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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무한도전]①원희목 회장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 2017.08.30(수) 18:15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제약강국, 정부 강력지원 필요"
"신약 개발 에너지 축적된 지금이 타이밍"
"정부-기업-연구기관 등 콜라보 절실"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건 소위 '잭팟'에 비유된다. 글로벌 신약 하나로 벤처사가 글로벌기업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곳이 제약·바이오업계다. 하지만 신약개발은 '운'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개발 과정에 투입해야 하는 대규모 비용과 오랜 연구개발 기간이 필요하다. 더구나 신약개발 과정에는 수많은 예상하기 어려운 실패 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제약·바이오산업은 대표적인 미래성장동력산업으로 꼽힌다. 우리 기업 현실은 어떨까. 주요 제약사들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살펴본다. 먼저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글로벌 제약·바이오시장 규모는 1200조원대입니다. 반도체와 자동차시장을 합한 것 보다도 더 크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제약·바이오시장규모는 20조원에 불과합니다. 높은 대학진학률, IT강국 등 좋은 여건을 갖췄음에도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과거 정부가 철강·조선·자동차산업을 밀어줬던 것처럼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성장동력산업 삼아 키워야합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사진)은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OECD 평균 대학진학률 41%를 훌쩍 뛰어넘는 대학진학률(약 70%), 글로벌시장의 1.7% 가량인 시장규모에 비해 높은 글로벌 임상점유율(3.4%) 등 제약·바이오산업이 융성하기에 좋은 여건에도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산업을 정부 주도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글로벌 제약·바이오업계는 소수 기업이 주요 원천기술을 쥐고 세계시장에서 대부분 매출을 거둬가는 구조(Top-heavy)다. 제약 관련 통계기관인 스크립100에 따르면 글로벌 상위 20개 기업은 2015년 세계 의약품 판매의 69%를 차지했으며, 전체 의약품 개발(R&D) 자금의 65%를 썼다. 

업계는 한 제약·바이오기업이 글로벌시장에 내놓을 신약개발 능력을 확보하려면 최소 글로벌 50위권에 들 정도의 매출을 내야한다고 보고 있다. 이 규모가 연 매출 2조원가량이다. 30위권이 5조원, 20위권 10조원, 10위권 20조원대 매출을 내고 있다.

스크립100이 올해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 가운데 50위권에 드는 기업은 없다. 유한양행과 한미약품 정도가 2015년 기준 각각 82위와 83위, 녹십자가 90위에 등재돼 있다. 글로벌 100위권에 속하는 제약·바이오기업이 3곳에 불과한 것. 일본의 경우 20위권의 다케다제약과 아스텔라스제약을 비롯해 50위권내 포함된 제약사가 매년 7~8곳으로 집계된다. 

"최근 삼성 등 자본력을 지닌 기업들이 제약·바이오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건 좋은 신호입니다. 하지만 제약·바이오강국은 큰 기업 몇곳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의 종류만해도 수만가지에 달하다 보니 바이오벤처부터 연구중심대학병원 등 각 기관이 저마다의 강점과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너지를 낼 수 있을 때에야 가능합니다. '오픈 이노베이션'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원 회장은 국가적인 역량에 비해 뒤떨어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선 오픈이노베이션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픈이노베이션이란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통해 얻어낸 기술력을 상업화하는 과정에서 대학이나 다른 기업 등 제3자를 참여시켜 효율성을 높이는 '개방형 혁신' 전략이다. 신약 개발의 경우 리스크가 높아 '오픈 이노베이션'이 특히 요구되는 분야로 거론된다.

원 회장은 기업간 활발한 콜라보(협업)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협회와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신약 개발이 기본적으로 '하이리스크-하이리턴(고위험-고수익)'의 성격을 띄는 데 반해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하이리스크를 감수할만큼 자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신약이 탄생하기까지는 평균 1조~2조원의 막대한 비용과 10~1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이를 감당할만한 기업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른바 '콜라보'를 유도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선 기술력을 갖춘 제약·바이오기업도 신약개발비중 70% 가량을 차지하는 임상시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라이센싱 아웃(기술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원 회장은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작은 국내시장에서 순위 경쟁을 위해 기술판매를 하지 않고 업계에서 파트너를 찾아 임상을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국공립병원의 '국산신약 우선구매 의무화 제도'도 제안했다. 개발만큼이나 어려운 의약품의 해외판매를 돕기 위해서다. 국내에서 개발된 신약은 국내 병원들이 우선 사용하도록 해 국산 신약의 품질을 보장해줘 수출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협회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 사례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장'을 마련하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진자운동이 활발해지면 경우의 수도 많아지지요. 회원사는 물론 범보건업계의 여러 기관들이 소통하면서 협업의 기회를 찾고, 다양한 신약개발 경우의 수를 만들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시너지를 낼 수 있길 바랍니다."

