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롯데 오너 일가는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곤욕을 치렀다. 당시 신 총괄회장은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입장에서는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신 총괄회장의 롯데월드타워 방문으로 신 총괄회장의 신 회장에 대한 스탠스가 바뀔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신격호 총괄회장, 30년 숙원 풀었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에게 롯데월드타워는 일생의 숙원사업이었다. "언제까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고궁이나 보여줄 것이냐"며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를 짓겠다는 그의 생각은 30년만에야 실현됐다. 그리고 지난 3일 오후 그는 마침내 완공된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했다.
그의 방문 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붙여졌다. 롯데 오너가의 경영권 분쟁이 완전히 일단락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그의 움직임과 동선은 세간의 관심사이자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그런만큼 조심스럽다. 롯데월드타워를 운영하는 롯데물산에서도 신 총괄회장의 방문 소식을 한시간 전에야 알았을 정도다.
▲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118층에서 박동기 롯데월드 대표의 설명을 듣고 있다. |
신격호 총괄회장은 부인인 시게미츠 하츠코씨 등과 함께 휠체어를 탄 채 롯데월드타워를 찾았다. 2015년 12월 103층 공사현장을 둘러본 이후 1년 5개월여 만의 방문이다. 신 총괄회장에 대한 안내와 수행은 그룹 비서실과 박현철 롯데물산 대표이사, 박동기 롯데월드 대표이사 등 롯데 임직원들이 맡았다.
1층 홍보관에서 대략적인 브리핑을 받은 신 총괄회장은 곧바로 118층 전망대에 올랐다. 그곳에서 그는 롯데월드와 매직 아일랜드를 내려다 봤다. 이후 120층에 마련된 테라스에서 바람을 쐬기도 했다. 곁에서 수행한 롯데 고위 관계자는 "무척 흐뭇해하며 만족스러워 하셨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묻고는 하루 평균 5000명 정도가 찾는다고 하자 입가에 미소를 띠기도 했다"고 말했다.
롯데월드타워는 1987년 사업부지 선정 이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각종 허가 과정에서 난항을 거듭했다. 공사중에도 사고가 잇따랐다. 여론의 반대도 심했다. 주변의 만류도 많았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의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일본에서 성공했지만 그 뿌리는 한국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수몰돼 없어진 고향의 주민들을 위해 매년 마을 잔치를 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 신격호-신동빈 부자관계 달라지나
신 총괄회장은 전망대 관람 이후 일행들과 함께 81층에 위치한 시그니엘 호텔 한식당 ‘비채나’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함께 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미국 출장중이라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쳤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총괄회장님이 무척 만족해하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방문에는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도 동행했다. 신 전 부회장은 현재 롯데 오너가 경영권 분쟁의 핵심 인물이다. 여전히 신 총괄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다. 지난해 신동빈 회장과 경영권 분쟁이 일어났을 당시 신 총괄회장이 신 전 부회장을 지지했던 것도 이같은 지근거리 보좌의 힘이 컸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재계에서도 신 회장의 롯데월드타워 준공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아버지의 숙원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각계의 비난을 홀로 견디며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는 무척 어려웠을 것"이라며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아버지가 형의 편을 들어줬음에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신 회장이 사력을 다해 롯데월드타워를 완공한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며 "아버지의 숙원을 이루는 것 이외에도 향후 있을 경영권분쟁 등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매개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롯데월드타워는 '원리더 화룡점정'
롯데 오너가의 경영권 분쟁은 현재 휴전 상태다. 하지만 물밑으로 치열한 공방이 진행중이다. 판세는 신동빈 회장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법원은 지난달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에게 2000억원 가량을 빌려주고 담보로 잡은 신 총괄회장의 주식을 압류키로 한 것에 대해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신동빈 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유미 롯데호텔 고문 등이 신 총괄회장을 대신해 신 전 부회장을 상대로 낸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조건부 인용했다. 이어 신 회장 측에서 106억원을 공탁하면 본안 사건 1심 판결을 선고할 때까지 신 전 부회장이 신 총괄회장의 주식을 압류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신 전 부회장의 롯데 계열사 지분 확보 움직임에 제동을 건 셈이다.
▲ 롯데월드타워와 주변 전경 |
롯데 오너가 경영권 분쟁의 핵심은 신 총괄회장의 성년 후견인 개시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다. 현재 1, 2심에서는 신 총괄회장의 '정신 미약' 상태가 인정됐다. 신동빈 회장측이 주장하던 대로다. 만일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난다면 신 회장은 자신이 신 총괄회장을 직접 보호하고 대내외적으로 롯데그룹의 '원 리더'라는 점을 공표할 명분이 생긴다.
형인 신 전 부회장이 지금껏 해왔던 것은 아버지의 정신 미약 상태에서 진행된 것인 만큼 무효라는 신 회장의 주장이 힘을 받게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신 총괄회장이 롯데월드타워 준공을 계기로 기존의 태도를 바꿔 신 회장에게 힘을 실어준다면 신 회장의 '뉴 롯데'는 걸림돌이 없어지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 롯데월드타워는 여러모로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해줄만한 아이템이었을 것"이라며 "롯데와 신 회장을 둘러싼 여러 정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롯데월드타워는 상징성과 정통성 확보 등 유무형의 역할을 톡톡히한 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