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이커머스 생태계를 뒤흔들 태풍으로 전망됐던 C-커머스(중국계 이커머스)의 공습이 아직까지는 '미풍'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초 1000억원대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며 국내 공략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저렴한 가격에만 초점을 맞춘 마케팅이 배송 역량과 MD 차별화에 집중하고 있는 국내 이커머스 시장 트렌드와 맞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태풍인 줄 알았더니
와이즈앱에 따르면 지난달 알리익스프레스의 국내 시장 월간 활성이용자 수(MAU)는 전월 대비 7만명 늘어난 837만명으로 나타났다. 지난 3월 887만명으로 정점을 기록한 뒤 2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다가 소폭 반등했다. 또다른 데이터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서는 알리의 MAU가 3개월 연속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무 역시 비슷한 추이다. 3월 829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4, 5월 하락했다가 지난달 823만명으로 늘어났다.
업계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매월 가파르게 MAU를 늘려갔던 C-커머스의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알리는 지난 10월 국내 진출을 공식 선언한 이후 방문자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1000억 페스타' 등 대규모 마케팅을 이어갔던 2월엔 한 달 만에 MAU가 100만명 이상 늘어나기도 했다. 반면 눈에 띄는 마케팅을 진행하지 않았던 4월과 5월에는 방문자 수가 감소했다.
대규모 현금 지원을 통해 초저가를 구현하자 몰려들었던 소비자들이 행사 종료 후엔 다시 원래 사용하던 국산 이커머스로 돌아갔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커머스 업계 MAU 1위인 쿠팡은 지난 4월 유료 회원제인 와우 멤버십 요금 인상 발표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방문자 수는 매달 증가했다. MAU 기준 업계 2위인 11번가 역시 '월간 11절' 행사 등의 영향으로 방문자 수가 꾸준히 늘어나며 2위 수성에 성공했다.
별 거 없더라
소비자들이 C-커머스에 주목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국내 이커머스와 비교하기 어려운 초저가였다. 국내 이커머스에서 1만원 대였던 생활용품을 알리에서는 4개 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든지,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가 CJ자체몰이나 대형마트보다 저렴하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퍼지며 소비자들은 C-커머스로 몰려들었다.
또 하나는 다양한 제품이었다. 국내 이커머스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상품 구성은 소비자들에게 쇼핑의 재미를 느끼게 했다. "이런 것도 있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독특한 제품이 넘쳐났다. 이에 유튜브 등 SNS에서는 알리와 테무의 아이디어 상품을 구매해 리뷰하는 '알리깡', '테무깡'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두 가지 모두 시들해졌다. 저렴한 가격의 이유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증받지 않은 중국발 공산품 직구가 늘며 유해성분이 기준치를 초과한 제품들이 잇따라 적발됐다. 일부 제품은 기준치의 수백배 이상의 발암물질이 검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안전인증을 받지 않는 직구의 위험성이 대두되며 정부가 직구 통관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물량공세를 퍼부으며 가격 경쟁력이 확보됐던 국내 배송 제품들도 최근 들어 메리트가 사라졌다. 예를 들어 CJ제일제당의 햇반 24개입 박스의 경우 알리에서는 1000억 페스타 행사가 기준으로 2만3869원이다. CJ더마켓에서는 같은 제품을 행사가 2만4420원에 판매하고 있다. CJ더마켓의 5% 적립금을 고려하면 알리가 고작 63원 저렴한 셈이다. CJ더마켓의 멤버십인 the프라임에 가입하면 2442원을 더 받을 수 있어 가격이 역전된다. 배송 예정일도 알리보다 3일이나 빠르다.
'테무깡' 열풍도 금세 시들었다. 실제 받아 본 제품의 품질이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렇게 싸게 만들었지'라는 의문은 제품을 받아본 후 '이래서 이렇게 쌌구나'로 바뀌었다. 한 번 쓰고 버릴 일회용품이나 소모품의 경우엔 가격 경쟁력이 강점이 되지만 가격대가 올라갈수록 품질력이 구매의 최우선 조건이 된다.
실제로 지난 1분기 알리와 테무의 1인당 구매 추정액은 각각 3만3000원, 4451원으로 1인당 16만원이 넘는 티몬이나 13만원대의 쿠팡·G마켓, 9만원대인 11번가보다 크게 낮았다. 알리의 경우 그나마 한국 제품을 국내배송으로 판매하는 K-베뉴관의 선전에 구매액이 3만원대를 기록했지만 저렴한 아이디어 상품이 주로 팔린 테무는 국내 플랫폼과 비교가 어려운 수준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알리와 테무가 지금처럼 마케팅비를 쏟아부어 가격 경쟁력만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국내 시장에서 큰 성장을 거두기 어렵다고 본다. 일시적으로는 고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겠지만, 이미 다양한 플랫폼의 가격과 서비스를 비교하고 구매하는 데 익숙한 국내 시장에서는 '체리피커'만 양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저렴한 가격에 가려져 가시성 낮은 UI와 검색 기능 등 서비스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십수년간 국내 소비자에 맞춰 발전한 국내 이커머스와의 차이점이다. 지금은 '중국 이커머스'라는 인식 때문에 크게 불만이 나오지 않고 있지만 국내 시장에 안착하면 쿠팡, 11번가 등과의 비교를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알리는 3년간 1조5000억원을 투자해 역직구 시장을 위한 물류센터를 국내에 만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국 내 한국행 물류센터를 30여 곳 늘리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매물로 나온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새 주인이 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홈플러스익스프레스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200개 이상의 매장과 자체 냉장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C-커머스 최대 약점인 신선식품의 빠른 배송 서비스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카드다. 알리 측이 인수 계획이 없다며 부정하긴 했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유해성 우려와 직구 통관 이슈 등이 겹치며 C-커머스의 1차 국내 공략이 생각만큼 큰 타격을 준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물류센터 등 하드웨어를 갖춘 이후가 본격적인 경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