원 회장은 임기중 핵심공약으로 오픈이노베이션의 활성화를 제시하고 업계는 물론 정부와의 대화에서 구심점 역할을 맡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원 회장 취임이래 협회의 행보에서도 확인된다. 원 회장은 취임직후 종전 한국제약협회이던 협회명칭에 '바이오'를 넣어 확장성을 갖추고, 건물을 리모델링해 회의실 5곳을 늘리는 등 오픈이노베이션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제약바이오협회는 또한 어느때보다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다. 협회는 범보건업계 이슈 전반을 다루는 행사를 잇따라 개최하는 한편 바이오분야 새 인물 영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몇달 사이 협회에는 홍보위원장과 글로벌협력위원장, 국제담당부회장 등이 새롭게 선임됐다. 원 회장은 지난 4월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와 오픈이노베이션을 점검하는 글로벌행사를 주최했다. 6월에는 아시아지역 의약품 국제회의기구인 APAC에 참석해 회원국간 신약개발 등 협력을 모색했다. 이와 함께 산업통상자원부와 사우디 제약부문 투자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대외활동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에는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해 경제부 차관을 만나 한국 의약품 가격을 상향 조정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사회가 고령화하고 있다는 건 의료수요가 많아진다는 뜻입니다. 미래유망산업인 제약·바이오 분야를 육성하려면 정부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한국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에 힘을 싣는다는 것이 '선언적 의미' 차원에서라도 알려지면 신약개발에 쓰일 민간자본과 해외자본이 자연스레 국내로 유입될 것입니다. 이러한 투자 여건이 만들어지면 신약개발에도 긍정적인 분위기가 잡히겠죠."

원 회장은 제약·바이오강국 벨기에의 사례를 들어 산업을 키우기 위한 '민관협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벨기에의 경우 정부 R&D 지원금의 40%가 제약·바이오산업으로 들어간다. 연간 약 15억유로(한화 약 1조8000억원) 규모다.
 
직접적인 지원 외에도 연구개발 인력에 대한 원천징수세 80% 면제, 특허세 최대 80% 면제 등 파격적인 세제혜택이 제공된다. 벨기에에서 제약·바이오산업이 전체수출의 10%를 차지하는 '효자산업'이 된 것이나 글로벌 제약·바이오그룹 얀센과 UCB 등이 벨기에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연간 매출이 150억달러(약 17조원)을 웃도는 글로벌 상위 제약·바이오사들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기업이다. 모두 정책적인 뒷받침이 적극적인  곳이다.
 
EU의 경우 EU집행위원회와 유럽제약산업연맹이 2014년부터 공동으로 민관합작 신약개발 네트워크(IMI)를 추진해 오는 2024년까지 총 34억유로(약 4조원)을 투입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발표한 '전략계획 2016~2020'에서 약물유전체학을 실제 임상에 적용해 새로운 약물 스크리닝과 최적화 과정을 개선하기로 했다. 또 2014년에는 국립보건원과 10개 제약사, 비영리기관이 민관 공동사업(AMP)을 결성, 5년간 총 2억3000만달러(약 2657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2010년대부터 오랜기간 20조원대에 머물고 있는 제약·바이오산업을 200조까지 키워낼 수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라이센싱 아웃을 한다는 건 바꿔 말해 우리의 신약 기술력이 글로벌 기업들이 탐낼 정도에 도달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십수년간의 노력이 이제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겁니다. 과감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이유인 것이죠. 국내 기업들의 기술력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기업간 '콜라보'를 권장하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합니다. 에너지가 축적돼 있는 지금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야말로 제약강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원 회장은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의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기업을 누르기 보다 수출을 독려하는데 방점을 두고 정책을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국내 기업들의 매출에서 수출비중이 50% 정도로 증가하면 자연스레 공공보건 분야에서 기여하는 바도 커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원 회장은 "의약품은 인류가 생존하는 한 계속되는, 소위 '트렌드'와 무관한 산업이기 때문에 국가적으로도 투자가치가 높은 산업"이라며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수출 비중이 커지면 시장에도 탄력성이 생기고, 기업들이 사회보험에 기여하는 바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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