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병 팔아보셨나요?
1990년대만 해도 집에서 모은 맥주병이나 소주병을 동네 슈퍼에 가져다 팔거나, 과자 몇 봉지로 바꾸곤 했습니다. 빈 병이 곧 돈이니, 버릴 이유가 없었죠.
어느 순간부터 빈 병은 돈에서 재활용 쓰레기로 바뀌었습니다. 플라스틱, 종이처럼 빈 병도 분리수거함에 버리기 시작했죠. 빈 병은 무겁고 깨지기 쉬워 집에서 모으기도, 마트에 가져가기도 번거롭습니다. 병 팔아 남는 돈 얼마 된다고, 이런 생각도 들죠.
푼돈이 모여 214억원이 넘었습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미반환 빈용기보증금이 214억3028만원에 이릅니다.
빈용기보증금은 제품 출고가격에 병값(보증금)을 붙여 판매한 뒤 빈 병이 반환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제도입니다. 대형마트의 카트 보증금과 비슷합니다. 카트를 제자리에 두면 100원을 돌려받을 수 있듯이 빈 병을 판매처에 반납하면 보증금을 받을 수 있죠.
현재 빈용기보증금은 소주병은 40원, 맥주병은 50원입니다. 티끌(40원)이 모여 태산(214억원)이 됐습니다. 빈용기보증금이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빈 병이 재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꼬박꼬박 빈 병을 분리수거했는데, 무슨 말이냐고요? 빈 병은 일반 가정에서 분리수거 돼도 실금이 가거나 깨져 재사용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국내 빈 용기 회수율은 95%로 높은 편이지만, 빈 병의 재사용횟수(8회)는 독일(40회 이상)·핀란드(30회)·일본(28회) 등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죠.
그래서 환경부가 빈용기보증금 인상 카드를 꺼냈습니다. 내년부터 소주병 보증금은 40원에서 100원, 맥주병은 50원에서 130원으로 각각 오르게 됩니다. 보증금을 올려 빈 병 회수율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
문제도 있습니다. 정부의 취지대로 빈 병 회수율이 높아지지 않으면, 또 한 번 맥주가격이 인상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비맥주와 하이트맥주는 최근 맥주 출고가를 6%대 올렸고, 롯데칠성음료 주류사업부(롯데주류)도 고민 중입니다. 카스와 하이트 병(500㎖)은 이번에 출고가격이 65~67원 올랐는데, 내년 맥주병 보증금은 80원 인상되게 됩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입니다.
물론 빈 병이 회수만 잘되면, 문제는 없습니다. 2014년 기준 업소용 빈 병 회수율은 100%입니다. 술집에서 보증금을 핑계 삼아 가격을 올릴 일은 없습니다. 문제는 가정집입니다. 2014년 기준 가정용 소주·맥주 빈 용기 회수율은 24.2%에 불과했습니다. 보증금이 오른다고, 분리수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얼마나 빈 병 회수에 동참하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