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를 받으면서 주요 사업추진에 급제동이 걸렸다. 특히 혼란을 수습해야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한 그룹 고위임원들이 무더기로 수사대상에 올라 롯데는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져들었다.
◇ 호텔롯데 상장 물거품 위기
당장 공모가액 4조원대의 호텔롯데 상장(IPO)이 무산됐다. 호텔롯데는 13일 금융위원회에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신영자 롯데재단 이사장이 면세점 입점로비 의혹에 휘말리면서 상장 일정을 한달 미룬 호텔롯데는 최근 검찰 수사가 그룹 전반으로 확대되면서 상장 자체를 추진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의 계기가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의 배임 행위와 비자금 조성을 통한 횡령 등 주로 회계처리 문제와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호텔롯데는 철회신고서를 통해 "최근 대외 현안과 관련해 투자자 보호 등을 고려해 이번 공모를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대표주관회사 동의하에 잔여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지난해 8월 신 회장이 경영권 분쟁에 따른 대국민 사과에서 밝힌 그룹 지배구조 개편, 투명성 강화 방안의 핵심이다. 롯데는 호텔롯데를 비롯해 롯데정보통신,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롯데리아 등 다른 계열사들도 상장할 계획이었으나 호텔롯데 상장이 틀어지면서 신 회장의 개혁구상이 뿌리째 흔들리게 됐다.
◇ 인수합병 급제동·면세점도 안갯속
롯데가 받은 충격은 미국 화학회사 액시올 인수 포기 결정에서도 드러난다.
롯데케미칼은 액시올 인수로 연간 매출액 21조원을 넘어서는 글로벌 12위 수준의 종합화학사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을 갖고,지난 3일 액시올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검찰의 칼끝이 롯데를 향하면서 불과 1주일만에 계획을 철회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일 롯데정책본부를 비롯한 계열사 6곳(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정보통신·롯데피에스넷·롯데홈쇼핑·대홍기획)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직후 "인수경쟁이 과열된 점과 롯데가 직면한 어려운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더이상 (엑시올 인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롯데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쌓이면서 올해 말 서울지역 시내면세점 입찰에서 롯데가 사업권을 따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전망도 나온다. 연매출 6000억원을 올리는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은 이달말 영업을 종료하고 올해 하반기 관세청이 실시하는 신규 사업자 선정에 참여할 예정이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면세점 임원이 입점로비에 연관됐다는 의혹만으로도 타격이 적지 않은데, 이번 건은 그룹 총수와 정책본부, 핵심 계열사가 모두 비리에 연루돼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 롯데가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 타깃된 정책본부..'신회장 이달말 귀국'
쓰나미급 위기가 닥쳤음에도 이를 해결할 그룹 수뇌부의 손발이 꽁꽁 묶인 점도 롯데에는 뼈아픈 점이다. 검찰은 지난 10일 압수수색 인력 250여명 중 절반을 서울 소공동 롯데쇼핑 빌딩에 위치한 롯데정책본부에 투입했다. 롯데정책본부는 계열사 업무 전반을 관할하는 롯데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현재 신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 신 이사장 등 오너일가를 비롯해 이인원 부회장, 황각규 운영실장, 소진세 대외협력단장 등 롯데의 핵심 수뇌부는 출국금지 상태로 알려져있다. 그룹의 숙원사업인 롯데월드타워 완공을 진두지휘하던 노병용 롯데물산 사장은 롯데마트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지난 11일 구속됐다.
위기시 소방수 역할을 해야 할 최고경영자들이 줄줄이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직원들 사이에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롯데마트 한 직원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됐는지 모르겠다"며 "내부에서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고 전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전인 지난 7일 멕시코 칸쿤 국제스키연맹 총회 참석차 해외로 떠난 신 회장은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리는 롯데홀딩스 정기주주총회가 끝난 뒤에나 귀국할 전망이다. 지난 3월 임시주총에선 형인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의 반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지만 이번 검찰 수사를 계기로 신 회장은 또한번 위기를 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