기적인 막냇동생 회장 체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이 보다는 바로 4대로 가업 세습이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때를 같이 해 허 회장이 후계승계를 준비하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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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허준석 가업세습 시간이 해결할 일
허 회장은 현재 유명 연예기획사의 1대주주이자 대표로 활동 중인 전(前) 부인(2017년 이혼)과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허준석(26)씨와 장녀 허지수(23)씨다.
허준석씨가 한일홀딩스의 전신, 옛 한일시멘트㈜ 주주로 등장한 때가 2017년 9월이다. 허 회장이 2016년 3월 회장직을 승계한 데 이어 이듬해 4월 최대주주로 부상했던 바로 그 해다. 허 회장이 ‘1인 체제’를 구축하는 와중에도 대물림을 위해 사전정지작업에 나선 것을 볼 수 있다.
허준석씨는 장내에서 13억원을 들여 주식 0.13%를 매입했다. 이어 2018년 7월 지주회사 전환 당시 현물출자·유상증자에 참여해 0.30%로 확대했다. 12월에 가서는 계열 주주사로 있던 중원㈜로부터 0.23%를 8억원에 매입했다. 현재 홀딩스 지분 0.57%를 소유한 이유다.
‘[거버넌스워치] 한일시멘트 ③편’에서 상세히 언급했지만 중원㈜은 허 회장이 1대주주(33.96%)로 있었던 곳이다. 중원㈜은 2018년 12월 홀딩스 지분 9.01% 중 6.43%를 총 236억원에 오너 일가 3명에게 넘겼는데, 허 회장(5.80%․213억원), 허기준씨(0.41%․15억원) 외에 허준석씨에게도 매각했던 것.
비록 오빠에 비해서는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허 회장의 맏딸 허지수씨도 한일홀딩스 주주다. 2020년 2월 장내에서 4억6300만원 주고 매입한 0.21%를 보유 중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홀딩스 주주로 있는 오너 일가 중 4세는 준석·지수 남매뿐이다.
한일시멘트의 ‘허’씨 일가 종손의 나이 올해 26세, 비록 본격적인 경영수업 단계를 밟기 시작했다는 소리 들리지 않고, 허 회장 또한 왕성하게 경영 활동을 하고 있지만 4대 승계는 시간이 해결할 일로 보인다. (▶ [거버넌스워치] 한일시멘트 ⑤편으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